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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선데이. 그 우울한 사연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우울한 일요일에 담긴 슬픔을 표현한 피아노 연주곡 "Gloomy Sunday"는 일명 '자살자들의 찬가'로도 널리 알려진 음악이다. 이 음악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35년 헝가리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셰레시 레죄(Seress Rezső)'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레죄가 이 곡을 처음 작곡했을 당시의 제목이 글루미 선데이는 아니었다.
레죄는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 헬렌과 헤어진 슬픔을 오선지에 담았는데, 헝가리에서 레코드로 출시된 후 이 음악과 관련해 18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로 몹시 블루지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이 곡은 2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전 유럽을 뒤덮고 있을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황과 맞물려 적지 않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희망 아닌 절망의 카타르시스를 선택하는 일에 어울리는 파트너로 여겨졌고, 그래서 그들은 이 음악을 들으면서 스스로 동맥을 끊거나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당시 미국의 NEW YORK TIMES는 이 사건을 두고 '수백 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특집기사를 실었을 정도였으며, 결국 이 노래를 작곡한 레죄 셰레스 역시 1968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사건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Gloomy Sunday의 원곡인 Vege a vilagnak(세계의 끝)의 악보.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셰레시 레죄
(Seress Rezső)가 1933년 발표한 곡으로, 원제는 헝가리어로 슬픈 일요일이란 뜻의 Szomoru
Vasarnap(소모루 버샤르너프)이다. 1933년 처음 발표된 버전은 연주곡이었고 제목도 세계의 끝이라는
뜻의 Vege a vilagnak 였지만 이후 작사가 자보르 라즐로(Javor Laszlo)에 의해 가사가 만들어지고
제목도 현재의 Gloomy Sunday로 바뀌었다.
이러한 '죽음의 전설'은 오랜 시간이 지난 1999년 독일의 영화감독 롤프 슈벨에 의해 동명의 제목을 가진 영화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가슴에 짙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의 제목이자 흐름을 주도하는 음악인 '글루미 선데이'는 1939년 나치 점령지의 하나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한 여자를 세 남자가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함께, 전쟁의 야만과 인간의 욕망에 의해 모두가 비극적 종말로 치닫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어찌 본다면 단순하고도 통속적인 설정이지만 영화는 처음과 끝이 절묘하게 이어진 듯한 견고한 드라마, 교묘하게 교차하는 그들의 애정관계, 그리고 추악한 인간 역사의 반추로 인해 그런 약점을 무난히 극복하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유럽의 진주로 일컬어지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시작되고 막을 내리는 숨 막히는 사건들과 더불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에리카 마로짠(Erika Marozsan)이 연출하는 그 비극적 장면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제음악인 "글루미 선데이"의 슬픈 피아노 선율을 쉽게 잊지는 못하리라.
어떤 이들은 이 음악 속에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의 충동을 느끼게 하는 어떤 악마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거나 반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음악을 벗 삼아 스스로 세상을 등졌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결국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대"라는 이유에서 그들에 대한 해답을 엿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철십자(Das Eiserne Kreuz 다스 아이제르네 크로이츠)는 독일이 프러시아(프로이센) 시대부터 사용한 문양이었으나
히틀러는 그 안에 나치당을 상징하는 하켄 크로이츠를 새겨 넣어 아리아 제국의 힘과 호전성을 과시했다.
전후 독일은 하켄 크로이츠를 전범국가 표시로 규정해 공개된 장소에 게시하는 일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나치당을 창당해 최강의 게르만 제국 건설을 제창하면서 철십자 '하켄 크로이츠'를 앞세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그 이성을 잃은 군대의 폭력 앞에서 어떤 젊은이들도 자유롭지 못했다. 끝없는 경제공황, 물자가 부족한 현실, 군대에 끌려가 누군가를 죽여야 하거나 죽음을 당해야 하는 고통은 전쟁에 처한 유럽 젊은이들에게 있어 공통의 비극이자 절망이었으리라.
혼란한 시대상 앞에서 절망했던 그들은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저버리는 비극이 속출했고, 그랬던 이들 대부분은 "글루미 선데이"를 통해 죽음으로 가는 자신들의 외로움을 위로 받으려 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도 남자 주인공인 "자보"는 이 음악 안에 깃든 "인간의 존엄"에 대한 해답을 거론한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이 지닌 인격에 침해를 받았을 때, 그것을 이길 힘이 없을 경우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고결한 가치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며 동시에 가장 치열한 저항이기도 하다. 존엄성의 포기는 영혼없는 노예임을 자처하고 인정하는 것이며,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불의한 현실을 고발하기도 한다.
