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써보지 않던 사람에게 일기를 쓰란 것은 쉽지 않은 숙제다. 대체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난색을 표하는 엄마에게 그날 뭘 했는지만 적어도 되니 쉽게 쓰시라고 했다. 그렇게 2월에 노트 한 권 드리고는 엄마가 잘 적고 계시는지 나는 묻지도 않았다.
눈수술 하러 부천에 가신 엄마는 11일에나 돌아오신다. 벌써 집 떠나신지 3일째여서 나는 밭으로 옛집으로 오가며 엄마대신 살피고 있었다. 아궁이에 쓰레기를 태우고 고수밭이랑 무밭을 비닐로 덮어주었다. 오늘은 엄마가 돌아와서 깜짝 놀라시라고 엄마방을 청소하는데 일기장을 발견했다. 펼쳐보니 첫머리는 '농협에 퇴비57포 예약함' 이라고 내가 써놓았다. 어쨌든 노트를 받았겠다, 이렇게 치매예방을 위해 시작했으니 그다음에 뭘 적어야 하나 엄마는 곰곰이 생각을 하셨을텐데, 엄마의 의지로 시작한 첫 줄이 당신의 기억에서 조금도 떠올리기 싫은 영도의 죽음이 적혀있어 나는 그자리에 앉아 오래 울었다. 죽음이란 말대신 천국으로 갔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게 다행이기도 했지만 그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우리 엄마 마음이 그게 마음이라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