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1. 대통령의 말(1) ‘저희 나라’와 ‘우리나라’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저희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언어 순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일 듣기 싫은 게 ‘저희 나라’라는 말”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이건 ‘말도 안 되고’, ‘최소한의 교양 문제’이기도 하다. 외래어 남용과 일상적 잘못된 표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니 대통령이 직접 ‘우리말 바로 쓰기’에 앞장서는 것 같아 몹시 반갑다.
2022년 6월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용산에 공원을 만들겠다며 이름을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을 거라고 얘기했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한국어로 ‘국립 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고,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이렇게 얼이 빠지고 혼이 나간 대통령이 도중에 쫓겨났으니 천만다행이다. 영어단어 한두 개 쓰지 않으면 문장을 끝내기 어려운 지식인들의 사대주의적 언어 구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저희 나라’로 돌아간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질문받거나 토론할 때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교수인 나를 어른으로 대접해 겸양법을 사용하는 마음은 기특하고 고맙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름을 뜻하는 ‘성함’, 밥을 뜻하는 ‘진지’, 집을 뜻하는 ‘댁’ 같은 높임말이나 나를 가리키는 ‘저’와 우리를 가리키는 ‘저희’ 같은 낮춤말을 잘 쓰지 않는 것 같아서다.
‘저희 나라’의 두 가지 잘못을 알려준다.
첫째, ‘저희’는 윗사람에게 ‘우리’를 낮춰 부르는 말인데, 그 윗사람이 ‘우리’와 다른 단체나 조직에 속할 경우에 쓴다. 말하는 학생의 국가와 듣는 교수의 국가가 같은 집단이기에 ‘저희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이다.
둘째, ‘나라’는 어떤 윗사람에게도 낮춤의 대상이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든 같은 나라 사람들인데, 누구에게 국가를 낮춘단 말인가. ‘저희 나라’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절대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미국 없이 못 살겠다거나 미국의 속국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미국 지도자를 높은 사람으로 받들어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저희 나라’와 비슷하게 겸양법을 잘 못 쓰는 사례가 몇 가지 더 있다.
자식들이 부모나 조부모에게 ‘저희 가족’이라고 말하거나, 대학의 총장이나 이사장이 동참한 교직원 회의에서 ‘저희 학교’라고 말하는 교수와 직원을 적지 않게 보았다. 회사에서는 사장이나 회장에게 보고하면서 ‘저희 회사’라고 말하는 사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단체나 조직에서든 같은 구성원에겐 나이나 직위가 아무리 높아도 ‘우리’라고 해야지 ‘저희’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부모나 조부모를 우리 가족에 포함하지 않고, 총장이나 이사장을 우리 대학 구성원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사장이나 회장을 우리 회사에서 배제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집안 어른에게, 우리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의 윗사람에게, 우리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높은 사람에겐 겸손하게 ‘저희’라는 말을 쓰는 게 좋다.
우리가 예부터 ‘동쪽의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뜻의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듯, 상대에게 예의를 표현하려는 마음은 좋지만,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 선택이 더 중요하다. 앞에서처럼 겸양법을 바로 쓰기가 쉽지 않듯, 존대법을 제대로 쓰는 것도 까다롭다. 198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대학 캠퍼스에서 산책하는 한국인 어르신들이 보여 다가가 말을 걸었다. 유학생 김00의 부모라기에, 내가 ‘김00 군’ 잘 안다며 나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며칠 뒤 내가 건방지다는 얘기가 돌았다.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그에게 ‘군’이라는 지칭을 썼다는 이유였다. 난 그가 내 윗사람이라도 그보다 더 윗사람에겐 그를 낮추어 말하는, 이른바 ‘압존법(壓尊法)’을 설명해야 했다. ‘높여야 할 대상을 더 높은 사람 앞에서는 높임을 누른다’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버지를 낮추어 “아버지가 왔습니다”라고 해야지 “아버님께서 오셨습니다”라고 말하면 부적절하다. 그러나 선배의 부모 앞에서도 그를 후배로 간주하듯 ‘군’으로 지칭한 건 잘못된 어법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김00 선배’나 ‘김00 씨’가 적절한 지칭이라는 것이다.
언어는 생활과 문화를 반영하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기 마련이다. 이렇게 까다롭고 딱딱한 압존법이 느슨해지거나 사라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2011년부터 ‘표준 언어 예절’을 정비하면서다. “누구를 높이려다 다른 사람을 낮추는 것은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라며, 듣는 사람이 누구든 말하는 사람의 윗사람에 대해 존대법을 쓰는 게 올바른 언어 예절이라고 했다. 집안에서는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정도로 조금 높이고, 직장에서는 사장에게 “부장님이 가셨습니다”처럼 조금 더 높이는 걸 권장한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처지도 배려해, 나처럼 후배가 선배를 낮추어 말하거나 자녀가 부모를 낮추어 말할 때 어색하거나 불편한 심리적 거부감을 고려한 합리적 변화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나 사장 앞에서 “아버님께서”나 “부장님께서” 등 극존대하는 것은 여전히 부적절하다니 예법에 맞게 제대로 말하는 게 아직도 까다롭다. 압존법을 알면 하느님에게 기도하면서 “목사님께서”라고 극존대를 쓰는 개신교도들도 당혹스러울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압존법을 철저히 지켜야 할 경우가 있다.
국민과 대중을 상대할 때다. 기자들이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대통령이 말했다”라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특정인을 지나치게 높여 객관성을 해치면 안 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대변인이 기자들이나 대중 앞에서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나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게 자연스럽다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 같다. 기자 같은 제삼자가 아니라 대통령실 일원으로서 조직의 수장 겸 국가 최고지도자를 낮추어 말하는 게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는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자신을 ‘본인(本人)’이라 칭하다 1990년대부터는 ‘저’라고 낮춰 부르듯, 국민을 섬기며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정신을 반영해 대통령을 대변하는 사람도 대중 앞에서는 대통령을 낮추어 말하는 게 어떨까.
편집: 김미경 편집장, 김동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