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늘 자갈밭이었다. 눈물이 없는 굳은 마음의 정체가 무었일가를 늘 생각했지만, 그냥 독해서라고 짐작했다. 삶이 지치고 고단했더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어도, 하물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눈물 흘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울어서 될일은 아니라는 생각 같은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그게 결핍 때문이었다면 이해가 될수 있을까. 결핍이 뭔데, 그토록 깊숙히 자리하며 나를, 마음을 굳은 바위가 되게 했을까. 어쩌면 유년시절부터 였을까. 조부모의 사랑과 굳건한 울타리 만으로는 채워질수 없는 결핍이 있었을까. 사상범으로 몰려 국가의 형벌을 받은 아버지가 가저온 상실감과 공포는 어린 아이에게 어떤 것이었을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집안의 무거운 공기가 주는 압박감은 작지 않았을게다. 그리고 결혼은 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랑받지 못한 아내. 존중없는 아내자리는 늘 집어치우고 싶은 허접 쓰레기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니 결핍의 연속선상인가. 생활인으로 나는 어떤가. 늘 부족했다. 말이 좋아서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묻어가는 일상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나는 어느것 하나에도 잘하는게 없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쓸대없이, 정말이지 쓸대없는 일에만 충성스러울 정도 였다. 가령, 결근이나 지각이 없는,,, 요즈음엔 학교에서마저 결석 같은것은 하찮은 일이 되어버렸는데,,,. 한심하게도 교회출석을 멈추려고 방학을 고려중이라니, 여전히 한심하고 결핍 증후군이 세력을 발휴하려나 보다. 그러고보면 내 결핍은 뿌리가 깊다. 어쩌면 나로서는 회복 불가일수도 있겠다 싶네. 걷으로는 치료가 좀 된듯 싶기는 하다. 아닌가. 아닌가. 아닌것 같다. 단순히 물질적인 부분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질로 표현될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인색한 나. 나 자신에게까지도 인색함에는 끝을 모르고 있다. 죽기전에 풀릴것 같지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죽는일에도 돈이 필요하다 . 대행히 운이 좋아서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화장터에 가는 순간까지 필요한것은 돈이다. 참 불쌍한 재순아! 어쩌면 좋으니? 돈돈거리지 않아서 좋다는 말은 어디로 숨겼니? 그냥, 죽는 사람이 무슨 죽는 걱정까지 해? 걱정으로 해결될일도 아닌데? 그분께서 알아서 하실거라는 믿음을 가지면 어떻겠니? 그리고 아들딸이 책임져 줄거라고 믿어보면 어때? 휴! 내 결핍이 가저온 부작용인가 보다. 사람이 자다가 죽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못일어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단다. 그거 모두가 바라는 죽엄인데? 그분을 믿는 믿음이 아닌, 확률에 기대보자는 것인가? 이런 한심한 믿음이라니. 하긴 이게 내 믿음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희망을 갖어보면 어떨까? 결핍같은것은 잊고 저 맑고 푸른 하늘을 선물하신 분을 기대하는 것이 더 좋은 믿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