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그림체(style)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느린 선의 꿈과 노래 그리고 사랑
나(김선두 작가)는 스승 이종상, 오태학으로부터 동양화, 한국화를 배웠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전통적 차이점은 선(線)에 있다. 서양화에서는 면(面)이 강조되고 덧칠도 자유롭다. 반면, 화선지 위에 먹이 조금씩 번져 나가는 동양화는 한 번의 붓질이 중요하다. 여백을 살리지 못하는 붓질은 그림 전체를 망가뜨린다.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트 연기처럼 주어진 시간에 군살 없이 붓질을 마무리해야 좋은 그림이 탄생한다. 동양화가는 50∼60대가 되어야 비로소 그림이 무르익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는다.
나의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삶은 행복했지만 중3 이후 서울에서의 삶은 어두웠다. 종가집이었지만 가산이 탕진 돼 생계가 어려울 때도 나는 집안 사정에 무지했다. 자주 찾아오는 제사 때마다 떡을 먹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나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고향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운 것도 아닌데 화가가 되겠다며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집안은 어려워졌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은 커졌다. 아버지는 말리는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나는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지고 겨우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노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고 결국 대학에 떨어졌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미술 학원비를 타 쓰며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내 모습이 실망스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2, 인물, 행(行)
나는 머리를 빡빡 깎고 열심히 재수생활을 해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입학 후 내가 주목한 것은 어두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곯아떨어진 어느 일용직 노동자의 고단한 모습(“2호선”), 써커스 하면서 불안해하는 엄마와 그 엄마의 머리 위에서 철없이 즐거워하는 딸, 그리고 주변인들의 무표정한 얼굴(“모정”), 모델 해달라고 했더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온 아저씨의 모습(“경비 아저씨”), 시골에서 상경하는 어느 학생의 촌티 나는 모습(“차표 한 장”), 중앙아시아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한인의 삶(“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머리 빡빡 깎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모습(“외줄 타기”)처럼 뒷전의 삶들을 즐겨 그렸다.
이런 어두운 그림들은 나 자신과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었고, 어두움 속에 흐르는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것이 내 의도였다. 나는 고단한 도시 노동자의 삶(쉼)을 그린 작품(“휴월”)으로 중앙미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1년 반 동안 50∼60차례 이상 물감을 먹이며 한지를 숙성시켰다. 대상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했을 때 당신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만큼이나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나의 어두웠던 작품 속 인물들은 점차 수다쟁이 아줌마(“태미”), 미인(“last spring"), 시인 이상("날개”)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대신 나는 한국화의 매력에 더욱 천착했다. 축구선수에게는 테크니컬한 드리블보다는 평범한 상황에서 골을 넣는 것이 더 중요한 미덕이다. 마찬가지로 화가에게는 붓을 뉘어 기교를 부리는 편봉(偏鋒)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그리는 것보다는 옷깃과 같은 평범한 선을 그리는 중봉(中鋒)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선의 굵기와 번짐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고저장단을 표현할 수 있고, 이는 공간과 시간의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찰나에 집중하는 붓질을 통해 순간순간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이 순간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날짜와 기사가 덧붙여진 신문 형식의 새로운 그림도 만들어 보았다.(“서편제”, “장흥에서” 등)
3. 진경
나의 그림은 풍경화로도 외연이 넓어졌다. 내가 선택한 풍경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 담긴 고향 장흥이었다. 서양 풍경화는 시점(視點)이 그림 바깥의 한곳에 고정되어 있어 안정감을 준다. 반면, 동양 풍경화는 시점이 화면 내에서 이리저리 이동 - 또는 작가가 스케치북을 들고 이동 - 하면서 여러 개의 흐름, 또는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나는 동양화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강조하고자 하는 사물은 멀리 있어도 크게 그려 넣고, 주변 사물은 화가 가까이 있어도 작게 그렸다. 서양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불편함과 친근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느린 풍경”, “그리운 잡풀들”)
나는 남도의 평탄한 땅(面)에 동양화의 전통인 선(線)을 그려 넣어 선과 면을 오버랩 시켰다. 남도의 풍경에 그려진 나의 선들은 노래 같기도 하고 바람의 흐름 같아도 보였다. 나는 이 그림들을 진경(眞景)이라 부른다. 나에게 진경이란 공간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 정신을 잡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는 것과 똑같이 묘사하는 동양화는 사경산수다.
4. 풀꽃
나의 풍경화에서는 종종 잡풀이 크게, 그리고 주변 환경은 작게 그려진다. 나는 잡풀이 좋다. 잡풀들은 각자 자기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어느 순간 나는 잡풀에 핀 꽃이 폭죽 - 꿈이 실현되는 순간, 깨닫는 순간, 또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 처럼 보였다. 나는 이 “싱그러운 폭죽”이라는 주제를 모던(modern)하게 표현해 보기 위해 서양화의 수법 중 하나인 콜라쥬 기법을 활용했다. 조형물로도 만들어 보았다. 형식은 다양해졌지만, 내 작품들에 나타나는 동양화적 전통, 즉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처럼 주어진 시간 내에 완벽한 선(線)으로 꽃을 표현하는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붓질 때문에 내가 버린 “싱그러운 폭죽”(그림)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조형물 제막식 때 산화시켜 주었다.
