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꼬나 물다. 담배를 태우다. 구름과자를 먹다.
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아이스 블라스트였던 것 같다. 말보로. 기침하지 않았다. 고통스럽지 않았지만. 담배를 피워댔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척 연기했다. 23살에 내 박사과정은 들어오자마자 엎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사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너무 달렸다고 생각했다. 알싸한 박하맛 말보로 아이스 블라스트의 연기가 목을 가득 채웠고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조금 예민했을 뿐이다. 담배를 피면 어지러웠다. 머리속이 멍해지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내 세상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 한점 한점씩 없어져 가는 내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럴 때 마다 자연스럽게 담배를 찾게 되었고 무섭게 빠져들었다. 학교 흡연실을 밥먹듯이 찾게 되고 수면실에서 맨날 몇시간씩 잠을 잤다. 목적성 없는 진학은 나를 고통스러움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다. 줄담배가 당연하듯 진학은 당연하다고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스 블라스트의 박하가 적응되었을 무렵 말보로 실버로 갈아탔다. 낮에 자고 밤을 세며 공부했다. 목적성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예민했고 담배는 달았고 건강은 나빠졌다. 가만히 서있지도 못할 만큼 건강이 나빠졌고 공부는 당연히 명목뿐이었다. 말보로 실버를 피우고 커피를 마셔댔다. 냄새가 끔찍히도 났지만 그래도 담배를 즐겼다. 삶을 즐기지 못한죄로 병원을 참 많이도 들락거렸다. 멍했다. 담배를 많이 피는 날에는 그저 멍했다. 다음날 아침은 피곤했다. 온갖 담배를 다 손댔다. 보헴, 던힐. 갈피를 못잡았다. 인생에서 담배에서 갈피를 못잡았다 버티는 삶이 내 커리어에는 확실히 좋았을 것이다. 순식간에 박사를 따고 직업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2500원 하는 담배는 너무 쌌다. 담배를 빌리고 주는 것이 너무 쉬웠다. 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보헴시가, 클라우드, 뫼비우스 선택지가 많았지만 사실 다 비슷했다. 반갑쯤 피우면 멘솔이든 뭐든 다 같은 맛이 났다. 몇 달 지나면 다 똑같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인생과 같았다. 열심히 하면 선택지가 많아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약을 아침 점심 저녁 퍼먹고 담배를 그만큼 필때쯤 군대가 면제됐다. 기쁘지 않았다. 던힐을 피웠다. 박사과정은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했고 군대에 자원 입대 했다. 약도 한번에 끊었고 담배도 끊었고 다 끊어냈다. 천지가 개벽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던힐…
군대에서 피웠던 그 다음 담배는 역했다.
어디로 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역할 뿐이었다.
첫댓글 왜케 제가 쓴 글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