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동안 쌀을 안사먹었다면 행복한 것인가 아닌가는 모르겠다. 나는 친정 덕분에 쌀을 안사먹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0년이 넘었어도 작은아버지께서 쌀을 주고 계시고, 그 쌀을 아들과 딸에게도 나누어주며, 나는 일년동안 약 20Kg정도 먹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러고 있다. 잡곡은 가끔 사고있지만, 사실 쌀값을 모르고 산다고 해야할 것 같다. 옛날 언젠가 어느 정치인이 쌀값 연탄값을 몰라 망신을 당한것을 기억하는데, 정치인이 아닌 우리 보통 사람중에는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을가 싶다. 나는 교통 요금도 모른다. 지하철 안타고 버스는 타본지가 더 오래됐다. 그러니 모르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이것은 실생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 일수도 있다. 사실 나는 약간의 먹거리를 구매할 뿐이다. 아주 가끔은 세제를 사거나. 어찌보면 생활인이라고 할수도 없다. 다수의 노인들이 이러고 사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는 것 같지않는 사람들, 그중에 하나가 "나" 인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쌀 없이도 잘 살고있다. 들은 얘긴데, 아들집엘 갔더니 아무리 살펴봐도 쌀이 없더란다. 요즈음엔 흔한 얘기다. 햅반이란게 쌀을 대신하고 있고, 집에서 먹기보다는 밖에서 해결하는 일이 더 많다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일단 월급이 들어오면 쌀과 연탄을 구입하는게 극히 당연했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말이다. 가치관도 엄청 달라졌다. 우리가 아닌 '나' 중심이 되어버렸으니까. 아니, 언제나 '나'가 두두러지긴 했다. 그러나 그 '나'도 '우리'가 전제된, '우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나'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우리가 삭제되고 나가 두두러진 현상이 가저온 악순환이 오늘의 참사를 부른것 아닌가 싶다. 답답하고 침울하고 그렇다.
오늘은 밥을 지으려고 준비중이다. 한달에 두번이나 한번 정도 밥을 한다. 냉동실에 보관하고 먹을 때마다 전자렌지에 대워서 먹고 있다. 간편을 쫒다보니 그러고 있다. 가끔 나의 한끼 식사비를 돈으로 계산해보곤 하는데, ㅎㅎㅎ 민망하다. 밖에서 한끼를 먹으려면 최소 만원 한장은 필요하다. 그 만원 한장이면 나는 몇끼를 지낼수 있을까. 벌지않았으니 쓰지 않는게 맞다. 이런 순간에는 내가 왜 사는지, 살아있는게 감사한지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끝까지 사람답게,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게 맞다. 그럴수 없다면 안사는게 맞지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지만, 살고 말고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스스로 목슴을 끊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절식을 해서 죽엄에 이른 사람 얘기는. 좀 덜먹는 일도 할수없는 사람이 나다. 맛이 있거나 말거나 먹는다. 꾸역꾸역 먹는다. 아니, 어떤날에는 생각없이 담았다가 생각없이 숫가락을 놓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생각없이"는 늘 반복되고 있다. 어젠가, 옛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정말이지 할말이 없었다. 무성의 하게 느껴저서 집에 돌아와서 다시 통화를 했지만 마찬가지 였다. 어쩌면 내 잠재의식속에 이런게 쌓여있어서 전화를 싫어 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쌍문동 형님과도 통화를 했는데, 이분도 귀가 어두워서 인지 순조롭지 못한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도 머지않았음을 안다. 아는데, 힘든것은 힘든것 아니겠는가. 광주 이모님은 귀는 아직 어둡지 않으시다. 그럼에도 불편하고 우울했다. 용돈이라도 드릴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정부에서 참 좋은일을 한다는 생각을 한다. 노령연금 말이다. 모든 노인들에게 월 30만원이라니. 자식들보다 얼마나 나은가. 생계비가 아니라 용돈으로 쓸수만 있다면 말이다. 정부나 정치인들이라면 엄청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있지만, 노령연금 부분에는 감사를 표하지 않을수 없다.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수나 다름이 없으니까. 오늘하루도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고 희망적인, 긍정적이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