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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5:10-17 “내 마음이 좋은 말로”
10 왕후님!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11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임금님이 그대의 주인이시니, 그대는 임금님을 높이십시오. 12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을 가져오고, 가장 부유한 백성들이 그대의 총애를 구합니다. 13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 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 14 오색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임금님을 뵈러 갈 때에, 그 뒤엔 들러리로 따르는 처녀들이 줄을 지을 것이다. 15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안내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16 임금님, 임금님의 아드님들은 조상의 뒤를 이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을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17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겠사오니, 그들이 임금님을 길이길이 찬양할 것입니다.
[새김]
이 시편에는 이런 표제가 붙어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 사랑의 노래.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춘 것.” 고라 자손은 성전 성가대원 가문이다(대하20: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마스길”은 교훈을 뜻하며, “소산님”이 성경의 주에서 보듯 ‘백합화 곡조’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어떤 악기를 말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시는 시편 전체에서 하나뿐인 비종교적 시다. 이 시는 젊은 왕과 그의 짝인 두로의 여왕(12절)을 칭송하는 찬양시로서 왕의 결혼식에 궁정 시인이 지어서 낭송한 것이다.
시인은 “좋은 말”로 왕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혀를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에 빗대어 말함으로써 자기의 노래가 허튼소리가 아니며 아름답고 예술적인 노래라는 것을 은근히 드러낸다(1절). 서기관은 고대 동양의 왕궁에서 일하던 사람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왕에 대한 “좋은 말”이 쏟아진다. 왕은 용모도 빼어나고(“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성품도 좋다(“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거기에다 “하나님은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신다”(2절). 왕은 용사로 묘사된다. 용사가 싸움터에 나서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선명하다. 왕은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나타내는 갑옷을 입고, 병거에 올라 활을 힘껏 당긴다. 화살은 “원수의 염통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이로써 “진리와 온유와 공의”가 지켜진다(3-5절).
왕은 정의의 수호자이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할 때 하나님은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실 것이다(6-7절). 왕이 누리는 화려함이 열거된다. 왕의 옷에서는 향기가 난다. 왕은 상아로 장식된 왕궁에서 산다. 그곳엔 하프(“현악”)의 아름다운 음률이 가득하다. 또한 왕에게는 여인들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화려함의 절정은 왕의 신부(“왕후”)에게서 나타난다(8-9절).
경험 많은 시인은 그 왕의 신부에게 그의 백성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리고 지금부터 전적으로 그의 남편 될 사람을 주인으로 여기라고 훈계한다(10-11절). 그러나 시인은 그것이 예속과 굴종의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재빨리 덧붙인다. 왕의 그 신부는 자신의 고향과 과거를 단념해야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백성 중 부한 자의 경배를 받을 것이며, 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고 궁중의 영화를 누릴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삶과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친구 처녀들도 함께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니까(12-15절). 시인은 왕과 신부의 혼인을 통한 후손의 축복을 잊지 않는다. 그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다.” “온 세계의 군왕이 될 것이다.” 그들로 인해 왕의 이름이 만세에 기억될 것이다(16-17절).
[묵상]
부활하신 주님은 왕이요, 우리는 그의 신부이다. 왕에게 적용된 묘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주님은 사람들보다 아름답고, 은혜를 입술에 머금었다. 죽음과 죄의 권세를 그 중심에서 무너뜨린 용사이시다. 부활의 주님은 진리와 온유와 정의의 수호자이시다. 아니 그분 자체가 진리이며 온유하며 정의롭다. 그분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생명의 향기라고나 할까, 천국의 향기라고나 할까. 문제는 그와 결혼할 신부인 우리다. 신부가 영광을 얻는 길은 단 하나다. 고향을 잊고,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다. 그러는 만큼 우리는 왕의 궁정에서 영화를 누릴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 받을 것이다.
[기도]
왕이시여, 신랑이시여, 부활의 주님이시여! 당신과의 오묘한 합일을 위해 이전에 살던 곳 뒤로하고 주님 계신 곳 향해 길 떠났으니 우리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하시어 당신의 왕궁에 들어가게 하소서.
