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이제이에서 박열 특집을 했었으면 했죠.
(한거 같지만 사실 언급만 되었죠.
여러 독립운동가들 이야기할때 지나가듯이
이야기했습니다.)
이이제이 화암 정현섭 특집 등을 들어보시면
무정부주의자들 동지 이야기 나오면서 박열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동강변의 박열? 잉? 1968년 대동강이면
북한의 수도 평양인데?하실겁니다.
네.
박열은 납북되었는데 비교적 언제 죽었는지가
다른 납북인사들과 달리 당시에 알려졌던 인물이죠.
(이광수,정인보등 납북인사들은 1990년대 지나서
그들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알려졌지만요.)
박열은 1974년 사망했음이 당시에 알려졌죠.
동영상영화 '박열' 티저 예고편2017.6 개봉 메가박스 플러스엠 (주) 제공/배급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작 감독 : 이준익 주연 :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www.youtube.com
이준익 감독 작품이긴 하지만
크게 기대하는 작품은 아니고
(그래서 제가 앞서 다른 글에서
한국영화는 택시운전사를
하반기 기대작이라
한것이죠.)
티저 예고편등만
보면 너무 독립투사를 또라이 스타일로
그린거 아니냐? 너무 영화로 독립투사를
희화화 한거냐?하실수 있지만
박열의 살아온 길을 알면 이해할수 있습니다.
동영상170513 접속!무비월드 커밍순 박열www.youtube.com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지만 반공주의자.
하긴 아나키스트는 공산주의자와는 다르죠.
그래도 반공주의자들은 아니었습니다.
북한이 좋아서 간것은 아니어서 월북이
아닌 납북.
그렇지만 또 북한에 가서 그런대로 적응.
1974년 1월17일 71세로 사망.
박열의 아들은 아버지가 북한으로 납북되었지만
남한에서 군에 투신 육군준장까지 했죠.
왜 열사냐면 쇼와 일왕(히로히토)을
폭사시키려다
사전에 검거되었죠.
성공시켰으면 박열 의사였겠지요.
박열과 그의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저 사진이 유명했죠.
일본이 워낙 예전부터 성진국이라 불려도
요즘 기준에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만.
당시 기준에서는 파격적이었나 봅니다.
저 포즈로 법정에 나왔고 저 사진때문에
당시 일본내각이 총사퇴할 정도였죠.
가네코 후미코는 나중 감옥에서 자살합니다.
(일설에는 가네코 후미코를 일본 정부에서
죽이고서 자살로 발표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경북문경에 가면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과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박열이 독립운동가인데 왜 일본여성과
결혼했냐?
의아하실 분들도 계실텐데 일본
무정부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조선인과 조선의
독립운동에 동정과 지지를 하였고
가네코 후미코도 그런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1903년~1926년)
일본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출생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모두 양육을 거부당해 출생신고가 되지 못했던 그녀는 무적자(無籍者)라는 이유로 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하는 등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일본의 친척집에 맡겨져 자라던 중
1912년에 충북 청원군 부용면에 살고 있던
고모의 집에 들어가 할머니의 학대를 받으면서
약 7년간 조선에서 살며 부강심상소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그 동안에 3.1운동을 목격한 뒤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확인하고
이에 동감하게 되었다.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여전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술집에 팔아넘기려 하자 혼자 도쿄의 친척집으로 올라와 신문배달,
어묵집 점원으로 일하면서 영어 교습소에서 공부했다.
이때 사회주의자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아나키스트가 되었고, 1921년에는 도쿄에 유학한 한국인 사회주의자들과도 알게 되었다.
1922년 박열과 만나 동거를 시작했으며,
흑도회와 흑우회에 가입하고
기관지를 함께 발행하는 등 그와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1923년 박열과 함께
아나키즘 단체인 불령사를 조직했는데,
그해 가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보호 검속 명목으로 연행되었다.
그는 일왕을 암살하려한 대역죄 명목으로
1926년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일본 내에 시신을 거둬줄 사람이 없어서
박열과 옥중에서 결혼서류를 작성하고
서류 상 박씨 집안의 사람이 되었다.
