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소그룹 모임에서, 송 모양을 본떠 그리면서 손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나는 손이 많이 시린 편이었다. 여름 한철을 빼고는 늘 차거나 시렸다. 애로사항이라고 봐야겠지만, 정작 손의 노고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손 모양을 그리고, 평소의 무관심에 미안해 하면서 한껏 치장을 해 보았다. 구경도 못해본 물방을 다이아 반지를, 그것도 몇개씩이나 붙여넣으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주인을 잘못만나서 그동안 그 흔한 반지한번 못 끼었던 불쌍한 내손가락들과 사과를 시도해 본 것이다. 아니, 어디 손 뿐이겠는가. 신체 하나하나가 다 그렇지 않았겠는가. 아니, 실상 주인은 누구지? 나의 본질은 어디가 주인인가? 갑자기 어려워진다. 손의 노고에서부터 시작헤서 각각의 신체들의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감사하거나 치하하다보면 누가 주인지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내 몸의 주인은 누구, 어디가 주인일까? 손발이 아니라면 내장쪽도 아니면 뇌쪽일까. 그도 아니면 혼인가? '나'가 존재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어느부분이 진정한 나일까. 손도 내 손 맞다. 발도 내발 맞다. 그러면 이 '내'는 어디있는 '내'일까. 결국엔 모든 지채가 협력해서 '나'를 이루는 것 아니냐는 두리뭉실한 답으로 끝을 낼수밖에 없다. 이정도가 '나'의 한계다. 생각해보니 주인 잘못만나 호사한번 누리지 못하고 노쇠했으니 불쌍하고 불운한 것인가. 감옥에 안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ㅎㅎㅎ. 하긴 더한 수치를 당할수도 있었다. 인생이란게 다 그렇고 그렇다면 말이다. 뒤척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가령, 빈손을 그려놓고 마음껏 치장을 해보라고 했던 것 처럼, 세상 모든것을 마음껏 가저보라고 했을때, 과연 나는 뭘 갖고 싶어할까, 혹은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짊어지고 일어날수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내가 뭘 갖고 싶은지도 잘 모르고 있다. 돈, 명예, 권력, 소소한 행복에 이르기까지,,, 골수에 사무친 결핍으로 인한 과욕으로 짊어지고 일어날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솔로몬은 다 누려봤기 때문에 헛되고 헛되닥 말할수 있었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가난한 젊은이가 지혜로 성을 구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하는 이가 없다라"는 말씀이 더 걸린다. 무명의 가난한 젊은이, 이건 치명적인 것인가. 씁쓸하지 않을수가 없다. 세상은 광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얼마간의 돈이 들어왔다. 순수하게 내돈이다. 이돈을 어디에 쓸까 하는 행복한 공상도 해보았다. 아들 딸에게 보너스를 줘보면? 어쩌면 돈이 더 필요한 것은 아들일수도 있다. 그런데 아들은 헤프다. 말도 아닌것들을 자꾸 사고 또 산다. 아들 입장을 이해한다 치더라도 과하다 싶다. 거기에 비하면 딸은 절제할줄 안다. 그래서 딸에게 주고싶은게 사실이다. 하나님이라면 어떨까.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 두실까. 아니, 내버려 둘수밖에 없긴 하다. 내가 할수있는 일이 아니다. 아마 내가 얼마간의 돈을 내어준다해도 별 도움이 안된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액수를 떠나서 화들짝 반가움을 표현할수 있는 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절대 결핍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약간의 도움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다. 어머니의 그 끊임없는 도움에 한번인들 내놓고 좋아해본적이 없었으니까. 가령, 어머니도 넉넉해서 주신것 아님을 알기에, 어머니께는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한 피와 땀이고 사랑과 헌신임을 너무도 잘 알았으니까. 연화리 꿈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 연화리는 늘 화평했다. 그러면 된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