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법회 의식에서는
처음에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삼귀의례를 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우리말로 하지만
한문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귀의불 양족존 歸依佛 兩足尊
귀의법 이욕존 歸依法 離欲尊
귀의승 중중존 歸依僧 衆中尊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삼귀의를 강조하여 이를
'귀명삼보歸命三寶'라 이름 붙이고 설명하였으며,
고려의 나옹(1320-1376)은 귀의를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기영 선생의 탁월한 저서 원효 사상은
첫 페이지부터 원효의 귀명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귀명은 '목숨을 돌이켜 의지함'이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결국 삼귀의란 목숨까지도 바쳐 부처님께 의지한다는
선서를 하는 거룩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바쳐야 할까요?
멀리 갈 것 없이 나옹의 해석을 이해하면 됩니다.
그가 말했듯 귀의란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실'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이 책에서 내내 번민하며
밤잠을 설쳐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시 게송으로 돌아와
'부처님의 공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부처님의 공덕은 삼귀의례의
첫 번째인 양족존兩足尊의 양족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귀의하는 존귀한 양족은 부처님의 두 다리가 아니라,
두 가지 다 원만히 구족具足 했다는 뜻이고,
이는 복덕과 지혜의 구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게송에서 말하는 공덕은 부처님의 구족하신
복덕과 지혜 중 복덕의 창고에서 공덕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창고가 허공과 같이 상상할 수도 없는 무한 크기의 창고라,
아무리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중생이 무량겁 동안 가져다 쓴다
해도 결코 줄어드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이룩하신 이 공덕의 장으로
모든 세계를 이룩하시며, 장엄하시며,
중생에게 이익을 주어도 그 중생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