며칠 뒤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서류상 결혼을 했기에, 박열의 형이
유골을 인수하여 고향인 문경에 안장했다.
△가네코 후미코.
☞박열(1902~1974)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咸陽), 어렸을 때의 이름은
준식(準植)이었다.
3.1운동과 관련되어 경성제2고보
(현 경복고)에서 퇴학당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업을 계속했다.
1920년 최초의 무정부단체인
'흑도회(黑濤會)'를 조직하였으나,
이듬해인 1921년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김약수 등의 공산주의자가 이끄는
북성회와 박열 등의 무정부주의자가 이끄는 풍뢰회(이후 흑우회로 개칭)로 분리된다.
이후 일시 귀국하여 조선 최초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로회(黑勞會)'를
조직하였다.
흑우회는 "후데이센징(太い鮮人)"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
당국이 '조선인 불온분자'를 일컫는 "불령선인(후레이센진)"과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일종의 말장난을 통한 조롱이었다.
1923년 4월,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등과 함께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하고 보다 적극적인 반일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던 중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조선인 학살을 피해 기타 잇키의 도움을
받아 피신하였으나, 보호 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체포되었다.
일본경찰에 의한 취조 도중 박열의
폭탄 구입 계획이 알려지게 되었고,
일본정부와 검찰은 이를 일왕 암살을
꾀한 조직 사건으로 날조, 과장하여
보도하였다.
이를 '대역 사건'이라고 한다.
이 때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도
비범한데, 두 사람 모두 조선 옷을
입겠다며 고집을 피워서 첫 공판 당시
박열은 옛 조선 관료의 예복인
사모관대 조복을, 후미코는 치마저고리
차림을 하였다.
이 옷은 조지훈 시인의 아버지인
조헌영 씨가 제공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므로 재판도 조선말로 할 것이니
통역을 허락하라고 요구했다.
두 사람은 1926년 3월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도움으로 박열과
후미코는 옥중에서 결혼하였다.
이 때 일본에선 박열과 후미코의 사진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일본 언론에 실렸는데, 도저히 중범죄자의 모습이라곤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스캔들은 담당 판사가 해임되고
정치적 공세로 인해 1927년 당시
일본 내각이 총사퇴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1926년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의문사하였다.
자살이라는 설과 당국의 암살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증은 없다.
후미코의 시신은 후세 다쓰지가 수습하여
박열의 가족을 통해서 문경에 안장했다.
박열은 22년 2개월 동안 복역한 끝에 해방 이후(1945년 10월 27일) 석방되었다.
도쿄로 돌아와 '신조선건설동맹'을
결성하였으며, 김구의 부탁을 받아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
송환의 책임을 맡았다.
이후 반공주의 노선의 신념을 밝혔으며, 신조선건설동맹은 타 우파 단체들과
통합되었고 '재일조선인거류민단(민단))이 발족하였다.
박열은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의
초대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1948년 8월 15일에 일시 귀국하였고,
이듬해에는 영구 귀국하여 서울에 머물렀다.
한국전쟁 도중 북한에 납북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진주한
북한 보위부가 납북했다고 한다.
자진 월북한 인사들도 있었고,
반동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도
있었으며, 북한군과 보위부
고위 관계자들이 와서
"선생, 이곳은 위험하니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다"라며 설득하여 북으로 데려간 경우가 있다.
조소앙 선생, 김규식 선생이 이러한 모시기 공작으로 끌려간 경우이며, 박열도 북한이
연행한 경우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서울이 함락되기 직전 박열은 주위의
피난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모두 서울에 남아있는데
독립투사인 내가 그들을 버리고 서울을
떠날 수 없다"며 서울에 잔류했다고 한다.
1974년 1월 17일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에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묘지는 평양 신미리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특설묘지에 있다.
첫댓글 감독과 소재는 기대만빵인데
배우는 제 스타일이 아니라ㅠ
너무 코믹적으로 풀려는거 아닌지 우려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