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2. 대통령의 말(2) ‘제 아내’와 ‘우리 아들’
앞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말 가운데 ‘우리나라’와 ‘저희 나라’에 관한 문제를 짚었는데, 이번엔 ‘제 아내’와 ‘우리 아들’에 관해 쓴다. 그는 2025년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과 가짜뉴스에 관한 질문에 답하며, “우리 아들이 멀쩡하게 직장 다니는데..... 아직도 직장을 못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2026년 1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사랑하는 비서실장’의 지방선거 출마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한다”라고 답했다.
이미 밝혔듯, 이 대통령은 “제일 듣기 싫은 게 ‘저희 나라’라는 말”이라고 했는데, 나는 “우리 와이프”가 가장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다. 남자가 배우자를 ‘아내’, ‘처’, ‘안사람’, ‘집사람’, ‘마누라’ 등으로 일컫는 게 일반적이다. ‘남편’의 반대말 ‘여편’에 사람을 뜻하는 ‘네’를 붙인 ‘여편네’는 얕잡아 부르는 말로 변했다. ‘부인(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 자기 아내를 ‘부인’이라고 하면 웃음거리가 되기 쉽다. 아이가 있으면 ‘애 엄마’로 쓰기도 한다. 요즘 더러 듣는 ‘짝꿍’이나 ‘옆지기’는 정겨운데 배우자만 가리키는 말인지 애매하다. 아무튼 남자가 배우자를 이렇게 다양하게 부를 수 있는데, 굳이 ‘와이프’라는 영어를 써야 할까. 한국인들은 영어 에프(f) 발음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더구나 여자가 남편을 ‘우리 허즈밴드’라고 쓰는 건 거의 듣지 못했는데, 남자들 대다수가 ‘우리 와이프’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게 못마땅하다.
내 아내는 1970년대에 인천에서 중학교 마치고 가족과 미국에 이민해, 198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하던 나와 중매로 알게 됐다. 둘이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느라 처음 만나 선보고, 두 번째 만나 약혼하고, 세 번째 만나 결혼했다. 그러면서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는데, 난 그가 보낸 글에 맞춤법 오류가 있으면 빨간 펜으로 긋고 바로잡아 되돌려보냈다. 2010년대에 미국살이를 끝내고 한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아내에게 부탁했다. 될수록 영어를 쓰지 말라고. 한국에 나온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하필 내가 집에 없을 때 내 앞으로 등기우편물이 왔다. 집배원이 아내에게 우편물을 건네며 나와의 관계를 물었는데, ‘와이프’는 쓰지 말아야겠고 ‘아내’는 얼른 떠오르지 않아 한참 머리를 굴렸단다. ‘부인’은 자신을 높이는 것 같아 ‘색시’라고 대답했더니 집배원이 폭소를 터뜨리더란다. 50대 아줌마가 ‘색시’를 자처하니 어이없으면서도 재밌었던 모양이다. 미국에서 수십 년 살다 온 아내에게도 ‘와이프’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부탁한 내가 뭇 남자들이 쓰는 ‘와이프’에 질색하는 까닭을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와이프’를 싫어하는 이유가 더 있다. ‘와이프’ 앞에 붙는 ‘우리’도 거슬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심지어 부모나 자식 또는 형제끼리도, 배우자를 공유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아내’가 아니라 ‘우리 와이프’가 말이 되느냐는 뜻이다.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다. 자기 배우자가 딴 이성에게 눈길만 줘도 경계심이나 불만을 가질 터에, ‘내 아내’나 ‘내 남편’이 아니라 ‘우리 아내’나 ‘우리 남편’이라고 부르는 건 모순 아닐까.
그런데 ‘우리 아내’와 ‘우리 남편’이 어법이나 문법으로는 어긋나거나 잘못된 말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언제부턴가 ‘우리’라는 말이 적어도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첫째,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둘째, 말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높지 않은 사람에게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 따라서 두 번째 정의에 따르면, ‘우리 엄마’나 ‘우리 아들’은 물론 ‘우리 마누라’와 ‘우리 신랑’이라는 말도 적절하다고 예를 들고 있다. 내가 ‘우리’라는 말을 첫 번째 의미로만 한정시킨 게 오히려 잘못이다. ‘우리’라는 말은 공동체 정신과 집단주의 문화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소속감과 친밀감을 나타내는 특수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 공동체 전통과 ‘우리’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왔기에 혼자만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나’ 대신 ‘우리’를 앞세운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우리나라’,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에게도 ‘우리 학교’, 다른 동네 사는 사람에게도 ‘우리 동네’, 다른 가족에게도 ‘우리 집’,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남들에게도 ‘우리 아버지’나 ‘우리 어머니’ 또는 ‘우리 아들’이나 ‘우리 딸’이라고 쓰는 게 귀에 익숙하다. 미국을 비롯해 ‘나’를 앞세우는 개인주의 문화를 발전시켜온 나라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공유하지 않는 상대에겐 ‘우리’가 아니라 당연히 ‘나’를 중심으로, ‘내 부모’나 ‘내 자식’ 그리고 ‘내 집’이나 ‘내 동네’, 심지어 ‘내 나라’라고 쓰지만 말이다.
이 대통령이 기자들과 국민 앞에서 ‘제 아내’라고 말한 건 몹시 적절하다. ‘우리 와이프’가 아니라 ‘내 아내’를 낮춰 ‘제 아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다른 자리에선 ‘제 아들’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라고 했다. 대통령 혼자의 아들이 아니라 자신과 부인의 아들이기에, 부인이 없는 자리에서도 ‘내 아들’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라고 말한 건 우리 전통과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다. 그래도 앞에서 ‘제 아내’라고 말했듯 ‘제 아들’이라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한편, 우리가 공동체 전통과 의식을 아무리 중시해도 식당에서 종업원을 구한다며 ‘가족 구함’이라고 써 놓거나, 손님이 여자 종업원을 어머니의 언니나 동생을 가리키는 ‘이모’라 부르는 데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언어는 생활과 문화를 반영하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기 마련이지만, ‘아저씨’, ‘아주머니’, ‘아줌마’, ‘아가씨’ 등 가까운 인척 관계를 가리키는 정겨운 호칭들이 업신여겨 낮추는 말로 인식되는 현상도 안타깝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