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명의 아저씨들이 텃밭의
대추나무 가까이서 서성이는 게 느껴졌다.
그들이 약한 내 대추를 건드릴까 신경이 쓰인다.
6개가 달려있는 가지 통째로
이번 추수감사절에 엄마가 가져가실 예물이라 더더욱 민감해졌다.
나는 그들이 나를 못보고
내 대추나무를 흔들까봐
점잖게 물었다.
"누구세요? 무슨 일이세요?"
그들은 대추를 사진찍는다 했고
나는 그 대추 6개는 우리 엄마가 쓰셔야 하니 잡아당겨도 안된다고
친절히 말해주었다.
자신을 사진 찍고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에
"디카시를 쓰세요?" 했더니
똥그래진 눈으로 디카시를 아냐고 묻는다.
세상에..이런 곳에서 디카시를 아는 분은 처음이라며 무척 놀라워한다.
하긴 의외이기도 할테지..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편의점도 없고
뵈는 거라곤 논과 밭,
강건너가 북한인 최전방인데다가
몇 시간을 돌아봐도 순 노인들이 전부인 동네 아닌가.
거기에 내 차림새로 보자면
소맷자락 늘어난 검은 내복에
여며지지도 않는 작은 패딩조끼,
묶이다 만 단발머리가 전부였으니,
도심의 강연장에서 디카시를 가르친다는 그 시인은
설마 반미치광이 포스의 저 아줌마가 디카시를 들어보기나 했겠냐
상상도 안했을 것이다.
나는 간단히 내 수상경력을 말하고
문학협회엔 가입하지 않은 거며
그러나 늙어서라도 나는 글쓰기를 계속 할 것 등등을 얘기했다.
그 시인은 강화로 와서 강연할 때
내게 알려주겠다며
전화번호를 적어갔다.
사람은 어디서 어떤 계기로 마주쳐
인연이 될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픈 이유로 집에 있지 않았다면,
텃밭에 나가서 휘휘 둘러보지 않았다면,
거 뉘시냐고 무슨 일이냐고
말걸지 았았다면
아마 내가 그 시인을 마주칠 일은
과연 언제 있게 될까.
어쨌거나 이런 반전이 있을 줄 몰랐다며 한참 얘기하다 간 그 시인을 생각해보니
아무리 집이고 마당이라해도
옷차림은 좀 갖춰입자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