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더 어찌 할 수 없는 상황.
그럴땐 강물에 뜬 꽃잎처럼
나 자신도 시간의 흐름에
그냥 흔들흔들 내버려둘 일이야.
늘 우리는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럴땐 살아지도록 내버려두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일본작가의 글에
그런 말이 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신의 영역으로 두라..)
설사 내가 바랐던 결과가 아닐지라도
그건 다른문을 열어주는 신의 뜻이겠거니 하고..
이런 것들이 합리화같고
내 좋을대로 해석하는 그런 우스갯소리로도 들리겠지만
암담한 현실을 버텨내려면
그런 사고의 전환도 가끔 필요해..
앉은 자리에서 각도를 바꾸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잖아..
그러니 당신도 그자리에서
밝아지려면 잠시 쉼표라 생각하고.
강물에 흔들리며
가는 것도 괜찮아..
이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테고.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미친듯이 일만 하게 될 걸?
강화대교 아래에서 바람맞던 이 시간을 그리워할 때가 올걸?
산미가 높은 커피를 마시니
아득한 정신이 제자리를 찾으며
나는 천천히 읊조렸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
거기에서 얻은 깨달음을 조금씩 얘기해주며
조금이나마 그가 편해지길 바랐다.
오랜만에 본 그는
얼굴이 너무 핼쓱했다
김가야..
내겐 이런 사람다운 말이
필요했었어.
당신은 별 것 아닌 얘기라 하지만
내겐 영혼을 울린다.
고마워.
역시 김가야를 만나러 오길 잘했어.
하다못해 길가의 돌멩이도
쓰임새가 있다는데
당신이 쓰임새가 없을라고?
전혀 그렇지 않으니
쉴 수 있을때 좀더 마음 비워.
나중엔 이런 시간도 그립기만 할거야..
강화대교 그늘 아래 앉았자니
바람은 역시 가을을 말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기진맥진한 나를
데리러 와주니 나는 그가 고맙고
켜켜이 쌓인 근심의 무게를 조금은 털어낸 기분이라며
그는 내게 고맙고.
그리고 우린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각자의 차로 돌아가
각자의 길로.
다시 또 언제 보자는 말도 없이.
그러나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고
없다한들 뭐가 아쉬운가.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날 것이고
이대로 간다한들
서운치 않다.
친구란 그렇지 않은가.
전화가 올 줄 몰랐고
그러니 더더욱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저 편안한 이 신발을
오랜만에 꺼내 신었을 뿐인데
내과로 와 기다리다가
전화를 받았고
한 시간쯤 기다려
만날 수 있었다.
와.김가야..이 신발을 아직도 신냐?
생일 선물로 그가 사보낸 것이니
당연히 기억할 수 밖에 없다.
한 7년 되는 것 같은데
아직 멀쩡하고 편안해.
내가 이 신발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마 5년은 더 신을 수 있을걸?
그러자 그는 웃었다.
김가야..조금만 기다려
내가 돈 많이 벌면
더 좋은 신발 사줄게..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이대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