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나가 고장나다 / 조낭희
해마다 겨울은 긴장감으로 살아 있었다. 동안거에 들어간 나목들은 눈부신 생명력을 뿜어내고 겨울바람은 날카롭게 절규했다. 그것이 겨울이 주는 매력이었다. 그렇게 변함없이 반복될 거라 의심치 않았던 계절이 올해는 낯선 모습으로 우리 앞을 서성인다. 온화한 햇살 아래에서 겨울이 앓고 있다.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습성 때문이었을까? 동공이 풀린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도 지독한 독감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 속에 맥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참담함, 그것은 균형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쑤셔오는 삭신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한 것은 한 주를, 한 달을, 일 년을 거슬러 오르다 맞닥뜨린 내 삶의 무질서함 때문이었다.
확장된 욕심 속에는 움켜 쥔 것이 너무 많았다. 삶의 열정이며 진취성이라 이름 붙였던 것들이 목표 없는 방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도 나는 무턱대고 바빴다. 볼썽사납게 비대해진 과욕들은 이미 내 생활 속에 군살처럼 밀착되어 있다. 세월은 현실적인 가치에 쉽게 유혹을 받도록 만들었고 정신은 남루하다.
끊임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근원적인 불안 증세를 앓고 있는 자라고 누군가 말했다. 생의 한가운데, 어쩌면 또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분기점에서 나는 심하게 앓고 있다. 삶의 수신 장치가 고장 났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고뇌하며 살아가라고 운명지어진 듯, 이 아픔은 거부할 수 없는 주술과 같은 힘을 가졌다.
며칠 째 운신도 못하고 누워 있던 어느 날 새벽, 마른 비질소리가 들린다. 시멘트바닥을 거칠게 훑는 플라스틱 빗자루의 건조한 마찰음이 새벽공기를 흔든다. 모처럼 듣는 반가운 소리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아파트 마당을 쓸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한다. 숲에서 날아든 마른 나뭇잎이나 쓰레기들 사이로 맑은 새소리도 간간이 쓸려가고 있다. 환경 미화원이 출근도 하지 않은 이 시간에 누가 마당을 쓰는 것일까? 오늘은 아파트 마당이 더 눈부실 것 같다. 불규칙하고 투박한 소리지만 모르는 이의 마음이 전해져서 새벽이 더없이 포근하다.
어린 시절 마당을 쓰는 비질 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의미했다. 힘 좋은 머슴이 쓸면 시원스러워 몰려오는 아침잠까지 걷어가 버리곤 했다. 간간이 휘파람 소리가 섞여 나오면 그가 기분이 좋다는 것을 의미했고, 유난히 비질 소리가 거칠면 심기가 불편하다는 무언의 저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비질 소리는 달랐다. 부드러우면서도 아늑했으며 빗자루 끝에 새벽 공기가 감겨드는 운치가 있었다. 그 소리에서 안온하고 신선한 새벽이 열리곤 했다. 그런 날은 하루의 출발이 즐거웠다. 아침상 앞에 앉은 할아버지의 얼굴은 환해 보였고 새로운 의욕에 차있음이 느껴졌다. 머슴이 둘이나 있을 때도 할아버지는 손수 그 일을 하셨다. 이른 새벽 마당을 쓰는 일은 깊은 밤에 일기를 쓰는 마지막 일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할아버지의 그 두 가지 ‘쓰는’ 일은 숙명과 같았다. 삶에 질서를 잡고 영혼에 윤기를 내는 작업이기 때문이었을까. 할아버지는 아흔의 세월을 채우고 노환이 오자, 며칠 동안 곡기를 끊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나라로 가시는 얼굴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고 식구들은 경이로워 했다. 삶은 결코 투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싸리비의 결이 은은하게 살아있던 마당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내 유년은 아름다울 것이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할아버지와 마당에 대한 압축된 기억이 영화 필름처럼 돌아가다 멈춘다. 갑자기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먼지가 신경을 자극한다. 완전히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대청소를 시작한다. 싸리비 대신 요란한 청소기가 윙윙 방마다 돌고 기름걸레가 지나간다. 촉감 좋은 마룻바닥을 맨발로 돌아다니며 삶은 투쟁이 아니라고 되뇐다. 새로운 기운들이 물결치듯 출렁인다.
할아버지에게는 마당을 쓰는 일이, 내게는 육체적인 아픔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일이 필연인지 모른다. 아픔은 반성이며 희망이다. 앓고 나면 육체는 치명적이리 만큼 쇠잔해지지만 그 앞에 펼쳐진 세상과 삶은 새롭고 경이롭다.
유난히 힘들었던 독감과 비실비실 앓고 있던 겨울은 갔다. 고장 난 삶의 안테나를 고치고 난 후 맞게 되는 봄은 훨씬 유연하고 풍성하리라. 한 해에 한 번씩 새 눈을 만들고 잎을 만드는 나무들처럼 나도 아픔을 경건하게 즐기고 싶다. 때로는 무례하게 무방비상태의 나를 기습 공격해 올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