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민들레야
민들레!!
밟혀도 밟혀도 끈질긴 자생력으로
금빛 찬란한 꽃을 피우는 야생화.
민들레의 근성(根性)은 일편단심.
이 꽃은 큰 뿌리 하나를 곧게 땅속
깊게 내리고 옆으로 실뿌리가
뻗어 있으나 가늘고 빈약하다.
그러나 큰 뿌리 하나가 땅속 깊게
뿌리를 내림으로서 바람에
흔들려도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활을 한다
조용필은 1981년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발표한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사자가 이주현이라는
여성이다.
당시(1981년) 72세의 이여사는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 하며 쓴
자전적인 이야기를 신문에
투고했는데 이를 본 조용필이
가사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글을 가사로 다듬어
노래를 탄생한 것. 그녀의 사연은
이러했다.
50여년 그녀의 동아일보
국장이던 남편과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이 한국전쟁 때
납북되는 바람에 홀로 3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노점 좌판 등을 하며 어렵사리
살아온 그녀는 평생 모은 돈을
남편이 다닌 동아일보에 기부해서
남편 이름을 붙인 <수남
장학금ㅂ>을 만든다.
1981년 4월28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햇빛 본 할머니의
꿈'은 이주현 여사의 일편단심
스토리를 기록하고 있다.
"수남(水南)! 이렇게 불러볼 날도
이제 오래지 않겠지요.
어언 접어든 나이가 고희를
넘겼으니 살 날이 얼마나 되리까.
당신을 잃은지도 30년 성상,
밟혀도 밟혀도 고개를 쳐드는
민들레 같이 살아온 세월,
몇 번씩이나 지치고 힘에 부쳐
쓰러질 듯 하면서도
그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겨
왔습니다.
이 여사는 노구를 무릅쓰고 1년에
걸쳐 집필한 원거 1천여장 분량의
'일편단심 민들레야' 의 첫 머리에
생사를 알길 없는 남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라 해도
일편단심 붉은 정열이 내게
없었다면 어린 자식들을 못
키웠을 것이고,
지아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情이 없었다면 붓대를 들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자전(自傳)의 내용을
다듬어서 쓴 노래말은 이렇다.
님주신 밤에 씨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인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인생
비바람에 꺽이니
나는 한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만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노래 중 '
그 여름의 광풍'은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청천벽력 같은
전쟁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낙엽지듯 가시었나'는 그해 가을
납북된 남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천국에 간
남편을 바라보며 그리워 함이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는 남편이 떠나면서
"걱정하지마, 잘 다녀올게"라고
말했던 그 목소리였다.
남편 납북시의 41세 여인은 그
협한 세월을 이겨냈다. 지난
30년의 절망과 피 눈물 속에서도
그녀가 말했듯 '일편단심 붉은
정열'로 버티며 어린 것들을
키워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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