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감동,카타르시스,정신적 고양,호기심 해소,세계관 확장 등등등...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중 아주 일부에 해당한다.
게임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
얼마전 도갤에서 모 갤러가 요즘 게임들은 화려한 그래픽에 치중한 영화 같은 게임들만 쏟아진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난 대략 15년 전쯤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절묘한 컨트롤을 요하던 이전 게임들과는 달리 점점 버튼만 연타하면 쉽게 즐길수 있는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이제 얼마 안있어 게임과 영화의 차이점은 영상을 재생시키기 위해 패드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그것뿐이게 될거라고.
게임 개발사는 왜 그토록 그래픽 기술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플레이어는 매번 체험판의 화려한 오프닝에 열광했을까,
몇개의 커다란 점만으로 캐릭터의 얼굴과 배경화면이 묘사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무토막같던 그런 인물들의 드라마에도 게이머들은 눈물을 흘렸었지만, 그 점이 점차 작아지고 많아질수록 색상이 흑백에서 16색으로 256색으로 1024색으로 늘어날수록 게이머가 보는 세상은 더더욱 생생해졌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그래픽이 변하는건 시각적인 변화에 그치는게 아니라 게임 벨런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들어 오락실 게임이었던 철권태그를 플스2로 이식했을때 그래픽이 약간 좋아졌는데, 이때 오락실에서는 들어가던 콤보가 플스판에선 안들어가거나 반대로 플스판에서만 들어가거나 하는 경우가 생겼다. 외형이 약간 바뀌니 아슬아슬한 차이로 주먹이나 킥이 닿고 안 닿고 차이나던 것들이 되고 안되고 한것이다.
게임 컨트롤에 대해.
요즘 게임들은 아무 생각없이 버튼만 눌러도 진행되는데, 이전 게임들은 다르다. 내가 슈퍼마리오를 처음 했을 때, 1 - 1스테이지에서 시작하자 마자 처음 나오는 벼랑?이라고 해야 되나 구덩이라고 해야 되나. 거기서 맨날 빠져 죽었다. 처음에 키패드를 오른쪽으로 눌러서 마리오가 앞으로 달려나가다가 땅이 꺼지는 부분에서 점프를 해서 뛰어넘어야 되는데, 그냥 점프하면 거리가 모자라서 빠져 죽고 가속버튼을 눌러서 점프를 해야 된다. 근데 가속버튼을 누르면 빠르게 이동하는 만큼 타이밍을 놓쳐서 점프를 못하게 되거나 너무 일찍 눌러서 목표지점에 착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컨트롤이 되지 않을 경우 게이머는 제작사가 창조한 세계에 진입 자체가 안되는 것이다. 마리오의 생명은 3개 뿐이고, 세번의 시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게임 오버되어 인트로 화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게임에 소질이 있든 아니면 숙련된 플레이를 해서 콘트롤 실력을 끌어올리든 하면 점차 그 세계를 둘러보고 체험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손맛을 보통 게임성이라 한다. 이런 게임성은 보통 격투 게임이나 스포츠 게임에서 비중이 높고, 롤플레잉 게임이나 턴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선 비교적 스토리나 벨런스 부분이 중요해진다. 물론 롤플레잉,전략시뮬은 그 장르만의 게임성의 개념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게임의 두가지 특성, 제작사의 그래픽 기술 발전에 따라 세계가 점점 선명하게 보이는 것, 플레이어의 컨트롤 실력 향상에 따라 제작가가 창조한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
근데 완전 개소리로 들리겠지만, 독서의 재미에는 이 두가지 비슷한게 있다.
책을 펼치면 하얀건 종이 검은건 글씨 뿐인데도 어떤 책에서는 흑백 모자이크 도트 그래픽 영상이 재생되는가 하면, 어떤 책에서는 몇백만칼러 풀HD 3D랜더링된 영상이 재생된다.
더 신기한건 같은 책에서 처음 읽었을땐 고전게임 그래픽이었는데 두번, 세번 거듭 읽어갈 수록 영상이 점점 세밀해지고 화려해지면서 최신게임처럼 변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그저 책장을 넘기면 진행되는데 책에 조이패드 꼽아서 읽을것도 아니고 무슨 컨트롤이냐 할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게 있다. 눈으로 글자를 보고 그 문자의 의미를 해석해서 전체 문장의 맥락에 따라 영상이 재생되고 심지어는 배경음악과 효과음이 재생되고 심지어는 배가 고프거나 부르고 추웠다가 덥고 거의 체험에 가까운 동굴을 지나가게 되는데,
이건 그냥 되는게 아니라 아까 마리오가 점프를 적절한 타이밍에 해서 구덩이를 넘어서야 하는것처럼 뭔가 신경계의 컨트롤 같은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 이해를 못했단 문장을 사전을 찾아보거나 관련 배경지식을 검색래 이해를 한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청량리역 무허가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누우니 새삼 자신이 처량했다. 그나마도 동숙자 한 사람이 더 들어올 예정이었다. 방값을 놓고 한동안 실랑이 끝에 들어선 동숙자는 열네살 정도의 소년이었다. 주정뱅이나 불량배가 아니어서 안심이긴 했지만 같이 누워 자기에는 꾀죄죄한 차림이었다>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하자. 이 문장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다. 난이도가 있는 문장도 아니고 뭘 찾아봐야 하는 문장도 아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정말 그 단어들이 의미하는 최소한의 것만 해석해서 연결시키는 기본적인 작업에 그치기도 하고, 초라한 잠자리를 떠올리며 몸서리치기도 하는데, 그 영상의 생생함은 읽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게 지금 몇문장 안되니 그게 그거 같지만, 이 문장들이 단락이 되고 챕터가 되고 장이 되고 전체 작품이 되는 그 구성 전체로 보면, 책읽기는 더이상 문장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컨트롤을 해서 스테이지 1-1부터 8-4까지 클리어를 해 나가야 하는 도전과제이자 그 컨트롤 실력에 따라 제작자의 역량이었던 그래픽 수준까지도 독자의 역량으로 환골탈태 시킬 수 있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이것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손맛'에 해당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독서의 재미이다. 읽어갈수록 점점 더 선명하고 리얼하게 확장되는 지금까지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그게 자동으로 재생되는게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제작사 (작가)의 창조물의 자물쇄를 풀어 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
그것이 독서의 재미이다.
첫댓글 ㅋㅋㅋ 그냥 예시문으로 쓰려고 무지막지하게 칼질해서 갖다 붙였는데 그걸 알아보시네유 ㅋㅋ
활자는 상상력이 자라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주죠.
꼽아를 꽂아로 바꿔줘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