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01.29 06:23:18
희대의 야바위꾼인 문재인과 희대의 선동가이자 음모론자인 유시민 김어준 조국이 같은 벌레들이 우매한 畜生들의 눈을 멀게하여 대한민국을 3류국가로 몰고가는 이 현실이 참으로 믿기 어렵고 가슴이 아프구나! 국민들이 깨어나야 저 무리들을 어찌해볼텐데~저 무지몽매한 축생들을 어이할꼬~!@@@
10
불길한 징조인 줄 알았는데… 車로 사슴 친 美남성 22억원 잭팟
Editor's Pick
르네상스 거장 보티첼리의 그림, 1000억원에 낙찰..40년만에 70배 뛰어
미스트롯 심사위원들이 그들보다 나은가, 나는 회의적이다
입력 2021.01.29 03:20
음모론과 정치 팬덤은 나라를 둘로 쪼갠다. 문빠와 트빠(트럼프 열성 지지자)에게 객관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충돌하는 사실은 모두 가짜 뉴스로 여긴다. 자기편 선동가들이 만들고 유포한 거짓 내러티브를 맹신한다. 이들 정치 팬덤의 믿음은 정치 종교가 되어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하다. 트럼프는 사라졌지만 극단적으로 갈라진 미국은 사회 심리적 내전 상태다. 지금도 미국 공화당원의 75%, 트럼프 지지자들의 80%는 ‘트럼프가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믿는다.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내 TV에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생중계가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강력한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박해하고 있다는 게 정치 팬덤의 음모론이다. 미국을 장악한 숨은 권력 집단인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정치 구세주 트럼프’를 ‘사기 투표’로 축출했다는 게 트빠의 신앙이다. 문빠는 보수 야당과 언론, 검찰과 법원, 재벌이 뭉친 수구 반동 세력이 ‘정의의 사도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음해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선악 대결로 세상을 보는 정치 팬덤은 문 정권의 ‘윤석열 죽이기’가 증명하듯 정의 실현의 미명 아래 불법과 폭력을 정당화한다.
중우정치는 음모론과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 진영 대결이 키운 증오와 적대는 폭민정(ochlokratia)을 부추긴다. 최악의 코로나 재앙과 경제 위기에도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7400만 표를 얻었다. 총체적 실정과 민생 파탄에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에 이른다. 표현 자유가 보장된 ‘생각의 시장’에선 사실과 진리가 승리한다는 통설을 음모론과 정치 팬덤이 무력화시켰다. 음모론은 ‘사회적 폭포 효과’와 ‘집단 극단화’를 통해 퍼진다. 우리가 타인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고 선동가가 대중을 장악할 때 폭포 효과가 시작된다.
정보의 폭포에 휩쓸린 대중은 의문이 생겨도 남의 평판을 의식하는 ‘동조화(同調化) 폭포 현상’ 때문에 침묵한다. 동조화 폭포는 집단 극단화를 낳는다. 대깨문처럼 집단 구성원의 소속감이 강할수록 집단 내에서의 정보 교류가 음모론을 키워 극단으로 치닫는다. 문빠와 트빠가 결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사회적 폭포 효과와 집단 극단화 때문이다. 음모론 신봉자들을 사실에 입각해 설득하면 그들은 더 격분하면서 음모론을 비판하는 여론 자체를 음모의 증거로 여긴다. 인간은 자신의 편향된 입장에 맞게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 희대의 선동가이자 병적인 음모론자인 유시민과 김어준이 진보 진영에서 선지자이자 의인(義人)으로 대접받는 이유다.
정치 팬덤에 업힌 선동가의 음모론이 득세하면 민주주의는 고사(枯死)한다.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으로 번영하던 아테네 민주정은 순식간에 참주들이 활개 치는 폭민정으로 전락했다. 군중을 선동해 민회를 장악한 포퓰리스트들은 법과 정의를 파괴한 폭민 통치(mob rule)로 고대 아테네를 망가뜨렸다. 트럼프 시대는 중우 정치가 민주정을 잠식하면서 미국 민주주의를 균열시켰다. 문재인 정권 4년도 정의와 불의의 잣대가 뒤집히고 거짓이 사실을 압도한 음모론과 폭민정의 전성시대였다.