5. 별을 그려 드립니다.
나는 서울에 와서 화가로서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서울은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고향이 그리웠다. 이익을 남기지 않고 고향을 위한 작품도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찾은 고향은 생각했던 곳과는 달랐다. 낯선 이들이 많았고, 내 뜻을 오해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서로 많은 점이 달라졌다. 서울과 안성을 오가던 도중 도시 변두리에서 친근한 모습들을 발견했다. 나는 여러 적치물(積置物)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변두리의 어수선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낮의 변두리 풍경에 별도 그려 넣었다. 별이 낮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강력한 햇빛 때문이지만 그림에서는 그런 제약을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감성으로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다.(“오야동”, “오금동”, “빈 수레”, “하면 된다”)
내가 그린 별들은 꿈을 의미한다. 나는 변두리 풍경 속에 별들을 그려 넣으며 꿈을 생각해 보았다. 꿈속에는 욕망과 에너지가 숨어 있다. 변두리 풍경의 하늘을 욕망을 표현하는 빨간색으로 그려 넣기도 했다. 욕망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잘 다뤄지지 않으면 흉물이 된다. 또 욕망의 관점으로 보면 꿈은 허망하다. 꿈의 성취 뒤에는 허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경을 이기는데 꿈은 큰 도움이 된다. 꿈은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변두리의 어지러운 풍경에 수확되지 않은 파 같은 소재들을 그려 넣었다.(“빈 수레”)
6. 다시 느린 선의 꿈과 노래 그리고 사랑
예술은 스타일의 역사다. 예술에 새로운 주제는 없다. 새로운 스타일만 있을 뿐이다. 나는 부끄러웠던 학창시절과 불우했지만 큰 산 같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동양화(한국화) 스타일로 녹여 냈다. 스승으로부터 배운 동양화의 장점은 직선 아닌 곡선, 그것도 느린 선에 있다. 그 느린 곡선에는 직선과는 다른 인간적인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예술가에게 “낯설게 하기”란, 익숙한 주제라도 그만의 스타일로 변신시키는 것이다. 예술가는 그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부끄러운 얘기를 이기적일 정도로 진솔하게 풀어낸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의 솔직한 고백에 감동하고 비로소 자신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다. 내가 평생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꿈과 노래 그리고 사랑 - 남녀 간의 사랑 이상의 것 – 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수많은 인물, 고향의 풍경, 풀꽃, 변두리 풍경 등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깊은 맛을 품은 숙성된 한지 위에 느린 선 스타일로 그것들을 풀어내면서 조금씩 다르게 발전시켜 왔다.
첫댓글 지난 금요일 강의에서 놓친 부분을 많았음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낯설음과 익숙함의 차이,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과정이 예술이 인문학과 일맥상통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 했습니다.
놓친 부분 보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관상목보다 주체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잡풀에 대한 예찬론에 공감이 많이 가더라고요.
메모도 못헀다면서..이렇게 자세히?~^^ 느린 곡선에는 인간적인 무엇인가가 숨어있다.. 낯설게하기, 생소하게 보기~~^^
해석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씀 드린 것 같네요. ^^;; 근데, 어둠속에서 휘갈겨 쓴 글씨가 보이더라고요.
주백님의 정리만 보아도 예술가로서 그분의 철학을 느낄 수 있네요. 강의를 정리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예술가는 감성으로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그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부끄러운 얘기를 이기적일 정도로 진솔하게 풀어낸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의 솔직한 고백에 감동하고 비로소 자신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다.> 비록 예술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나의 관점은 어떠한가? 돌아보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올해도 다른 배움으로 인해 월례강좌는 참석 못하는데... 궁금함을 풀어주시는 정리 언제나 감사합니다.
저는 어둠속 휘갈겨 쓴 글자 해석하느라 눈에 핏발이 서고 맥박 뛰는 게 느껴졌어요. 문집은 언제 주실꺼죠?
화가의 시점이 그림안에서 여기저기 소요하는 동양화,
반면 소실점을 이용한 원근법으로 인해 그림밖 어느 지점에 시점이 고정된 서양화.
면적 선적요소를 오버랩하여 일 노래 바람소리를 담아낸 화백님의 그림에 맘이 한없이 편해지더라구요~
나무.꽃은 땅이 쏘아올린 폭죽이며
모든 성취감이 품고 있는 허무의 상징..
폭죽처럼 성취 또한 이루어진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라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정말 잘 정리하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