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엄의 문턱에 서서, 그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기대수명 혹은 희망수명이 다 했다고 미련없어 하면서도,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깨닫았을때 황당하지 않을수 없다. 그렇다. 막상 문이 열렸을때 눈앞에 어떤 광경이 보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아닌가. 가령 천국일지 지옥일지 혹은 다른 어떤 얘기치못한 모습일지 말이다. 천국도 각자 다른 모습일탠데, 나는 과연 어떤 천국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순하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곳이면 천국이라고 할수 있으려나. 꽃이 만발한 정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것은 아니고? 정의와 공평은 어떨까? 원하는 것들을 마음껏 골라 담을수있는 작은 바구니에서 부터 커다란 컨테이너에 이르기까지 허용하신다면, 그렇게 나의 천국이 만들어진다면, 나는 내 바구니에 뭘, 얼마나 담아놓고 만족할수 있을까. 나는 내가 진실로 뭘 바라는지도 모르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부가 꼭 필요할까. 명성은? 권력은? 내가 누릴만한 가치는? 깜량이 안되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될수밖에 없는 이 모든것들을 과연 절제할수는 있을지. 죽엄이 바로 문턱에 이르렀는데도 내려놓지 못하고 눌러붙어있는 것들도 문제다. 입으로는 바로 코앞이라면서도 실상은 여전히 아직 멀다고 생각하고 있는것일수도 있다.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섞다. 준비가 안되었다. 단순히 냉장고가 비었다고, 사재기를 줄였다고, 그게 준비인것 처럼 생각하는 위선을 나 자신이 알고있는데, 이건 가식이다. 부디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두꺼운 요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전기요도 한계가 있다. 결국 보일라를 아침과 저녁으로 잠간씩 틀고있다. 가스요금 공포를 무시하려고 마음먹어서다. 그런데, 노인성 질환들이 춥게 지내는 대서 더 활성화 된다는 보도를 대하게 되었다.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만이 아니고 어린아이들 성장에도 영향을 줄것 같다. 너무 춥거나 덥거나 인간들이 영향을 받는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겠는가. 적당히 춥게, 혹은 적당히 덥게, 좀 불편하다 싶을정도가 맞다는 생각이다. 그 적당히는 당연히 개인적인 격차가 있게 마련이지만. 난로도 피우고 있다. 겹겹히 비닐 가리게를 했고, 커텐을 줄줄이 쳤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다리밑에 사는 빈궁한 사람들이 했음직한 모든 행위를 지금 내가 하고있다. ㅎㅎㅎ 어제는 결국 교횔 나가지 않았다. 나가는일에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안나가는게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감정코치 선생님으로 부터 섭섭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글쎄 우진이 교회 선생님이라는 문자가 표기되어서 놀랍기도 하고 이런 기적같은 우연이? 하지않을수 없었다. 당연히 기억에도 없다. 우진이 영아부부터 교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어느때 선생님이었는지 모르지만 저장된 전화번호를 삭제하지 않았다는 것도 신기했다. 이건 게으른 자의 축복 아닌지, ㅎㅎㅎ 나는 방학에 들어가려고 한다. 12월과 1월을 지나서, 2월 중순께 부터나 다시 현장예배에 참석하려고 작정했다. 이런것까지도 내마음대로 되는것은 아니지만.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을 헤집고 있다. 그중에 하나인들 바르고 온전한게 없다. 내가 꿈꾸는 천국도 그런것 아닐까. 꽃길이면 어떻고 빈들이면 어때서. 꼭 꽃길이어야만 천국일거라는 편견에 잡혀있어서는 안될게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우린 서로 다른 삶을 다른 방향에서 살고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