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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사에서 사설시조의 등장은 이전과는 다른 경향의 음악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기에 음악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로 양반 사대부들이 창작하고 부르던 조선 전기의 평시조와 달리, 사설시조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와 조선 후기 문학사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와 마찬가지로 형식적으로는 초장·중장·종장의 3장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종장이 평시조와 비슷한 틀을 유지하면서 초장·중장 또는 그중 일부가 4음보 율격에서 크게 벗어나 길이가 길어진 것이 특징이다. 이 점에 주목해서 사설시조를 ‘장시조(長時調)’ 또는 ‘장형 시조(長型時調)’라 부르기도 한다.
평시조는 3장 12음보의 비교적 짧은 형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창법(唱法)은 대단히 유장한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조는 지금도 가곡 창과 시조창의 형태로 불리는데, 현행 가곡 창에서 가장 느린 곡조인 ‘이삭대엽’으로 부를 경우 1곡당 1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사설시조는 평시조에 비해 장황한 노랫말을 촘촘히 엮어 넣어 부른다. 가곡 창에서 가장 빠른 곡조 가운데 하나인 ‘편삭대엽’으로 부를 경우 3분 정도의 시간이면 한 곡을 소화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가곡 창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이 두 곡조의 음악을 견주어 들어 본다면, 사설시조 작품이 평시조에 비해 얼마나 빠르게 연주되는지 실감할 수 있다. 흔히 조선 후기의 음악적 변화를 ‘번음촉절(繁音促節)’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곤 한다. 이는 음악의 절주(節奏, 리듬)가 빨라지고 선율이 복잡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빠르게 변화해 가는 조선 후기 음악의 흐름에 사설시조가 크게 이바지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사설시조가 문학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김천택이 1728년에 편찬한 가집 <청구영언> 가운데 ‘만횡청류(蔓橫淸類)’라는 곡조에 116수가 수록되면서부터다. 이들 작품은 대다수가 사대부들의 시조와 달리, 주로 평민층의 생활 체험과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평민적 익살과 풍자, 자유분방한 체험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여기서는 거칠긴 해도 활기가 넘쳤던 그 당시 민중의 건강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설시조의 특징은 이를 창작하고 향유했던 여항인들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조선 후기 여항인들은 지식이나 교양 면에서 사대부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봉건적인 신분 질서에 얽매인 상황에서 관직에 진출하기 힘들었으므로 이들은 주로 예술 분야에 힘을 쏟았다. 지배 계급인 사대부들에게 예술은 단지 여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항인들에게 그것은 일생을 바칠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여항인들은 중세적 이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활했기에, 민중의 삶과 정서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를 작품에 담아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종래의 관습화된 미의식과 세계관에서 벗어난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임으로써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연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사설시조를 구체적인 작품을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미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강연의 형식으로 소개가 되었고, 이후 내용을 다소 확대하여 ‘범속한 삶의 만인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설시조를 읽는 새로운 독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욕망의 인간학’과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정념과 애욕의 희극’이라는 제목으로 개별 작품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사설시조의 ‘사설’이 지닌 특징을 ‘사건성의 조명’이라는 측면에서 탐구하여,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결국 사설시조에 드러난 면모를 ‘희극적 성찰과 연민’이라는 특징으로 포착하여 다루고 있다고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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