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북한)의 언어정책: 문자 개혁 및 한자 폐지를 통일문제와 결부(이재봉)
1) 훈민정음에 관한 조선의 입장
북녘에서는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아니라 김일성의 선조가 만들었다고 선전한다는 얘기가 떠돌던 적이 있다. 맹목적 반공주의나 극단적 반북주의를 바탕으로 한 악의적 중상모략이다. 북녘 언어학자 렴종률은 2001년 펴낸 조선말 단어의 유래에서 세종대왕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우리의 문자는 1444년에 당시 ‘집현전’이라고 하는 과학기관에 망라되여 있던 학자집단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2001년 출판된 조선 대백과사전은 훈민정음에 대해 “당시의 왕이었던 세종의 직접적인 주관 밑에 정린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리개, 리현로들이 집체적인 지혜를 모아 만들었다”고 서술한다. 2002년 발간된 조선의 력사인물 제2권에서는 “력사에 이름을 남긴 세종왕”이란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에 세심한 관심을 돌리였고 자신이 의장격으로 앉아서 학문토론회를 자주 열었다..... 세종왕의 과학연구 사업에서 특별히 지적해야할 것은 ‘훈민정음’ 창제이다.” 한문은 읽고 쓰기가 매우 어려워 “부엌에서 일하는 아낙네들까지 모두가 쓰고 읽을 수 있는 우리 글”을 만들기 위해 눈병까지 날 정도로 연구를 하면서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2) 조선의 언어정책
조선의 언어정책은 한 마디로 “민족 고유의 말과 글을 잘 지키며 인민이 쉽게 쓸 수 있도록 다듬는다는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 구체적으로 문맹 퇴치, 문자 개혁의 필요성과 준비, 한자 폐지와 조선글 전용, 말다듬기 또는 외래어 정리, 문화어 운동 등을 들 수 있는데, 지난주 얘기한 문화어 운동을 뺀 나머지 정책을 소개한다.
(1) 문맹 퇴치
1945년 해방 무렵 당시 인구의 약 80%가 글을 읽지 못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었기에 1946년부터 문맹 퇴치 운동을 당면 과업으로 삼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1988년 평양 백과사전출판사에서 출판된 조선 개관에 따르면, “해방 후 4년도 못되는 기간에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30만 문맹자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한다.
(2) 문자 개혁의 필요성과 준비
1940-50년대 북녘에서 언어정책을 주도한 사람은 김두봉이었다. 일제 하에서 ‘주시경의 수제자’로 조선어문을 연구하다 말글 연구보다 나라 독립이 우선이라며 항일운동에 뛰어든 사람이다. 3.1운동에 참여한 뒤 중국에 건너가 1920년대 상하이 임시정부에 몸담았으며, 1935년 김원봉과 <조선민족혁명당>을 만들고, 1942년 옌안(延安)에서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했다. 1945년 평양에 들어가 부수상, 김일성대학 총장 등을 지내며 <조선어 신철자법>을 제정하고 문자개혁을 주장했다. 조선글이 네모난 것이라 쓰기 불편하고, 보기 어려우며, 타자하기 힘들어 인쇄의 기계화에 불리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그러나 1950년대 말 숙청당하고 문자개혁도 비판받았다. 김일성 수상은 1964년 언어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하며, 문자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조국통일 이후에 하자고 주장했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입니다..... 조선인민은 핏줄과 언어를 같이 하는 하나의 민족입니다. 미제의 남조선 강점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우리 민족은 하나입니다. 지금 남조선 사람들이나 북조선 사람들이나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으며 같은 문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들의 주장대로 문자 개혁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북조선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글자를 쓰게 되면 편지를 써보내도 모르게 되고 신문 잡지를 비롯한 출판물도 서로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인민의 민족적 공통성을 없애며 결국은 민족을 갈라놓는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글에 일정한 결함이 있으니만큼 앞으로 그것을 고칠데 대하여 연구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고치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보기도 쉽고 타자도 문자의 기술화도 빨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개혁을 하더라도 남북이 통일된 다음에 우리의 과학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오른 다음에 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남북조선 사람들이 다 같이 쓰고 있는 문자를 그대로 써야 하며 이것을 가지고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3) 한자 폐지와 조선글 전용
북녘에서 “민족 고유의 말과 글을 잘 지키며 인민이 쉽게 쓸 수 있도록” 다듬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 가운데 하나가 한자 폐지였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쉽게 글자를 익히고 쓸 수 있도록 하는 데 배우기 어렵고 쓰기 힘든 한자가 걸림돌이었다. 이에 따라 1947년부터 <로동신문>을 비롯한 대부분 출판물이 조선글을 전용하거나 극히 부분적으로 한자를 겸용했다. 김일성 수상은 한자를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문자 개혁을 할 수 없다고 했듯, 남쪽 사람들이 한자를 쓰는 한 북녘 사람들도 어느 정도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문자 개혁 및 한자 폐지를 통일문제와 결부시킨 것이다. 그는 1964년 언어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했다.
“한자 문제는 반드시 우리나라의 통일문제와 관련시켜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이 언제 될는지 누구도 찍어서 말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미국 놈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통일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조선 사람들이 우리 글자와 함께 한자를 계속 쓰고 있는 이상 우리가 한자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한자를 완전히 버리게 되면 우리는 남조선에서 나오는 신문도 잡지도 읽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일정한 기간 우리는 한자를 배워야 하며 그것을 써야 합니다.”
(4) 말다듬기: 외래어 정리
북녘은 1940년대부터 시작한 문맹퇴치 운동과 한자폐지 및 조선글 전용 정책에 이어 1960년대엔 말다듬기 운동을 시작했다. 말을 쉽고 편하게 쓰기 위해 잘 다듬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게 핵심이었다. 김일성 수상은 1964년 언어학자들에게 “우리는 될수 있는대로 외래어를 쓰지 말고 자기나라 말을 쓰도록 하여야” 된다고 교시했다. 그렇다고 모든 외래어를 버리고 고유어를 무조건 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외래어를 다 없앨 수는 없고 어느 정도 쓰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외래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외래어 사용과 관련해, “모든 사람들이 한자말이나 외래어를 쓰는 사람은 민족적 긍지가 없는 사람이고, 자기나라 말을 잘하는 사람이 유식하고 민족적 자부심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김정일 비서 역시 1973년 펴낸 영화예술론에서 “아름답고 섬세하며 뜻이 풍부한 우리말을 더 많이 살려 씀으로써 사람들에게 자기 민족의 말을 잘 아는 사람이 문명하고 애국심이 높은 사람이라는 관점을 똑똑히 세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다른 나라의 고유명사는 일본말이나 중국말로 발음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발음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다며, 특히 나라 이름은 그 나라 말로 써야 한다는 원칙을 표명했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는 ‘로씨야’, 스페인은 ‘에스빠냐’, 멕시코는 ‘메히꼬’, 스웨덴은 ‘스웨리예’, 벨기에는 ‘벨지끄’, 덴마크는 ‘단마르크’, 폴란드는 ‘뽈스까’, 터키는 ‘뛰르끼예’, ‘캄보디아’는 ‘캄보쟈’, 베트남은 ‘윁남’으로 쓰는 식이다. 남쪽에서는 다른 나라들의 이름을 거의 모두 영어식으로 표기하기에 북녘에서 쓰는 이름들이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해당 국가의 말로 표기하는 게 더 바람직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