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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뉴스타임지 인문학산책) 2026 1019
전쟁 승리와 삶의 승리 그리고 시(詩)
이민숙
손자병법에서 싸움은 다섯 가지 장수의 자질로부터 결정된다고 한다.
지략(智), 신의(信), 사랑(仁), 용기(勇), 엄격함(嚴)이다.
이 요소들을 곰곰 적용하자면 각각의 생의 비법이 아닐까 싶다. 안다는 것, 나를 알고 적을 알고, 바람의 방향을 알고 땅의 성질을 알고, 장수라면 자신의 결정적 힘과 지략을 갖추어야 하며, 부하들의 심리적 강점과 약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바탕에서 서로를 믿고 따르는 사랑과 지혜가 갖추어질 것이다. 그것이 용기의 기본일 것이며, 장수의 리더십은 한 마디로 열 행동을 결정짓도록 명령에 대한 세가 갖추어질 것이다.
‘나 자신을 숙고할 줄 아는 지략’이 중요하다.
손자병법에서 일반적 지식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진다.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敗
어쩌면 인생의 모든 실패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로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 실패란 현실적 상황에서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산다는 건 자신의 생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큰 의미라고 할 때 자신과의 대화나 인생관에 대한 신망을 비유하면, 전쟁의 필승이나 필패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꾀나 많은 책과의 대화,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큰 가치를 두었던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이 만난 화두를 든다면, 그건 자아를 향한 지적 탐구에 대한 은근한 부추김이었다. 세기적인 명저라고 알려진 저작물을 펼치고 마지만 책장을 덮었을 때, 우리가 나눈 화두는 그렇구나! 삶이란 이런 거구나! 아니 이 책을 썼던 사람의 지혜란 다름 아닌 “너! 너는 누구냐?” 그 때 우리는 “나?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다고?” “내가 그렇게 몰랐었다고?” 아니 2천 년 전 그가 말한 ‘삶’이 21세기 우리의 ‘지금의 삶’을 가리키고 있다고?
모든 걸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던져진 이 우주, 나만의 하늘 땅, 나만의 달과 별은 찾기 어렵다고 느껴왔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살아야 하고, 나는 ‘너’와의 지극함을 이루어야 한다. ‘너’를 모르는 ‘나’ ‘나’를 소외시키는 ‘너’는 이 지구의 생명 관계에서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필패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진다.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敗”
결국 이긴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너에게 져도 안되지만, 나 스스로 패할 수는 없는 법!
샘뿔인문학연구소 야간반엔 남자들이 대다수다. 그들은 낮과 밤 시간을 아껴 책을 읽고 자주 모여 토론을 한다. 클럽 이름 하여 ‘악동클럽’ 바쁘고 힘든 일을 하는 와중에 지혜와 만남의 즐거움을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여자는 나 혼자다. 그럴수록 즐겁다. 남자의 세계와 자주 만나면서 서로 다른 인간적 성적 교집합을 즐긴다고나 할까. 남성적 여성적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만 이번에 읽게 된 손자병법도 여성들이 주로 속한 다른 모임에선 뜸하게 추천하는 책이었을 것 같은 것이다. 손자병법은 ‘병법’만이 아닌 ‘삶’의 다채로운 기법이면서 역동적인, 때론 웃음을 자아내는 책이다. 특히 이런 내용은... ...
“공격은 이길 수 있을 때 한다”
“진짜 싸움 잘하는 사람은 쉽게 이길 만한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이기는 군대는 이겨놓고 싸움에 나서고 지는 군대는 싸움부터 하고 승리를 찾는다”
현실적, 산술적, 경영학적 병법이면서 삶의 명랑성도 함께 덧붙여진 것 같다. 결코 질 수 없는 것이다. 목숨이 걸린 전쟁인데, 어찌 질 싸움을 하겠는가!
이런 유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하게 된 엉뚱한 상상 하나가 있었다.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발상이기도 하지만, 이 병법들은 정직하게 문학 창작의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아니 이 병법은 문학과는 전혀 이질적인 역설들이구나! 하는 생각이다.
가지런하게 놓을 수 있는 패는 문학이 아니다. 그 어떤 예술도 이길 수 있을 때, 다른 말로 성공작을 예상하며 도전하지는 않는다. 물불 가리지 않고, 아무런 계산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노력에 더하여 전통적 작법에 기대지 않은 창작은 있을 수 없다. 그 비법을 터득했다기보다 실생활에서 가장 명징하게 보여준 예술가는 피카소다. 그는 역사 속 명작들, 자기 시대의 명화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모작하고 연습했으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거의 전무후무한 작품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그와 다르게 스승이나 문학 창작, 예술 창작의 전문과정을 무시한다고 하자, 더 멀리 가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도 어쩌면 독창성과 비밀의 병기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말한다(자연과학, 사회과학적 이론가들, 아니 신화학자들마저도) 독창성이란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탄생의 비밀마저도 유전적이지 않는가 말이다. 디엔에이의 유구성에 짧은 지식이 당도하면 두 손을 들고 만다. (그 외 더 큰 범위의 연구 과정을 쓸 수는 없지만)
나라는 엄마가 내 엄마의 자손인가? 내 손녀딸, 그 녀석이 태어나는 과정 역시 내 아들과 내 며느리의 단순 세포의 조합으로 가능한 건가? 무엇인가? 수운과 해월이 물려주고 간 그 도저한 민족적 아름다움, 사상적 위대함을 놓고, 그게 나다!하면서 웃었던 시간은 아직도 물결 치며 나를 흔든다. 그러나 그 영혼들의 위대함도 시천주나 후천개벽 사상이 번쩍이는 ‘순간의 깨달음’만은 아니었을 터!
손자병법이여! 나는 그대의 은유적 승리에 박수 보낸다. 내게도 그런 문학적 승리가 이론뿐만 아니라 실전의 빛, 삶의 리얼리즘적 디딤돌로 깃들어왔기를! 이 가을의 단풍처럼 차근차근 나뭇잎 꿈을 꾸게 되기를, 밤새워 또 한 편의 시를 쓰게 되기를, 나의 무지 너머를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