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라언덕 위의 첫사랑 이야기 》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자를 써서
'푸른 담쟁이덩굴'이란
뜻으로 당시 박태준이 다니던
대구 계성하교의 아담스관과
맥퍼슨관,
그리고 언덕에 위치한 동산의
려원 선교사 사택들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휘감겨 있
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동무생각'(思
友)의 배경이 된 대구 동산동
의 '청라언덕'은 대구 근대문
화의 중심지다.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 치료로
유명한 대구의 <계명 동산
병원>이 바로 동산의료원이다.
백태준은 우나라 현대음악
의 선구자로서
1920년 동요 '기럭기럭 기럭
이...'라는 '기러기',
1925년 '24세의 나이에 '뜸
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의 '오빠생각'
새나라의 어린이 등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를 작곡한 우리나
라 첫 가곡인 '동무생각(思
友)'의 노랫말이
바로 이 언덕 위의 돌비에 새
겨져 있다.
마산 창신학교 설립자의 아들
이자, 창신학교 국어교사로 있
던 노산 이은상은
1년 전 이 학교로 부임한 태준
이 지은 동요를 좋아했다.
태준은 은상과 함께 노비산
언덕에서 바라보는 월포의
일몰을 좋아했고, 노비산에서
구마산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은상은 푸른 담쟁이 가득한 청
라언덕과 좁고
긴 90 계단이 아름다운 태준의
고향 이야기를 좋아했다.
태준의 이야기를 들은 때면 은
상은 꿈결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곤 했다.
"박 선생님의 이야기는 언제
나 고운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날은 태준은 은상과 함께
노비산 언덕에 앉아 있었다.
암울한 조국의 현실이 둘의 마
음을 더욱 어둡게 하였다.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문득 은상이 짓궂은 표정을 지
으며
"그런데 박 선생님! 선생님의
첫사랑은 어떤 분이셨나요?"
라고 물었다.
은상의 뜬금없는 질문에 태준
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첫사랑이 다 그렇지요. 그러
이까 영영 가슴속에 박제되는
사랑이고요."
"제가 다니던 계성학교 가까
이에 있는 신명여고의 여학생
이었어요.
함께 교회에 다녔는데,
한 번은 그 여학생이 자두를 한
바구니 가져와 교회 아이들에
게 나누어 주었어요.
전 그 자두가 저한테까지도 올
까 하며 가슴을 졸이며 있었지
요.
그러다가 결국 화장실로 달아
나 버렸어요.
혹시 자두를 못 받게 된다면
내가 자리에 없었으니 주지 못
했을 거라 위안하려고요.
그 후 돌아오니 오르간 위에
자두 두 알이 놓여 있었어요.
깨끗한 손수건이 자두 위에 덮
여 있었지요.
그 자두를 한참 책상 위에 두
고 날마다 바라보았어요.
더는 둘 수 없을 만큼 썩고 말
라버렸을 땐 꼭지를 따서 그
꼭지를 습자지에 싸서 보관했
지요.
교회로 가려면 청라언덕을 지
나가야 했어요.
여학생은 저녁 예배를 드리러
그 길을 지나곤 했는데 전
오르간 연습을 하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언덕으로 가 그
여학생이 지나는 걸
바라보았어요.
손수건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언젠가는 다가올
그 시간을 아껴두고 싶었거든
요.
어느 날 곧게 결심을 하고 그
녀를 기다렸어요.
'자두 고마웠어요'
이 말을 수백 번도 더 연습하
면서.
라일락 이파리가 잔뜩 두꺼워
진 칠월 하순이었는데,
그즈음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
었어요.
'사랑의 맛을 알려면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라'.
하지만 라일락 이파리가 어떤
맛인지는 알려주는 사람이 없
었어요.
문득 저는 그 맛이 궁금해졌어
요.
사랑의 맛이 궁금해졌던 거죠.
손을 뻗어 연한
리프 하나를 따서 입안에 넣었는
데.
아, 그 맛이란!
그건 먹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맛이었어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은 맛이었
는데 뱉어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그 기다림이 허사가 돼
고 말 것 같았거든요.
그때였어요. 멀리 그녀의 모
습기 보였어요.
기다람은 그렇게 길었는데 그
녀의 걸음은 어찌나 빨랐던지
내가 이파리를 다 씹어 삼키기
도 전에 그녀는
내 코앞에 마주 있었지요.
아직도 입안에 가득한 그 맛
때문에 혀가 얼얼하고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지요.
그때 제가 어떻게 한 줄 아세
요?
바보 같게도 '라일락 고마웠어
요'라고 말해버렸죠.
어휴, 그렇게 골백번 연습한'
자두'라는 말 대신
'라일락'이 고맙다니요."
순진한 아이처럼 귓불이 붉어
진 태준을 바라보며 은상은 배
를 잡고 웃었다.
"아이고, 도대체 그 이파리 맛
이 어땠게요?"
"그건 이 선생님이 직접 맛보
셔야 해요.
사랑의 맛이 그런 것이라는 걸
절감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태준은 얼굴을 활짝 펴
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어떻게
한 줄 아세요?
저를 보며옷었어요.
제게 눈을 맞추고 소리 없이
빙그레 웃었답니다.
그 후 그녀는 말 한마디 없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렸어
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상이 갑
자기 생각난 듯 수첩을 꺼내
무언가 끄적이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 선생님 곡에다가
그 여학생의 이야기를 담으세
요,
그러면 그 소녀와의 사랑을 노
례 속에서나마 이를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가사를 써 드릴 테니 곡
을 붙여 보시겠어요?"
잠시 후 은상은 태준의 고향
추억과
눈앞에 펼쳐진 월포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시를 건네주었다.
수첩을 받아 든 태준의 눈동자
가 따스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촉촉이 젖어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노랫말이군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
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태준은 며칠 전에 작곡한 곡을
떠올렸다.
그 음률 속에서 푸르던 청라언
덕과,
언덕의 붉은 돌담과 붉은 담을
휘감은 푸른 담쟁이와,
그 길을 장난치며 오르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본유학 중 폐결핵에 걸려 돌
아와 24살의 나이로 그 아름
덥던 생을 마감했던 형이었다.
그리고 창포물을 들인 듯 윤기
나던 소녀의 검은 눈썹과,
그 눈썹 아래 싱그럽던 소녀의
미소가 태준의 빰을 조용히
만지고 지나갔다.
멀리 파도 속으로 백합 같은
소녀의 희디흰 얼굴과
저녁 조수처럼 떠난 흰 새 같
은 형의 얼굴이 썰물처럼 밀려
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어느 시인이 쓴 이 사연을 읽
고 나는 그날 내내 가슴이 아
프로 슬폈다.
선을 속에 담긴 그의 풍부한
서정성은
당시 우리 민족의 가슴에 맺힌
한을 위로해 주었고 그리움과
애잔함을 달래 주었다 한다.
이 땅의 연인들이여,
'사랑의 맛을 알려면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세요.'
박태준이 말한다.
'아 그 맛이란 정말 죽을 것 같
은 맛이었어요!'
***
박태준은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숭실학교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합창지휘를 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연세대학교에 종교음악과를
설립하고 초대 음대학장을 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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