- 이민재
마가 7:1-8, 14-15, 21-23
1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2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바리새파 사람과 모든 유대 사람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규례대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들이 전해 받아 지키는 규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씻는 일이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8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9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가 말하기를 4)'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14 예수께서 다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6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 17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 비유를 두고 물었다.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9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여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하셨다. 2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23 이런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
[새김]
예수 당시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다. 정치적, 종교적 권위의 중심지임에 틀림없다. 1절에 따르면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이 내려왔다. 바리새인을 주축으로 한 그들은 종교적 열정이 강한 집단으로 특별히 율법의 정결규례를 철저히 지킴으로 자신들의 권위와 역할을 견고하게 유지했다. 이들이 중앙에서부터 내려와 예수의 제자들을 관찰한 결과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부정행위였다. 지체함이 없이 “왜” 예수의 사람들은 부정을 행하는가?(5절)를 물었다. 사실 오늘의 본문은 제자들이 “왜” 부정을 행했는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예수께서는 “무엇이” 부정한지를 깨닫도록 이끌어 가신다.
즉 정죄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8절)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시고, 곧이어 9절에서는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것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정말로 부정하다는 뜻이다. “장로들의 전통”들도 마찬가지이다. 본문의 ‘장로’는 ‘나이든 사람’ 혹은 ‘앞 세대의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문제는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형식이 본질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이목과 칭찬에 의지하여 거짓된 경건성과 자신이 깨끗하다는 감정의 기만에 빠지게 한다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7)에서 제사장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정결 규정을 적용하여 죽게 두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본인은 부정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법을 왜곡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경우는 구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실례로서 예수께서는 이사야 29:13의 말씀을 인용하신다(6~8절).
하나님의 법을 장로들의 전통이 대신할 수 없고, 형식이 본질을 왜곡시켜서는 안된다. 악한 사람이 손을 열심히 씻어서 의인이 된 줄로 스스로 착각하고, 남을 정죄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되겠는가. 악하고 부정한 것들은 씻어서 될 일이 아니라, 치료되고, 구원받고, 그리고 근원으로부터 거듭나야 할 일이다.
[묵상]
튜링 테스트(Turing test)는 기계, 좀 더 구채적으로는 컴퓨터가 지능적으로 얼마나 인간과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테스트로, 앨런 튜링이 1950년에 제안했다. 또 1990년에는 휴 뢰브너(Hugh Loebner)가 케임브리지 행동 연구 센터(The Cambridge Center for Behavioral Studies)와 공동으로 튜링 테스트 대회를 개최하여 뢰브너 상을 수여한다. 이 상은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최초의 컴퓨터에 대해 10만 달러의 상금과 금메달을 약속했다. 그리고 매년 가장 인간에 가까운 컴퓨터에는 2천 달러와 동메달이 수여된다.
대회는 관찰자가 대상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에서, 예를 들어 커튼 뒤에 컴퓨터와 사람이 가려진 상태에서 모니터 두개만 관찰자 앞에 놓고 질문들을 타이핑한다. 그러면 모니터 두 대에 각각 대답들이 뜨게 된다.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주어진 질문들에 대답한 것들을 수집하였을 때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가를 파별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인간이 인간다운 대답들을 하여 컴퓨터를 이겼지만 현재는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해졌다고 한다. 아마 올해나 내년쯤에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대답들을 쏟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 컴퓨터는 수집된 정보에 근거해서 사실 그대로를 작성하는 반면에 인간은 알면서도 다르게 행동하고, 믿으면서도 결과를 다르게 예상하고 의심하며, 더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왜곡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즉 정말 자주 착각을 하면서도 자기가 착각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또 언제 변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변하지 않고 정확하고 가장 인간스러운 대답만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를 믿고 사랑하거나 그 연속선상에서 사람을 상대적으로 불신하는 것은 좀 어처구니가 없어 보인다. 결국 튜링테스트에서 성적이 좋은 컴퓨터라고 해도 잘 사용할 뿐 사랑의 대상은 아니다. 대신 종종 죄를 짓다가도 회개하고 인간다움을 사모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 유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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