그런 생각을 했다. ㅎㅎㅎ. 내가 그렇다. 아마도 이런 저런 핑개를 대면서 교회를 부담없이 빠지는 것도 대단한 믿음아닐까 싶은데,,, 그야말로 사생 결단을 하듯 성수주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정도는 되야 믿음생활 한다고 말할수 있는 믿음 좋은 분들이라고 할수 있을게다. 나는 예배에 빠지는 행위에 대해 아무련 자책감도 없다. 직장에 결근을 하거나 학교에 결석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해온 것이다. 나는, 결석에나 결근에 대해서는 용납을 못하는 편견 같은게 있다. 하다못해 약속시간 같은것에도 민감한 편이다. 그런데 교회 출석에는 무한관대함이 있는것 같다. 아니, 교회는 빠저도 상관없다는 소신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이러니 믿음이 바닥일수밖에 없다. 추우면, 길이 미끄러우면, 빠지는게 당연하다고 까지 생각하고 있다. 혹 미끄러저서 다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말할수 없는 민폐라는게 내 입장이고 주장이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핑개거리가 분명있다. 나 한사람 빠지거나 말거나 아무련 영향력이 없어서다. 내가 왔는지 안왔는지 누구도 관심 없다. 하나님은 어떠실까? 아이들에게 개근 거지라는 말이 있듯이, 꾸역꾸역 한사코 자리나 찾이하는 것도 민망하다는 자격지심도 없지는 않아서다. 나만 노인은 아니다. 그래서 겠지만 노인들의 모습이 예뻐 보이지 않음도 사실이다. 지팡이 혹은 밀고다니는 의자에 의지하여 비틀걸음을 하고 출석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바로 내 모습이기도 해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예정대로라면 벌써 떠났어야 맞고, 떠나지 않았더라도 집에서 온라인 예배로 만족하고 있어야 할탠데,,, 그도 아니어서 민망하다. 그러니 조기 방학이라도 해야 하지않겠는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는게 살짝 짜증이 난다. 왜 이렇게나 전화 하는걸 망서리는 것일까. 기다리지 않는다고,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라고 하지만, 이모나 고모나 늙어서 외롭고 귀가 어둠다는 것도 이해 못할것도 없으면서 왜 통화료에 집착한 것인지 ,,, 그분들 사랑을 값으로 따지자면 통화료 생각 해서는 안되는것 아닌가. 결혼식에 참석하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있을태고, 소식도 들을수 있는데, 굳이 안가려고 하는 것은 왜 일까. 그렇게나 보이고 싶지않는 모습이 뭔지 모르겠다. 나만 늙은것도 아니다. 끝네 타오르지 못하고 꺼저가는 인생의 종말에 이른 내가 그렇게나 부끄러워선가 싶기도 하는데,,, 나는 결국엔 교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보다. 그건가보다. 어느 순간에는 아주 아주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갈피를 못잡고 떠있는 나를 보게된다. 방황이 멈춘게 아닌듯 하다. 허전함이 불연듯 찾아들면 나로서는 어찌할바를 모르게 되는데, 그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걸보면 내안에 있어온게 맞는 것인가보다. 이런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야 비로서 자유함을 얻는 것인가. 여전히 나는 억매여 있는가. 죄는 참 질긴가보다. 놓아주려하질 않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