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 2026 작가 39호)
밤톨이 툭
이민숙
열두 살, 열 살 소녀의 손바닥에
툭 하늘이 떨어진다
툭 밤나무 눈물이 떨어진다
상수리들 조잘거린다
참나무들이 노래한다
춘하추동 어느 새 우리의 가을인 거지?
아주 어릴 적 보았던 빛의 반짝이는 소리가
툭 떨어진다
은행잎, 노란 색을 칠하면서 꿈을 키웠던 날들이
열두 살 저 아이처럼
바다를 받아안고 뚝방길을 내달렸던가
오래오래 그리워하면서도 말 한 마디 못 했던
그 껄렁껄렁했던 소년 하나가
툭 오늘 거친 밤톨로 떨어져온다
두 아이는 모기에 종아리가 물려
툭 긁적긁적 툭!
밤톨은 통통한 다리의 모기 침(針)으로부터 떨어진다
숲이 떨어져요
이젠 가자 할아버지는 무덤 가 비석을 가리키며
조상들의 붉은 빛 존함을 되뇌인다
툭! 밤톨처럼
오래된 핏줄의 인연들
그렇구나 모든 것은 떨어지는 거로구나
우리의 배꼽도 툭!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내일로 가고 있는 시간의 물감들도 떨어져 내리며
오방색, 파랑 빨강 노랑 흰색 검정,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밤톨을 그려내는구나
밤톨이야말로 영원이라!
저 소녀의 아빠인 녀석은 맨날 맨날 말한다
살아온 날, 끈적임으로 툭 툭 떨어져 와 꿈을 박치기해주었어요
아침부터 밤중까지 저 사막의 황홀처럼 셀 수 없이
신단수 유전인자를 이제야 이해했어요 툭!
이민숙 약력
1998년 《사람의 깊이》에 ‘가족’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나비 그리는 여자』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 『지금 이 순간』 『첫눈이야』를 펴냈다. 여수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고전 및 인문학 읽기, 문학창작아카데미를 이끌어오고 있다. e-mail: 123lm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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