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늦게 일어났다. 성서학당이 이미 방송되고 있어서 화들짝 일어나긴 했다. 수요일이다. 안일어나면 ? 안일어난다고 해서 달라질게 있을까. 시간이 멈추는 일도 없을테고, 그렇다고 내가 죽는일도 일어나지는 않을게다. 아니, 안일어나면 죽는 것 아닌가? 그건 못일어난 것이지 안일어난게 아니니 다른가? "못"과 "안"는 다른가 같은것인가. 내 무의미한 일상이 늘 그렇다. 그러면서도 이 무탈이야 말로 기적이고 축복임도 알고있다. 사실 편견에 집착에 교만함까지, 시기 질투에 탐욕까지 참 골고루 뭉처있는가 하면 꼬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흉악하는 생각은 안했다. 어쩌면 내게도 기회가 있을거라는 헛된 꿈에 속고 있었을수도 있다. 그런데, 이젠 끝자락에 와있고, 더는 헛된 기대마저 품을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부터 본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치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아니꼽게 생각하면서도 짐짓 부려웠을수도 있다. 대게의 여자들은 사치를 좋아하고 쾌락을 꿈꾸면서도 아닌척 한다. 최상의 패물들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가. 나 역시 깜량이 안되어서 외면하고 살았다. 어쩌면 한껏 치장한 중국 무협물을 좋아하는 이면엔 그런 흠모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있는 3김씨 아낙네들을 내심 부려워하고 있을수도 있다. 아니, 로망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한껏 영향력을 행사는게 아무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아니지 않는가. 내안의 탐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기회가 줘지지 않았을뿐이고. 물론 성숙하지 못한것은 틀림이 없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이유중에 배가 곺아서 인 사람도 분명 있을게다. 나는 다이어트에 목슴거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된다. 음식을 먹을 입장이 못되어서 굶주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서 안먹는 다는 것은 거이 초인적인 인내심이다. 어쩌다가 마른사람이 좋은 몸매가 되었는지, 적당히 살이 오른사람이 더 후해보이고 좋아보이는데, 미의 기중이 참으로 희안하다. 물론 거북하게 느낄정도로 비만은 건강상의 이유로도 경계해야 할테지만. 오늘은 또 어떤날이 될까. 화분도 겨울준비를 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몇개는 안으로 들여놓았다. 연화리에서는 찬서리가 내리면 짚프라기 약간을 흩뿌려 놓으면 그만이었는데,,, 작년에는 어떻게 했더라? 푸른잎이 다 죽은 다음에 안으로 들여놓기는 했던것 같기도 하고. 내년봄이 다시 내게 있을려나 모르겠지만, 봄이 있다면 당연히 채송화 봉숭화는 피개 되겠지? 누추하고 남루한 내 창가의 화분들,,, 이 빈약한 나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내일은 여전히 내일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