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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원치 않았던 외세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던 일제 강점기를 지나, 그야말로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은 한국 현대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너무도 짙게 드리우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이후 친일파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자들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특히 친일파를 등에 엎고 독재를 행사했던 이승만과 박정희의 등장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촉발했고, 이로 인해 치열한 ‘투쟁’으로 맞섰던 이들의 희생이 뒤따르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이 책을 통해서 그 구체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21세기 초반 약 2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시사 잡지에 연재했던 글이 엮여져, 전체 4권으로 이뤄진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라는 부제의 이 책은 그 가운데 3권이다. ‘똑바로 살아라 –변절의 역사, 변질의 역사’라는 첫 번째 항목에서는, 일제의 군인에서 해방 이후 남로당으로 그리고 변절하여 무사히 풀려난 박정희가 마침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여 자행했던 일들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박정희를 영웅시했던 한승조의 확신에 찬 ‘망언’들의 배경은 물론, 한때 ‘주사파’에 몰입했다가 이제는 ‘변질’되어 뉴라이트라라는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는 이들의 면모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과거 창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제목의 두 번째 항목에서는, 당시 저자가 관심을 기울여 활동했던 ‘과거청산’의 문제가 어려운 이유를 친일파의 후손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성장했던 것에서 찾고 있다. 나아가 2차 대전의 전범으로 사형당한 이들의 위패까지 안치한 일본의 야수쿠니 신사의 본질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의 극우파를 닮아가다 못해, 그들의 이념에 세뇌당한 한국 극우파들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만들자는 그들의 주장이 그로부터 10여년 후에 실제로 추진되었다가,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되기도 했다.
지금도 ‘계엄령’을 발동해 현직 대통령이 탄핵 재판을 받고 있지만, 당시에도 보수파들이 영합해서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던 적이 있었다. 저자는 ‘탄핵시대의 수구와 진보’라는 제목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권 차원에서 진보세력을 철저하게 억누를 결과, 진보는 사라지고 보수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정치권에 굳건하게 자리를 확보하게 되었던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정권 하에서 양심적인 법관들이 사표를 던지고 난후, 정권의 요구에 영합하는 판결을 내렸던 사법부의 ‘오욕’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간첩의 추억’이라는 항목에서는 ‘남파간첩’이 거의 사라졌지만, 끊임없이 간첩 사건을 조작했던 1970년대부터 1980년대의 상황이 소개되고 있다. 마지막 ‘대립을 넘어 화해의 시대로’라는 항목에서는 김일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물론, 남파간첩으로 내려왔다가 전향한 이후 평생 북한 연구에 매진했던 ‘김남식 선생’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이밖에도 징병제에 따른 '대한민국 사병‘의 현실과 병역기피가 아닌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에 관한 내용을 접할 때마다, 작금의 ’탄핵정국‘에서 목도하고 있듯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작동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애써 외면하지 않고, 역사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비록 출간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현대사를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의 효용과 역할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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