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복하다 (외 1편)
정 영 애
점심시간, 순댓국밥집에 갔다
손님으로 꽉 찬 식당
눈으로 빈자리를 찾고 있는데
건장하게 생긴 스님 한 분이
이를 쑤시며 일어섰다
뜨끈한 순댓국을 맛나게 드셨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반들반들한 이마에는
땀방울이 기름처럼 흘렀다
순간
세상이 잘못 돌아가니
중도 고기를 먹는구나
나는 절에도 다니지 않으면서 속으로 개탄했다
스님이 앉았던 탁자에는 소주병도 있었다
차라리 승복이라도 벗고 먹던지…
알지도 못하는 스님을 향해 염불처럼 궁시렁거렸다
빈 그릇을 치우면서 주인여자가 말했다.
중도 아니면서 왜 저리 승복을 입고 다니는지…
나는 순댓국만 후후 불었다
출가처럼
바다를 벗은 꽁치의 눈에 눈물이 반짝인다
물결 대신 바람을 갈아입고
겹겹의 출렁임도 푸르게 삭발했다
오욕의 내장까지 모두 바다에 던지고
꼿꼿한 비움의 정진을 향해
파도소리 귀 막으며 직립으로 합장했다
한 줄씩 바다를 지워가며
허공에 흔들리는 이름
수평선에 걸어놓고
드디어 운명을 껴안았다
칼날 같은 해풍을 맨몸으로 맞받아치며
얼었다 녹았다를 수십 번
끝내 꽁치를 버리고
꾸덕꾸덕 과메기로 해탈한 겨울
장엄하게 구룡포를 먹여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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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 : 2003년 제27회 강원여성백일장 대상, 2006년 제15회 신사임당 문예대전 장원,
2008년 제14회 지용신인문학상 「4월'」로 당선. 설악문우회 갈뫼 동인.
ㅡ「시인정신」201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