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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
선술집 ⓒ Nejron Photo/Shutterstock.com
선술집은 오랜 역사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무역·여행·산업의 성장과 운명을 같이해왔다.
BC 175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밀주업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맥주). 한편 고대 그리스에는 대부분 지방의 사교장 성격을 띤 레스차이(leschai)라는 장소가 있어 지역주민과 외지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BC 5세기경 그리스에도 파트네(phatne)라는 화려한 식당이 있어 현지인을 비롯해 잠시 머무는 무역상·외교사절·정부관리 들이 이용했다.
고대 로마에는 선술집의 한 형태인 루파나르(lupanar)가 있었으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아무도 이곳을 이용하지 않았다.
으슥한 뒷골목 같은 곳에서 번창한 루파나르는 문을 잠근 채 영업을 했으며, 밤이면 어둠을 틈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찾아와서 먹고 마시며 도박을 즐겼다. 로마 공화정 및 로마 제국 당시의 데베르소리아(deversoria)·타베르나이(tabernae)·카우포나이(cauponae)·비불라이(bibulae) 같은 곳들은 기껏해야 건달이나 타락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였고, 심할 경우 범죄자들의 소굴이었다.
그러나 하류 여인숙인 카우포나(caupona)와 고급 선술집의 형태인 타베르나메리토리아(taberna meritoria)에서는 맛있는 요리와 정식을 제공했다. 이러한 장소들은 아치형 지붕이 있는 긴 방의 구조로 꾸며져 있었으며, 시중드는 소년들이 반(半)부동자세로 서 있고 주인은 한쪽 끝의 높은 단 위에 앉아 있었다.
로마 점령하의 영국에서는 로마의 카우포나이와 타베르나이 등으로부터 유래한 여인숙들이 운영되었다.
이들 여인숙의 뒤를 이어 맥주집들이 등장했는데, 여자들이 주모 역할을 했고, 문 위에는 빗자루를 내걸어 눈길을 끌었다. 중세 영국의 여인숙은 방랑하는 타지인이나 살인자·도둑·정치범들의 성역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제공하는 풍습은 현대 레스토랑의 전신인 선술집에서 맨 처음 시작되었다(브리튼).
16세기 중반 도회지에서는 외식을 즐기는 일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일반화되었다.
대부분의 선술집에서는 1실링 이내의 값으로 훌륭한 식사를 제공했으며, 추가비용을 내면 포도주와 맥주도 마실 수 있었다. 1565년 영국에 담배가 도입된 이후로는 선술집에서 담배도 판매했다. 선술집은 이와 같은 여흥장소로서의 역할 이외에 사교장소의 역할도 해, 시설이 잘 된 일부 선술집들은 정기적인 회합이나 비공식 사교장으로 이용되었다. 벤 존슨과 그의 친구들이 애용했던 머메이드(Mermaid), 셰익스피어의 존 팰스태프 경과 관련 있는 보스헤드(Boar's Head), 당대의 배우와 극장 지배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팰콘(Falcon) 등은 튜더 왕조시대의 영국에서 대표적인 선술집들이었다.
미국에서 대중이 술과 식사를 즐길 수 있었던 최초의 장소가 어떤 곳이었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장소들을 여인숙(inn)·선술집(tavern)·여관(ordinary) 등으로 불렀던 것은 분명하며, 이러한 이름들은 언제든지 서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미국에 선술집이 등장한 시기는 초기의 네덜란드 이주민들이 도착한 때와 거의 일치한다. 보스턴 최초의 선술집 콜스(Cole's)가 문을 연 것은 1634년이었다. 뉴욕 최초의 선술집은 키프트 총독 통치하의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문을 열었다.
당시 그는 타지인과 여행객들을 자신의 집에서 대접하는 데 지쳤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선술집을 세웠다. 이후 그 건물은 뉴암스테르담 시청으로 이용되다가 다시 뉴욕 시청이 되어, 1880년대 들어 지금의 시청 건물이 세워질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다. 당시 식민지 법정은 각 지역사회에 선술집과 같은 건물을 짓도록 요구했다. 이같은 초기 미국의 선술집들은 정부의 관리하에 있었으며, 요금 또한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미국 혁명기간중 패트릭 헨리는 이 선술집을 '자유의 요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정치적인 계획들이 그곳에서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19, 20세기에 들어 선술집은 도시 및 마을의 바(bar)나 시골지역 가로변의 여관 등으로 변화되어 사교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국에도 선술집과 유사한 형태로 밥과 술을 팔면서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던 집이 있었는데, 이는 현대적 의미로 보면 술집·식당·여관을 겸한 영업집이었다.
출처: 다음백과 | Daum
*선술집
주사거배 - 신윤복 작
'손님이 서서 마신다'하여 선술집이라고 한다. 왠지 어감 때문에 맨 앞의 '선'자가 무슨 한자인 줄 아는 사람도 많은데 순우리말이다.
조선 후기에 백성에서 관리까지 즐겨 이용했던 술집의 유형으로 반드시 서서 마셔야 했으며, 앉아서 마시면 건방지다 소리와 함께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조선의 선술집은 술값만 받고 안주값은 따로 받지 않았으며 안주를 손님이 마음대로 집어먹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손님의 회전을 위해 다른 말로 하면 다리가 아파서라도 안주를 축내지 못하도록 서서 먹게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거리정비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2010년 정도까지만 해도 종로1~5가에는 술과 안주를 선술집 형태의 포장마차가 많았다. 분식 포장마차처럼 의자 자체가 없는 형태로, 추운 겨울이 되면 매우 싸고 양이 아주 적은 안주와 소주 잔술도 팔았으며 퇴근길 소주 두세 잔에 간단히 안주를 집어 먹으며 몸을 녹이는 일용노동자들이나 약속을 기다리는 혼술인들이 주 고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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