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소은 추천 -- 시 읽기>
샐비어의 한계치
마경덕
앞마당 샐비어가 피를 철철 흘리며 피고 있다
저 꽃빛,
이미 한계치를 넘어
스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수혈할 수도 없는 꽃의 피가 왜 미치도록 붉은가
무엇이든 지나치면 불편하다
나는 마음이 편하다
아니다
딱 한번이라도 심장을 찌르는 치명적인 시를 쓰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두 삽의 흙이 필요할까
그동안 넘치도록 퍼담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작은 화분이라는 걸 알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 『포에트리 슬램』 2024년 겨울호
시 읽기
시는 붉다. 시의 생명은 뜨거움이다. 작은 화분에서 긴 시간 생명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말로 '깨꽃'이라 부르는 샐비어, “샐비어가 피를 철철 흘리며 피고 있다”라는 모습을 통하여 피가 가진 원초적인 에너지는 생명이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꽃 한 송이, 시 한 편을 길러내는 데에도 우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화분은 식물의 뿌리를 감싸고 생명체를 담아내는 곳이다. “저 꽃빛/ 이미 한계치를 넘어/ 스칠 때마다 소름이 돋는” 장소다. 협소한 공간에서 시를 길러내는 에너지이다.
“수혈할 수도 없는 꽃의 피가 왜 미치도록 붉은가/ 무엇이든 지나치면 불편하다”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메시지에 대한 강한 욕망의 태도에 이른다. “심장을 찌르는 치명적인 시를 쓰고 싶었”다는 시적 화자는 “미치도록 붉은” 시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을 내포한다.
하지만 “그동안 넘치도록 퍼담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며, 더 큰 사유의 한계치를 넘어 작은 것으로 위치를 바꾸며 귀환한다. “굳이 두 삽의 흙이 필요할까”를 통해 시의 본성은 세상의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기보다 작은 메시지라고 고백한다.
시적 화자는 “피를 철철 흘리며 피고 있”어 현실적으로 내적 고통을 겪는 긴장감과 존재론적으로 생명을 키우는 자각을 한다. 화분–시-몸으로 객관화해서 대상을 바라보고 섬세한 감각으로 형상화한다. 삶은 시의 생명력이요. 시는 삶을 구성하는 에너지이며, 피는 생명을 수행하는 시의 “꽃빛”이라는 관계를 구성한다. “작은 화분이라는 걸 알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라는 시적 화자를 통해 시에 대한 본질을 깨닫는다.
나도 작은 화분이 되어 피의 언어로, 너와 내가 공유하는 붉은 꽃을 피우고 싶다. (추천 양소은)
『시와소금』 2025년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