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인 초하루다. 어제와 오늘이 뭐가 다른가. 달라야 한다는 기대감은 어디서 온것일까. 분명 어제, 한해의 마감을 했던것 아닌지. 마춤표를 찍은게 아닌지. 아닌가. 내 인생에는 숨표도 마춤표도 없었던 것 같은데,,, 결혼을 하고난 다음날도 어제와 다르지 않는 하루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분명 어떤 분기점 같은것을 마련하기 위한 매듭같은것은 있어야 할것 같은데, 그게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의 하루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맹렬하게, 혹은 치열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늘 흐리멍텅 해서 일까. 맞다. 늘 흐리멍텅한 사람에게 맺고 끊고가 있겠는가. 그날이 그날인체 삶을 허송해온 내가 꿈속을 더듬고 있어서 이런 부작용이 생긴 것일게다. 인생 참 다양하다. 고군분투 하면서 뭔가를 성취하고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흙탕 속에서 꿈틀거리며 흙탕물을 이르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게 늘 뒷처저서 아예 빈둥대는 삶을 살면서도 그게 최선이라는 고집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감응하지 못하고 고귀한 생명에 대해서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마는 사람까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창조주 하나님마저도 이런 다양함을 인정해 주고 계시지 않을까. 우린 그분의 피조물이니까, 그분은 분명 다양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실게다. 179명이 사고로 죽었다. 나라가 애통하는 중이다. 생명은 어느것이던 귀한 것이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사실 누가 누구를 하찮다 하겠는가. 새해에는 새희망을 갖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마침표가 있어서 다행이다. 숨표가 있는 것도 절묘하다. 순리대로 살면 굳이 순종을 강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맹종이나 굴종이 아니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오늘 하루도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길 원하신다고 했다. 지나치게 극악을 떨지말고 조금은 양보하며 사는게 사회를 덜 혼탁하게 하는 것일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모자람이 무능이 가난까지도 협력해서 나를 선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는 억지를 부려본다.ㅎㅎㅎ.
물은 벽을 타고 흘러내리기도 하고, 천정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더 심해지고 있다고 봐야겠다. 별일이 생긴것은 아니고, 큰일도 아니라고 열심히 쇠뇌하지만 온통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정작 웃층에는 아무소리도 못하면서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날벼락에 동조하면서 말이다. 죽은 사람, 집을 아예 잃은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가. 알면서도 호들갑을 떨고있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는 정말 한심하다. 어쩌면 이런 내가 짜증스러워서 더 힘든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송구영신 예배를 온라인으로 보았다. 온라인으로 시청중인 사람이 600명에 이르고 있었고, 9시 예배 참석자도 본당을 거이다 매우고 있었다. 하나님을 의존할수밖에 없다는 결론인가. 기독교인이 많다. 새벽부터 기도로 채우는 사람들이 얼마인가. 그런대도 혼탁은 급류를 이루고 있으니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시지 않는 것일까, 아님 잘못 구하고 있어선가. 씁쓸한 느낌인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