실연의 상처에 깊이 빠진 작곡자의 마음을 말해주듯 슬픈 심정을 담은 이 노래는 그 후 빌리 할러데이, 루이 암스트롱, 새러 맥라클란, 새러 브라이트먼, 쉬니어드 오코너, 마리안느 훼이스풀 외에도 수많은 유명 가수들이 앞을 다투어 취입했으며, 그들 모두는 이 음악을 통해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을 발산하고 있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1883~1971)은 이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피치 블랙 - 죽음의 화장품'을 출시했다.
동유럽의 장미, 다뉴브의 진주라 불리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부다페스트. 수세기를 걸친 유럽의 역사를 비밀로 간직한 채 도시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푸른 다뉴브 강의 전경을 비추며 흘러나오는 헤더 노바(Heather Nova)의 처연하고 슬픈 음성이 담긴 글루미 선데이는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들의 가슴에 짙은 여운을 남기는 잔인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 일로나, 자보, 안드라스, 그리고 글루미 선데이...
-영화의 줄거리-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레스토랑이 있는 좁은 골목 안으로 최고급 승용차들이 연이어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이는 독일 최대 철강회사의 회장. 60대로 보이는 레스토랑 오너는 입구에서 회장 일행을 맞이한다. 이들이 레스토랑에 들어가 예약석에 앉자 점잖은 모습의 노 회장은 바이올린 연주자를 불러 주머니에 팁을 찔러주며 “그 음악”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한다.
음식이 나오고, 식사 도중 연주곡을 들으며 잠시 회상에 젖던 노 신사는 피아노 위에 있는 한 젊은 여자의 흑백사진을 발견하고 갑자기 초조한 기색을 보인다. 그러던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쥐어 뜯으며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레스토랑. 그때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외친다.
“그래. 저 사람도 이 노래의 저주를 받은 거야. 글루미 선데이의 저주를...”
급박한 사태가 벌어진 레스토랑의 2층 안채에서는 백발의 한 노파가 어둠 속에서 이 노래를 혼자 흥얼거리며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약병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60년 전. 유태인이던 애인이 나치에 끌려가면서 그들이 당신마저 잡으러 오면 피아노 속에 감춰둔 약을 마셔버리라고 한 독약이 담겨있는 그 병을...
부다페스트의 한 거리에서 연인인 '자보'와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일로나'는 일하던 피아노 연주자가 그만 두자 새 연주자를 물색한다. 그러다 얼굴이 마르고 우수에 찬 표정을 지닌 '안드라스'의 오디션을 보고 나서 자보와 함께 그를 고용한다.
자보 레스토랑에 자주 놀러오면서 신형 독일제 라이카 카메라를 자랑하던 독일인 청년 한스도 이들과 가깝게 지낸다.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외롭게 지내던 안드라스가 일로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피아노곡이 입소문을 타고 번져 나가면서 레스토랑은 이 곡을 듣고자 찾아오는 손님들로 붐비고,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입대를 위해 독일로 떠나기 전날 일로나에게 구혼했다가 그녀의 거절에 상심한 한스는 술에 취해 강물로 뛰어든다.
