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여 페이지나 되는 '동명왕의 노래' 이 두꺼운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동명왕의 노래'는 북의 문예출판사에서 1990년에 펴낸 <리규보 작품집 1>과 <리규보 작품집 2>를
보리출판사가 다시 펴낸 것이다.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생각은
앞서 읽었던 최치원의 문장을 해석해 놓은 것 보다
북의 학자들의 해석이 훨씬 쉽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것이다.
최치원의 시는 어려워 여러번 읽어야 했던 걸 생각하면
이규보의 시는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시 자체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해석을 그렇게 해놓아서가 아닐른지..
어쨌든 고전 문학의 연구는 우리보다 북녘이 더 앞서 있다니
군사력만 키우는 줄 알았는데 이런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면모는 다행스럽다.
이규보는 고려 중기의 격동기에 태어나, 무인 정권의 등장을 몸으로 겪은 당대의 지식인이다.
젊은 날에는 스스로를 ‘백운거사’라 칭하며, 흰 구름처럼 자유분방한 의지를 지니고 살려 했다.
그는 몽고의 침략에 온 나라가 항쟁하던 시기,
우리 민족의 역사 현실에 주목하고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지식인이었다.
『동명왕의 노래』는 이규보가 남긴 2천여 수의 시 가운데 260여 수를 가려 뽑은 시집이다.
민족의 주체성을 드높이고, 시인의 일상을 그려 낸 시,
농민들의 삶과 풀과 벌레를 노래한 시들 속에서 소박하면서도 호방한 이규보 시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저자 편역:김상훈
김상훈은 1919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도병이 되기를 거부해 졸업하면서 바로 원산철도공장으로 끌려가 징용살이를 했다.
병으로 돌아온 뒤 항일 활동을 하다가 1945년 1월에 붙잡혀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징역을 살았다.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왕성하게 시를 써 발표했다.
1946년에 김광현, 이병철, 박산운, 유진오 들과 『전위시인집』을 펴냈다.
한국 전쟁 때 종군 작가뾔 전선에 들어갔다가 북에 남았다.
북에서는 시를 쓰는 한편, 고전 문학을 오늘의 세대에게 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1986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예부터 내려온 민간의 노래를 정리해 ‘가요집’을 엮었고,
우리 역사의 한시들을 골라서 ‘한시집’을 엮었다.
아내 류희정과 이규보 작품집을 두 권으로 엮은 것이
2005년에 『동명왕의 노래』와 조물주에게 묻노라』로 남에서 출간되었다.
김상훈이 세상을 떠난 뒤에 북에서 유고시집 『흙』을 출간하였다.
2003년에 김상훈의 시비가 그의 고향인 거창에 세워졌으며,
『김상훈 시전집』(박태일 엮음, 세종출판사)과 『김상훈 시 연구』(한정호 엮음, 세종출판사)가 나왔다.
'보리출판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예출판사가 펴낸 <조선고전문학전집>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란 이름으로 다시 펴내면서 북녘학자와 편집진의 뜻을 존중하여
크게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남과 북의 표기법이 얼마쯤 차이가 있어
남녘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조금씩 손질했습니다.
이 선집이, 겨레가 하나되는 밑거름이 되고, 우리 후손들이 민족 문화 유산의 알맹이인
고전문학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보고 이오받는 징검다리가 되기 바랍니다.
아울러 남과 북의 학자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남북 학문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날이
하루라도 앞당겨지기 바랍니다.'
- 보리출판사 대표 정낙묵
비를 기다리며 / 이규보
하늘 바라기 눈이 아물거리더니
운애도 짙은 구름같이 보이누나.
창틈에 기어가는 벌레소리도
사락사락 내리는 빗소리인듯.
아침엔 으슴푸레 내림직도 하더니
다시금 파란 하늘 구름 한 점 없구나.
채마밭이 메말라 가슴이 타는데
마른 벼 소스락임 차마 듣겠느냐.
강 밑에 잠긴 용도 이 나라 용이라면
무슨 일로 엎드려서 비구름을 안보내나.
아득한 땅 위에서 보잘것 없는 내가
하늘에 외치노니 비를 내려 주소서. (p65)
가물어 농사를 망치고 있는 농민에 대한 애틋함으로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절절하게 토해져 나온 시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