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3. 과잉 존대의 남용과 오용: ‘시’와 ‘분’
우리 사회에 언제부턴가 잘못된 존댓말이 넘친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데 예의도 적절해야 한다. ≪논어≫엔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도 있다. 지나치게 공손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자칫 무례(無禮)나 실례(失禮)나 결례(缺禮)를 저지를 수도 있다. 겸손이 지나치면 비굴로 흐르기도 쉽다. 예의는 태도와 언어로 나타난다. 우리말엔 높임말이 발달해 있는데, 존대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 올바로 사용하기 쉽지 않다. 특히 ‘시’와 ‘분’이 그렇다.
나도 자식들에게 ‘나 때는 말이야’를 자주 쓰는 70대 꼰대가 돼버렸는데, 내가 어릴 때 어른들에게 드리는 아침 인사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또는 “진지 드셨습니까?”였다. 이젠 좀 부드럽게 “잘 주무셨어요?” 또는 “아침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한다. ‘잘 잤느냐?’와 ‘잘 먹었느냐?’의 높임말이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말을 많이 쓴다.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거나 없어진 데다 미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영어 “Good morning!”을 그대로 옮겨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건 괜찮지만, “좋은 아침 되세요”라고 인사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Good morning!”을 보완한 문장은 “Have a good morning!”인데, 이를 “좋은 아침 가지세요”라고 옮기거나 “좋은 아침 보내세요”라고 하면 괜찮다. 그러나 “좋은 아침 되세요”는 어법에 어긋난다. 사람이 어떻게 아침이 되는가. 이와 비슷하게 “좋은 시간 되세요”나 “행복한 하루 되세요”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시간이 되거나 하루가 될 수는 없다. “맛있는 점심 되세요”라는 말도 들어봤다. 사람이 점심을 맛있게 먹는 것이지 점심이 될 수 있겠는가. 요즘 기차여행을 자주 하는데, 스마트폰으로 기차표를 예매하면 출발 전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인사말이 떠오른다. 도착할 무렵엔 “즐거운 여행 되셨나요?”라고 묻는다. 사람이 여행을 즐겁게 할 수는 있어도 여행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중국인들이 즐겨 쓴다는 “부자 되세요”는 말이 된다. 사람이 부자, 좋은 사람, 훌륭한 선생 등으로 되는 건 자연스럽다.
1) 시
요즘 부쩍 남용되고 오용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시’다. 사람의 동작이나 모양이 아니라 사물이나 상황에 ‘시’를 붙이는 표현이 유행처럼 번진다. “주문하신 커피(음식) 나오셨습니다.”, “포장이세요?”, “5만원이십니다.”, “거스름돈(영수증) 나오셨습니다.”, “이 제품 인기가 많으십니다.”, “그 물건은 품절 되셨습니다.”, “신상품이 출하되셨습니다.”, “원하시는 (옷이나 신발의) 색상(크기)이 없으십니다.” ..... 음식점이나 가게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듣는 이른바 ‘사물 존대’ 말투다. 사람보다 재물을 더 중시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탓일까, 손님을 극진히 모셔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이런 엉터리 존대는 말하는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리며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기는커녕 비위를 거스르기 쉽다.
사람 존대와 사물 존대 사이에서 헷갈리기 쉬운 게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주례사를 ‘꼰대 잔소리’로 여기기 때문일까. 언젠가 주례가 있는 결혼식 사회자가 “주례사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결혼식을 주도하는 사람인 ‘주례(主禮)’가 신랑과 신부에게 축하나 격려하는 말이 ‘주례사(主禮辭)’인데, 말을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례는 나중에 한자어 편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말의 문제점만 짚는다. 무슨 회의를 시작하면서 사회자가 “회장(사장)님의 축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강연이나 토론회에서 “질문 계시는 분 손 들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운동에 소질이 계시군요”나 “시간이 계시면 .....” 등의 표현도 비슷하다. ‘있다’의 존대어는 ‘계시다’와 ‘있으시다’인데, 사람에겐 ‘계시다’를 쓰고 사물엔 ‘있으시다’를 써야 옳다. “회장님이 회사에 계신다”나 “아버지가 집에 계신다” 등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사람일지라도 그의 말씀, 질문, 소질, 시간 등은 계시는 게 아니라 있으시다고 쓰는 게 좋다.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소질이 있으시군요”, “시간이 있으시면” 등으로 말이다.
참고로, 우리는 동사 한 마디로 표현하면 될 걸 명사와 동사 두 마디로 쓰는 경향이 강하다. ‘일한다’를 ‘일을 한다’로, ‘춤춘다’를 ‘춤을 춘다’로 ‘출발했다’를 ‘출발을 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앞에서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나 “질문 계시는 분”이란 말은 잘 못 됐고,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나 “질문 있으신 분”은 괜찮다고 했는데, “말씀하시겠습니다”나 “질문하실 분”으로 쓰면 쉽고 간결하며 잘못된 사물 존대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의 신체 일부나 소유물을 존대하는 ‘간접 높임’도 헷갈리기 쉽다. 존대해야 할 높은 사람이나 어르신에게, “키가 크십니다”, “얼굴이 훤하십니다”, “귀가 밝으십니다”, “목소리가 우렁차십니다”, “따님이 예쁘십니다”, “옷이 잘 어울리십니다”, “가방이 무거우시겠습니다”, “댁이 넓으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다. 키와 얼굴은 물론 옷이나 가방에도 높임말을 써서 상대를 간접적으로 존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높은 사람이 “몸살에도 불구하시고” 또는 “바쁜데도 불구하시고” 모임에 참석했다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몸살이 나셨는데도 불구하고” 또는 “바쁘신데도 불구하고”가 바른 표현이다. 어떠한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불구하고’라는 말엔 ‘시’를 붙일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아시는 분”이란 표현도 자주 듣는데 이는 상대가 아니라 나를 높이는 표현이다. “내가 아는 분”이라고 해야 한다. 내가 그분을 ‘알고’, 그분이 나를 ‘아시는’ 것이지, 내가 그분을 ‘아시는’ 게 아니란 말이다. 병원에 가면 “다리를 펴고 누우실게요”나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실게요” 등의 말을 듣게 되는데 참 어색하고 잘못된 표현이다. 의사나 간호사는 “다리를 펴고 누우세요”라거나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세요”라고 말하는 게 바람직하고, 환자는 “다리를 펴고 누울게요”라거나 “고개를 이쪽으로 돌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다.
편집: 김미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