자기를 건져준 자보와 밤의 다리를 함께 건너며 우정을 변치 말자고 다짐하지만, 얼마 후 독일군 대령이 되어 헝가리 점령군으로 돌아온 한스는 매우 권위적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안드라스가 만든 곡이 널리 알려지면서 레코드사 오너가 찾아와 그에게 흡족한 조건을 제시하고, 레코드는 전쟁 중에도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간다.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 주인 자보의 애인이었지만 점차 아름다운 일로나를 사랑하게 된 안드라스. 일로나도 과묵하고 고독한 그에게 마음이 끌려 안드라스와 하룻밤을 보낸다. 착한 사람 자보를 생각하며 삼각관계의 괴로움을 견디기 어려운 일로나는 결국 자보와 헤어지기기로 마음을 정하지만 “당신을 모두 잃느니 절반만이라도 갖겠다”는 자보의 말에 안드라스는 자보와 서로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일로나와 지내기로 합의하면서 전쟁이 드리우는 고통을 함께 극복해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어느 날 헝가리 제철회사 회장 가족이 레스토랑을 찾아와 식사를 하며 이 곡을 청한다. 손님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안드라스.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회장 딸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이 곡을 틀어놓고 칼로 자신의 동맥을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물자부족으로 식당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전쟁이 광기로 치닫는 그 시간을 달래고자 영화관에 간 세 사람은 화면에 나오는 전쟁뉴스를 통해 자신의 노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곡을 만든 안드라스는 자기의 곡이 악마의 음악으로 불린다는 소식에 몹시 괴로워하며 다시는 그 곡을 연주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며칠 후 독일장교 한스는 술에 취한 동료장교를 데리고 와 피아노 앞에 앉은 안드라스에게 그 곡을 연주할 것을 강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던 안드라스는 계속되는 침묵으로 이를 거절한다.
술에 취해 권총까지 뽑아들고 안드라스를 위협하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2층에 있던 일로나는 내 노래로 만족하라며 즉석에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러주고 다시 올라와 마음을 진정시키지만, 독일장교의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뽑아든 안드라스가 스스로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한 발의 총성이 식당을 울린다.
전쟁의 광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유태인 대학살극 '홀로코스트'는 극한 공포를 부른다. 한스는 돈 많은 유태인들의 체포명단 삭제조건으로 챙긴 금품을 전사자 관에 넣어 자기 집으로 보내 부를 축적하고, 자보는 집으로 들이닥친 독일군에게 끌려간다. 피아노 속에 아내를 위한 독약 병을 숨겨두고.
다급한 일로나는 나치에 잡혀간 자보를 구하기 위해 한스가 있는 주둔군 사무실로 달려가 그에게 자보를 살려줄 것을 호소하지만, 패전으로 다급하게 기밀서류를 불태우던 한스는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일로나를 범하고, 그녀는 남편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반항조차 하지 못한다.
자신을 범한 한스를 믿고 다음날 아침 열차 역으로 달려간 일로나는 명단을 확인하지만 끝내 자보의 이름은 유태인 석방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고, 영원한 이별을 예감한 자보는 사랑하는 일로나를 돌아보며 슬픈 표정으로 수용소행 죽음의 열차에 몸을 싣는다.
패전 후 독일로 돌아간 한스는 귀금속을 처분한 돈으로 철강사업을 시작해 막대한 부를 이루고,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으로부터 60년이 지난 후 자신의 젊은 시절 추억이 깃든 부다페스트의 한 식당으로 향한다.
한 때 일로나를 사랑한 안드라스와 자보를 죽게 만들었으나 이번엔 자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 '자보 레스토랑(Szavo Restaurant)'으로...
(성지인/팝컬럼니스트)
Gloomy Sunday / Heather Nova
우울한 일요일. 내 시간은 헛되이 떠돌고
가장 사랑스러운 그림자들 수많은 하얀 꽃들과 함께 내가 머무네
검은 슬픔의 벤치가 당신을 데려갈 때까지 나 결코 그대를 깨우지는 않으리
내가 당신 곁에 머문다면 천사는 분노할까?
우울한 일요일. 내가 흘려보낸 그림자들과 함께
내 마음은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
곧 촛불과 기도가 내게 다가오겠지
그러나 아무도 눈물 흘리지는 않기를
나는 기쁘게 떠나가기에. 죽음은 다만 꿈이 아니리
죽음 안에서도 나는 내 영혼의 마지막 호흡으로 당신을 축복하리라
우울한 일요일
나는 한 가지의 꿈만을 꿨다네
자다가 깨어나면 내 곁에서 잠든 그대를 보는 꿈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소망하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갈망하는지
우울한 일요일. 정말 우울한 일요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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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헝가리어로 슬픈 일요일이란 뜻의 Szomorú Vasárnap(소모루 버샤르너프). 당시의 우울한 시대상과 맞물려 많은 사람의 자살을 부른 곡으로 유명하다. 1933년 처음 발표된 버전은 연주곡이었고 제목도 세상의 끝이라는 뜻의 Vége a világnak 였으나 1935년, 작사가 야보르 라슬로(Jávor László)에 의해 가사가 만들어졌고 제목도 현재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가사가 붙은 판본은 헝가리의 가수 칼마르 팔(Kalmár Pál)의 곡으로 처음 나왔다.
