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 (외 1편)
김 유 석
1.
청개구리 운다. 울음으로 제 몸에 푸른 멍울을 새긴다.
느릅나무 잎사귀에 앉아
칠월, 뜨거운 허공을 우러러 매미와 화답한다.
즐겁다 울고 슬퍼서 울고
장난처럼 엄살처럼 울고
실은, 그가 가진 것 울음뿐이다.
제 울음에 한 세상 공명하는 줄 알지만
청개구리 우는 뜻은 우화 같은 자기연민
울어서 몸은 푸르나 눈이 물러터진 까마중 같다.
2.
뻐꾸기 울음 일렁인다. 오월 해 다 갈 때
한 번은 그렇게 저었을 강 건너 숲
절반쯤 가라앉은 나루터 빈 배에 새어드는 노을이 붉다.
공무도하 공경도하
삐걱이던 노 소리
삐꾹 뻐꾹 저 새는 알고 있었던지
건널 수 있을 때 건너라 이르는지
배젊은 도사공 처자 귓전에만 들렸던지
남의 둥지에 알을 놓고 가는 새, 집 지을 줄 모르는 뻐꾸기가
멀어졌다 다가서다
이명처럼 울리는 속없는 세상
들녘 보리 귀 막고 혼자 여문다.
3.
소는 세 번 운다.
배고파 울고 새끼 생젖 뗄 때 울고 팔려가면서 운다.
커다란 덩치가 온통 울음주머니다. 그러나
멍청한 소는 제가 울고 있다는 걸 모른다.
그렁한 눈망울은 액체의 거울
울고 있는 제 모습은 못 담고
울고 싶은 것들 끌어 비추는 묽은 담채
제 눈거울 한 번 들여다본 적 없어, 소는 스스로의 눈물 뿔 속에 가둔다.
뿔은 응고된 울음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는 묽은 피톨 , 그러니까
소의 가장 단단한 것 뿔이 아니라
쇠뿔개뿔, 여리고 뻔한 위장
소장수 새끼줄을 걸고 끌려가는 것도 뿔
삭정이 각목 같은 걸로 툭툭 치면
한구석으로 몰려 고갤 쳐 박는 소들, 그러나
참을 수 있을 만큼 참다가 한 번은 울음으로 들이받는 자해의 성질이 있다.
4.
비울 것 다 비워 낸 십일월 들판에 내리는 비
청개구리처럼 뻐꾸기처럼, 소처럼
다 퍼낸 줄 알았던 귀에 고이는 빗소리
청개구리 푸름도 뻐꾹새 붉음도,
검은 소의 눈망울도 아닌
썩어버린 우물 같은 귀를 질러가는 저물녘 기차
객차처럼 화차처럼
덜컹덜컹 울음에 끌려가는 울음에
차창 소리 죽여 휘청거리는 들국 한 무더기
슬픔은 철없다
할머니 슬퍼?
안 슬퍼
근데 왜 혼자 살아?
배추밭에 쭈그린 홀어미 등을 가을볕이 애벌레처럼 갉고 있다.
할머니 뭐해?
벌레랑 놀지
벌레가 뭐야?
배춧잎을 자꾸 헛 꼬집는 홀어미 어둔 손끝에 애벌레 같은 손녀의 물
음만 집힌다.
구멍들은 누가 먹은 거야?
벌레들이 먹었지
벌레는 구멍을 먹고 살아?
작은 구멍은 이쁜 애벌레가 먹고 큰 구멍은 배고픈 큰 벌레가 먹고
……이쁜 구멍은 배고픈 구멍이 되고 배고픈 구멍은 나비가 되고, 나
비는 구멍만 내놓고 나풀나풀 날아가고……
할머니 슬프지?
안 슬퍼
근데 왜 혼자 말해?
주말에 들러 가는 어린 손녀를 동구 밖까지 따라나서는 석양에 꿈틀
대는 홀어미 그림자가 꼭 애벌레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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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석 :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놀이의 방식 외.
ㅡ「시인정신」201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