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는만큼 보이기 마련이니 최종결과를 보기까지 꼬박 일주일 병원을 오가며 나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썼다.
처음엔 왼쪽에 느껴진 흉통으로 어렵사리 심장 ct를 찍었으나 (심장ct가 어려운 이유는 맥박수가 60정도여야 찍어주는데 나는 심박수가 높아 약을 먹고 기다려도 줄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눈감고 가만히 앉아있으라던 그들.. 할 말을 잃었다. 내 심장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그러나 막상 심장엔 이상이 없고 간에 뭔가가 보인다며 의사는 서둘러 나를 소화기내과로 보냈다. 의사가 보여주는 화면에선 참으로 선명한 흰색 덩어리 3개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 순간 내겐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동생의 간ct가 있었으니 포도송이처럼 탄탄하게 영근 암덩이들을 다각도로 찍은 영상이었다. 이미 수십개의 암들이 간을 뒤덮고 소장에도 붙었으니 나는 잊고있던 그 사진이 기억나 모든 생각이 거기서 멈춰버렸다.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말만 듣고 나오니 집으로 가는 길도 잊어 엉뚱한 길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이 멈추니 이렇게 길도 못찾는 바보가 된다. 사람이 정신을 놓는 건 한 순간임을 알았다.
나는 최종결과를 들을 때까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의 대처방안도 계획했다. 별 것 아니면 제일 좋겠고 만일 수술하라면 다시 병가를 내고 여기에 입원하자, 만일 또 암이라고 하면 소견서들고 다시 암센타로 가자 등등 6번방 간호사가 나를 부를 때까지 내 심장뛰는 소리는 내 귀에 들리게 쿵쾅거렸으니 이건 아무리 노력해도 덤덤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의사는 내게 혈관종으로 보인다며 안심해도 된다 하였고 나는 지인들에게 '나 괜찮대' 라는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땡볕에서 강화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도 나는 짜증나지 않았다.
결과를 보기까지 나를 지치게 했던 건 무엇보다 만일 최악의 경우 내가 그시간들을 잘 버틸 수 있겠나 하는 내자신의 나약함이었다. 항암제의 부작용, 복수가 차올라 터질듯 부푼 배, 기운이 없어 걷지도 못하고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고통의 날들은 드라마에서 보던 정도를 넘어 말그대로 차라리 죽음을 원할 정도였으니 나는 동생을 돌보며 지켜봤기에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의술이 발달해 거의 다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고쳐지기까지의 환자나 가족이 겪는 고통이 얼마만한지 그저 가늠해보는 것이라면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 실로 차라리 어서 동생의 괴로움을 끝내달라고 나는 울면서 그리 기도 했었다. 동생도 어서 죽고싶다 했으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그나마 건강할 때 쓰는 말이다.
어제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사면서 소독용 알콜도 한 병 샀다. 냉장고 내부를 청소할 목적이었다.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추석을 위해 열무김치도 담갔다. 엄마와 비빔밥으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나는 이번 생에서 할 일이 많아 일찍 데려가지도 않는다며 우스갯소리도 하는 아침. 또다시 삶이 주어진 느낌이다. 도대체 나는 몇 번을 사는 거냐며 혼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