이 노래에 저주가 걸려있어 노래를 듣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살을 하게 된다는 등 이 노래와 관련되어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사실과 루머가 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 노래가 당시 자살한 사람들에게 어떤 계기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 정도는 가능하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당시 글루미 선데이가 헝가리 사람들이 제목만 보면 멜로디가 떠오를 정도의 국민노래였다는 것. 실제로 이 노래는 상당히 유행했다고 한다.
비슷한 제목의 도시전설 검은 일요일과 이 음악의 이야기와 이 소문이 많이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검은 일요일은 희생자들과 음악을 듣고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생존자(?)들이 음악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언했다고 한다.
그랬던 터라 일부 방송국에서는 해당 곡을 금지처분하거나, 악보를 불태워가지고 원본 악보가 소실되었다는데 셰레시 레죄가 직접 부른 가이드 녹음도 남아있고 35년에 곡을 최초로 부른 칼마르 팔의 녹음도 남아있다. 확실히 우울한 곡조이긴 하다. 일단 부른 칼마르 팔이 89세로 사망. 작곡자인 레죄는 노래가 작곡된 지 한참 뒤인 196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글루미 선데이는 1999년 제작된 독일 영화. 감독은 롤프 슈벨(Rolf Schubel), 주연은 요아킴 크롤(Joachim Krol-자보 역), 스테파노 디오니시(Stefano Dionisi-안드라스 역), 에리카 마로잔(Erika Marozsan-일로나 역)이다. 여기에 벤 베커(Ben Becker-한스 역)가 대표적인 조연이다.
감독 롤프 슈벨은 노래에 얽힌 실화를 소재로 한 바르코프(Nick Barkow)의 소설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The Song of Gloomy Sunday>(1988)를 각색해 영화를 만들었다. 한 여자를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면서, 노래(번안, 각색한 곡)가 영화 전반적인 흐름을 이끈다. 영상과 음악의 조화 부분에서는 호평이 많은 편이다. 영화보다 OST를 먼저 접하고 영화를 본 사람도 제법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2000년 10월 21에 개봉되었으나 흥행 성적은 신통찮았다. 이후 2003년 5월 30일에 재개봉하였고, 2016년 11월 3일에 다시 재개봉하였다.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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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올리면서 회원공개만 허용하고 다음/카카오검색이 가능한 체크표시를 미처 빼지 않았더니
검색을 통해 들어온 외부 게스트 서치어들에 의해 조회수가 많이 올라갔군요.
그래서 센토카페 회원만 구독이 가능하도록 외부인 출입구를 막았습니다.ㅎ
원래 온라인 유저들은 긴 글을 비추하시는 편이라 피로감을 드린 것 같은데
지루하시면 평론까지 절반만 읽으셔도 괜찮으실듯 합니다.
앞으로는 좀 압축하고 줄여서 써보겠습니다.^^
정말 비극적인 영화로군요 작곡자가 실제로 자살을 했고 영화속 세남자의 사랑으로 인해 고통의 삶을 살게 되는
한 여인의 마지막 복수는 음악이 죽음을 불러온다기 보다는 자업자득이라고 봐야겠지요 전쟁이라는 시대상황도
간과할 수 없겠지만 글루미선데이 곡의 모티브가 실연이었기에 상실의 에너지가 커지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자살충동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는지요 음악이 무기가 되어 자신을 자해하게 된 지금도 알수없는
글루미선데이 귀한 자료 올려주심에 감사합니다 우울한 일요일엔 술 한잔 하며 댄스뮤직을 들어야겠군요
우울한 일요일의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한 댄스뮤직은 얼마든지 권장하나
술 한 잔은 아니 아니.. 아~~~~~니되오.