최악의 음모론은 거짓으로 이루어진 ‘대안적 사실’을 창조한다. 음모론의 세계 구성 효과는 커뮤니케이션을 반(反)커뮤니케이션으로 변질시킨다. 문 정권의 소통이 ‘쇼통’으로 전락한 맥락이다. 문빠들이 만든 대안적 세계에서 조국·추미애가 벌인 법치 파괴의 난장판은 숭고한 개혁 행보로 미화된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생명 바쳐 옹위해야 할 ‘달님’이 되고 한국은 세계가 우러르는 ‘문재인 보유국’으로 추앙된다. 가짜 뉴스의 바벨탑 위에 세운 자폐적 착란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특등 머저리’라고 비난해도 화해 신호로 여길 정도로 문 정권의 집단 망상은 강고하다. 핵전략 국가로 질주하는 김정은의 야욕을 비핵화 의지로 읽는 문 대통령의 대안적 세상은 대한민국을 미증유의 안보 위기로 몰아넣는다.
파당적 언론들은 음모론을 더욱 부풀린다. 정보 혁명이 증폭시킨 가짜 뉴스의 바다엔 남을 해코지하는 인간성의 그늘이 자리한다. 음모론과 허위 정보를 바로잡지 않고선 좋은 나라와 성숙한 삶은 실현되지 않는다. 미국 사회는 ‘선동가 트럼프’의 반역 행위를 징벌하는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었다. 음모론과 폭민정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현대 한국 정치의 사활적 과제다. 맹목적 정치 팬덤과 결탁한 음모론은 열린 사회의 적(敵)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중앙시평] 탈진실의 시대, 내면적 전체주의의 덫
[중앙일보] 입력 2021.01.28 00:31 | 종합 31면 지면보기
PDF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SNS 공유 및 댓글SNS 클릭 수40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SNS 공유 더보기
핀터레스트URL 복사SNS 공유 더보기 닫기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한 사회에서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고립감에 빠진 개인들,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개인들은 어디로 가는가. 사유하기를 포기한 고립된 대중은 전체주의적 운동이 뿌리내리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한나 아렌트의 분석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많은 이들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선거 한 달 후,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보통 때보다 6배가 더 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현대 미국이나 한국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전체주의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태동하게 되는 전제조건들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실을 외면하는 ‘탈진실’
사유 부재의 고립된 이들
내면적 전체주의의 자양분
사유하며 진실·정의 모색해야
인터넷 시대에 가짜 뉴스와 허위정보는 트럼프와 같은 정치가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의 언론과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진실과 사실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소위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사는 것이다. 진실과 사실이 아니라, 오직 자기 편의 주장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로 자리 잡게 될 때, 한 사회는 표면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전체주의의 덫이 곳곳에 드리우게 된다.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적 운동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감과 분노에 빠진 사람들의 존재다. 사유부재의 고립감은 이 세계에 자신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며, 그 고립된 삶을 구원해줄 것 같은 정치적· 종교적 서사들에 빠지게 만든다. 트럼프의 큐아논(QAnon), 태극기 부대, 또는 전광훈식의 종교집단은 고립된 사람들을 끄집어 내어서 공동체적 소속감을 경험하게 해 준다. 고립되었던 개인들은 정치적·종교적 선동에 따라서 집단행동을 하면서 비로소 소속감을 느끼며, 존재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진실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탈진실’과 의도적 거짓 정보의 혼돈 세계에 발을 내디딤으로써, 내면적 전체주의적 사회로 이양하게 된다.
큐아논과 같은 트럼프의 열광적 지지그룹이나, 태극기 부대, 또는 전광훈식의 종교집단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각종 음모론과 가짜 뉴스, 그리고 거짓 정보를 퍼나르며 자신들과 생각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악마화에 의해서 집결된다는 것이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열광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탈진실과 의도적 거짓에 의하여 선동되는 내면적 전체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선거가 도둑맞았다’는 가짜뉴스와 거짓정보에 의하여 선동된 이들 폭도는 현실 세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개별인이 아닌 집단으로만 존재하면서,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오직 선동될 뿐이다.
전체주의적 사유방식의 강한 특징은 강력한 혐오와 차별의 서사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의 서사는 ‘우리(선)-그들(악)’ 이라는 대립적 이원론의 파괴성에 의해 작동된다. ‘우리’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모두 파괴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면서, 혐오와 독설의 서사를 서슴지 않고 표현한다. 이러한 내면적 전체주의 세계 속에 발을 디딘 이들은, 선동가들에 의하여 재현된 현실만을 맹신하게 되며, 결국 전체주의의 감옥에 자신을 집어넣는 악순환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진실과 사실이 아니라 ‘탈진실’과 거짓 정보, 그리고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이것들을 카톡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내면적인 전체주의 덫에 빠진 이들의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정치 체제로서의 전체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외적 선동들에 의하여 조종됨으로써 비로소 소속감을 느끼는 고립된 이들이 스스로 인간됨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을 선동하는 이들 입장에선 사유를 포기한 고립된 개인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잉여 존재이며, 단지 정치적·종교적 도구일 뿐이다. 정치, 종교, 미디어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이러한 내면적 전체주의는 언제나 등장하게 된다.
