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가 와서 논둑이며 밭의 콩대를 뽑아주니
나는 떨어진 콩을 주우러
다빈을 데리고 논둑으로 나섰다.
허리아픈데 뭘 줍냐 하겠지만
내가 안하면 엄마가 하실 게 뻔해
다빈을 끌고 나갔던 것이다.
햇빛은 따사롭고 지나가는 차도 없으니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콩을 주웠다.
그러다 이미 고인이 된 친구와 즐겨듣던 노래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먼 하늘을 보며
안부를 물었다.
현주야..잘 있나?
진짜 뭐라 표현도 안되게
보고싶다..
근데 너만 안아프면 못봐도 괜찮아.
살아있는게 더 고통이었을건데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다시 콩을 줍는데
이 순간이 옛날에 아빠와 내가
밭일하던 그때와 똑같다는 걸 알았다.
벌써 30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빠의 안부인사도 선명히 기억한다.
아빠의 절친 1호였던 조사장님은
초상집 조문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매일 아침 아빠 가게로 오셔서는
커피를 나눠마시며 우스갯소리로 하루를 열어주는 친구였으니
하루아침에 아빠는 재미난 단짝,
속정 깊은 친구를 잃어버린 것이다.
조사장님의 묘지쪽을 향해 바라보시며
여보게..규복이.
거긴 어때? 편안한가?
어서 내내 편히 쉬시게..
그러고는 다시 삽질을 하셨다.
나는 그때 아빠를 쓸쓸한 표정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막상 내가 지금 아빠의 나이가 되어
내 절친 1호를 잃고나니
우리아빠는 대체
내가 못보는 곳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며,
가고없는 빈 자리의 허전함을
어떻게 달래셨을까
그옛날 아빠가 가엾어서 눈물이 났다.
지금은 벌써 만나셔서는
아침마다 어디 다방 커피가 맛있네 어쩌네
두 잔 시켜라 하며
옛얘기들 나누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