우울한 기분에 잘못 술푸면 신나는 댄스곡도 술푸게 들릴 수가 있으니까요.ㅋㅋ
음악과 죽음의 연관성은 전혀 없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이 근원적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미증유의 파국에 대한 불안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실의 시대가 낳은 위기감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가끔 드는군요. 혹시 영화를 못 보셨다면 영화파일을 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공감의 말씀.. 늘 감사합니다.^^
오래전부터, 이 곡, gloomy sunday가 어떤 곡인지? 궁금해서 몇 번 신경써서 들어본 적도 있었고, 오늘도 또 신
경써서 piano 음악까지 찾아서 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곡으로는 들려오는데
자살과 관련된 느낌으로는 잘 다가오지가 않네요. 아마도 절절했을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렇거나, 아
니면, 제 음악적 감성이 좀 부족해서 그러리라고 생각되네요. 이 곡과 영화는 음악의 gioomy한 모티브로만 연결
되는 것 같았는데, 영화가 시작되는 무대와 그 시절까지도 비슷하게 설정된 것 같네요. 아마 앞으로 혹시 이 영화
가 재 수입된다면, 아주 즐겁게 영화를 볼 것 같네요. 감사드립니다^^.
다뉴브님 말씀이 맞습니다. 좀 우울하지만 좋은 음악인데 뭐 이정도를 듣고 목숨까지 버리나.. 그런 생각 들죠.
영화에서 헝가리 제철회사 회장 딸이 목숨을 끊는 일도 아버지가 평생을 일군 회사인데 점령군 나치에 의해
모든 자산이 몰수당하는 절망적인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이 음악을 자신의 선택을 이해해줄만한
죽음의 동반자로 여겼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 음악을 듣고 자살하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음은 사람들이 처해있는 시대상황과의 연관성을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영화파일을 구하면 다뉴브님께도 한 번 보내드리겠습니다. 특별회원가로 만원만 송금해 주세요.ㅋㅋ
글루미 선데이는 세번쯤 봤는데, 처음 볼 때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마음 속에서 머믈러 있었읍니다.
뭐랄까요. 주인공 일루나가 마치 스스로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혼연일체를 느낀 감명이었달까요.
그 후에 세월이 흘러 우연히 t.v 에서 다시 이 영화를 접했는데, 다시 보는데도 전혀 처음과 다르지않은 감상을 느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루미 선데이 음악을 여러번 듣고, 그러다 보니 지인으로 부터 씨디를 선물 받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렇다고 다뉴브님 이야기 처럼,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어요. 가슴을 울리는 뭔가 독특한 감성이 전해지긴 했죠.
영화에서 진짜 중요한 대목이 빠진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 일루나가 할머니가 되고, 일루나의 아들이 레스토랑을 이어 받았죠. 성실히, 자보처럼 레스토랑을 잘 꾸려 나가고 있었죠. 그는 자보의 아들이었죠. 하지만, 이 영화의 반전, 가슴을 치는 처절함은...
사실, 그때 일루나와 관계한 자보와 안드레스 누구도 아닌, 단 하룻밤으로 남편의 안전을 위해 몸을 던진, 그러나 다만 몸만을 유린했을 뿐, 일부러 아우슈비츠로 자보를 보내버린 저, 독일군 나찌 장교,
자보로 부터 자살하려던 목숨을 구하게 되었던, 한스, 그의 아들이라는 데에 이 영화의 충격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자보의 아들로 보였죠. 하지만 자보는 끌려갈 때 까지 그녀가 임신했다는 아무런 제시가 없었죠.
일루나는 자보의 아들로 키웠고, 관객도,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그는 한스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그는...머리가 하얗게 센 어머니의 원수가 누군지 모른채...영화는 끝납니다.
이게 제일 충격이었고, 이 영화의 모티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글루미 썬데이는, 정말 극적인 리얼리티를 가진 영화였습니다.
쓰다보니 영화의 시놉시스가 자꾸 길어질 것 같아 부득이 생략한 부분을
단고님께서 댓글로 소상히 언급해 주시는군요. 친절하신 배려에 감사합니다.
바르코프의 원작 소설에도 식당 입구에서 철강왕 한스를 맞는 레스토랑 오너의 정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죠. 결국 독자나 관객의 몫으로 떠넘긴다는 의도는 명확한듯 합니다.
한스가 일로나의 몸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보를 열차 탑승자 명단에서 빼지 않은 이유는
가까운 미래에 일로나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요?
벤추라 오케스트라 전단원 권총 자살사건은 사실이 아니지만
음악을 자살사건과 너무 연관짓는 상업성도 꽤나 불편하긴 합니다.ㅎ
한스의 아들이었군요!!!영화가 너무나 아름다우며 음악이 주는 감동이지금까지도 오랜동안 가슴에 남아있어요
단고님 우연님께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