악을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고 규정한 아렌트의 통찰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유의 부재를 통해서 작동되는 의식 속에서의 전체주의는, 혐오와 음모의 정치학을 확산시키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행위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넘어서서 한 개인을 사유 주체(thinking subject)로, 판단 주체(judging subject)로, 그리고 행동 주체(acting subject)로 자리 잡게 한다. 정치적 또는 종교적 선동에 의해서 집단화되어 움직이게 되는 전체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민주사회에 있으면서도 전체주의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이 ‘탈진실의 시대’에 우리가 더욱 치열하게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모색하는 것이다. 아렌트가 2021년에 살아있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나는 다음과 같이 말 할 것이라고 본다. “사유하라, 사유하라, 사유하라.”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탈진실의 시대, 내면적 전체주의의 덫
{파리의 노트르담}
21
이런 고약한 것들이 있나! 아직 어린 것들이 어른에게 무슨 짓들이냐?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네놈들을 몽둥이로 훔씬 두들겨 팬 다음에 그 몽둥이로 불쏘시개 삼아 모조리 태워 죽아고도 남았다, 이놈들아!
어이쿠, 무서워 죽겠네! 난데없이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수리부엉이는 대체 누구신가?
45
그렇다해도 이해타산 역시 인간사를 헤쳐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62
배우 네 명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베누스 여신이 파리시의 선형문장이 아루새겨진 복장을 갖추고 나타나 이 세상 최고의 미녀에게 주어지는 돌고래를 자신이 차지하겟다고 말했다.
62~63
추기경이 들어선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마법의 실 한 가닥에 의해 대리석 무대에서 귀빈석 쪽으로, 귀빈석의 남쪽에서 서쪽으로 끌어당겨진 것만 같았다. 어떤 방법으로도 관객들에게 걸린 그러한 마법을 풀 수는 없었다. 수백 개의 눈동자는 일시에 귀빈석에 못 박혀버렸으며 차례로 등장하는 높으신 분들과 그들의 저주스러운 이름들이며 얼굴 생김새며 옷차람 따위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한탄스로운 일이다.
136
그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발을 땅에서 떼지않기 위해 낡아빠진 상의에 뚫린 구멍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혼란스런 정신을 도무지 가다듬을 수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재빠른 움직임에 가려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던 어떤 형체, 그 주홍빛 또는 하늘빛 날개의 윙윙거리고 파거리는 앙증맞은 소돌이를 얼마나 호기심 가득한 사랑스러운 눈망울로 바라보았는지 여러분은 가만히 회상해볼 수 있으리라. 그 날 떨림을 통해 아른아른 나타나는 허공의 존재는 너무도 환상적이라 도저히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없는 존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다마침내 걸대 끝에 내려앉은잠자리의 기다란 망사의 날개, 기다란 에나멜의 옷, 그리고 그 수정 같은 두 눈망울을죽이며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당신은얼마나 눌라움을 느꼈으며다시금 형체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그 재환상더불어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얼마나 두려움을 느꼈던가!
151 노트르담
세월은 모든 것을 갉아먹지만, 인간은 더욱 심하게 갉아먹는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가. 즉, 세월은 눈이 멀고, 인간은 어리석다, 라고.
152
대성당 혹은 주교당 성당, cathe/drale 라는 말은 주교가 착석하는 옥좌 cathe/dre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154
파리의 노트르담
한마디로 거대한 돌의 교향악이라고나 할까.
흡사 신의 권능에 맞먹는 강력하고 풍부한 인간의 창조력이 신의 창조의 이중적 특성인 다양성과 영원성의 비법을 훔쳐내어 이 성당을 만든 것처럼 생각된다.
155
계단을 사라지게 한 건 세월의 힘이다. 세월이 불가항력적이면서 완만한 속도로 시테섬의 지반을 서서히 높인 끝에 결국은 지금과 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건물의 장엄함을 더헤주던 열한 개의 계단을 하나씩 삼키면서도, 세월의 힘은 그렇게 빼어나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 성당에 돌려주었다. 즉 늙어가는 건축물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남겨준 것 역시 세월의 힘일 테니까 말이다.
157
모든 성당건물이 그로하듯이 노트르담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158
고딕 양식은 12세기 중잔 로마네스크 양식에 뒤이어 프랑스에서 나타났다. 프랑스식이란 뜻으로, 야만적이라는 뜻이다. 다르게는 첨두형양식이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고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빅토르 위고가 있다
164
유행이 혁명보다 더욱 커다란 피해를 끼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