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方 旻
쌩장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로 향해 길을 나선다. 프랑스 땅에서 스페인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 반드시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야 한다. 까미노 출발 첫날부터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힘 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걸 이틀에 넘기도 하지만 우리는 하루 일정으로 잡았다. 그 거리는 대략 잡아 25킬로, 안내서에 나온 소요 시간은 8 시간. 이걸 견뎌야 한다. 첫 발걸음치고는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처음부터 우릴 시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불안한 심사일까 더욱 긴장된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어 오르막길을 오른다.
지금은 사월 초순이지만 산악 지역이라 바람이 매우 세게 분다. 목축 지대인데 밖에 나온 양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듬성듬성 조성된 풀밭이 눈에 뜨인다. 산을 오르는 건 맞는데 산의 풍경은 볼 수 없다. 비탈에 군데군데 집이 있고 초지 조성하기 위한 밭이 보인다. 이게 과연 산인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산길을 걷고 있는 건 맞는가. 자주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고갯길에 거의 오르기까지 포장된 차도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바람은 어찌 그리 세게 불어오는지, 자꾸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게 만든다. 우리의 발길을 누군가 시샘하는지, 가지 말라고 붙잡는지 모를 일이다. 왜 그 고개를 넘고 있느냐고 바람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나 보다. 마구 부둥켜안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그걸 매정하게 떨치고 나아가려 하니 힘이 들되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기 수월하지 않다. 여길 오기 위해서 중지하고 떨쳐놓은 게 한둘이 아니기에 이 바람의 방해를 물리쳐야만 한다.
산은 산이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산, 보아온 산의 미덕을 간직해야 한다. 산에 나무가 있고, 바위도 한 자리 차지하는 산. 산맥도 역시 산인 건 분명한데, 이곳은 산이나 산이 아니다. 나무를 보기 어렵다. 나무가 자라기 힘든 토양의 환경인지도 알 수 없다. 사진으로 보는 외국의 높은 산들은 나무가 안 보인다. 백두산만 해도 천지 주변엔 나무를 볼 수 없다. 한라산 역시 백록담 가까이엔 역시 그러하다. 여기의 고도는 그만큼 높지 않다. 출발지인 쌩장의 고도는 200 미터이고 우리가 넘는 산맥의 고도는 1,400미터로 나와 있다. 그 정도 높이에는 반드시 나무가 있어야 마땅하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거나 없는 건 아니다. 자세히 둘러보니 골이 진 곳 여기저기 드문드문 나무가 서 있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토양이나 자연 환경은 아닌 셈이다. 나무를 가꾸지 않았거나 자라던 나무를 베어낸 게 확실하다. 이 산지에서 나무를 몰아낸 게 틀림없다. 나무가 없는 게 아니고 그들이 자라지 못하게 막은 거다. 이 곳에서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건 결국 사람들이 한 짓일 게다.
산을 찾는 것은 바로 산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걸 만나지 못하면 더 이상 산이 아니다. 피레네 산맥의 풍경은 황량하기만 하다. 풀과 들꽃만이 차지한 산, 그래선지 몰아치는 바람은 내 걸음을 막아서고 휘청거리게 만들며 심술을 부린다. 바람의 벗, 나무가 없는 외로움과 아픔을 우리에게 화풀이하느라 사정없이 불어 재껴대는지 모른다. 나무를 베어내 버린 인간의 욕구를 꾸짖느라 동족인 우리에게 그렇게 심하게 원성을 쏟아내는지 모르겠다. 이쪽 편에서 저쪽 길가 끝으로 몰아대는 바람을 원망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 한스러움을 껴안으려 하자 바람도 조금씩 잦아든다. 비로소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할 여유를 얻는다.
초지를 조성하여 가축을 기르려고 나무를 베어내고 개발하였을 터이다. 더 많은 우유와 고기를 얻기 위해서 이 높은 곳까지 나무의 삶터를 빼앗은 셈이다. 물욕을 앞세운 인간들의 이기심이 나무들의 산을 차지해버렸다. 침탈할 수 없는 바람만 버려두어 팽개쳐둔 채 나무를 쫒아버렸다. 원통함과 복수심이 그토록 세찬 바람이 되어 동족인 우리를 공격해왔다. 바람과 나무가 사는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픈 우리 까미노Camino(스페인어로 ‘길’이란 뜻이며 Santiago는 Saint 야고보Diego의 합성어. ‘성 야고보의 길 Camino de Santiago’를 줄여서 ‘까미노’라 부름)까지 적으로 생각해 무차별 포격을 감행한 것이다.
동식물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건전한 생태계를 잘 유지하는 게 바람직한 삶이 아닐까. 사랑하는 자손들에게 살기 좋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닌가. 그들의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뺏는 일은 이제 자제하는 건 어떨까. 인간의 탐욕을 조정할 때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에도 바람이 잦아들 것이며 나무들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리라. 하면 이 길을 덜 힘들이고 걸을 수 있겠지. 바람에 흔들대는 나무들이 하늘과 대화하는 피레네를 다시 찾고 싶다. 그 날을 고대하며 지금 나는 배낭을 메고 피레네를 넘는다.
첫댓글 산에 나무가 없어 바람만 화난 게 아니군요.
방민 선생님은 바람보다 더 화나신 게 분명해요.
양들이 산에서 풀 뜯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 때는 평화로운 광경이다 싶었는데
초지를 그렇게 조성한 것인 줄 몰랐네요.
피레네를 넘은 장군 이름이 누구더라? 생각이 날 듯 말 듯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