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냉장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며 아내가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전원에는 문제가 없어서 냉동실은 잘 작동하는데 냉장실은 밖이나 안이나 온도차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술자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음식물을 다 꺼내어 놓고 전원을 분리시킨 후에 선풍기를 한참이나 틀어 놓았습니다. 청소하려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아침에 보니 냉장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소개된 조치 요령을 따라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지난 밤까지만 해도 실재하던 문제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신선함이 사라졌던 냉장고가 다시 냉기를 발산했습니다. 전원이 꼽혀있어도 자체 결함으로 제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간단한 조치를 통해서 그 기능을 회복한 것입니다. 신기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영원히 끊기지 않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우리 편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우리가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는 것들을 신선하게 보호하기보다는 알게모르게 부패하게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원의 불이 들어와 있으므로 괜찮을 것이라고 그대로 방치했다면, 정확하게 진단하는 대신에 시간이 흐르면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면, 그 안에 있는 음식들은 다 버려야 했을 것입니다. 문제를 지나치지 않고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은 결과 더 큰 문제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전원을 끄고 얼어있는 부분을 다 녹여내었다는, 그 해결 방법이 마음이 남습니다. 아직은 뭔가 작동하는 듯 보였지만 그것조차도 끝내는 결정을 했을 때, 리셋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누가 봐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에도 아직은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힘을 사용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 힘이 끝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를 지나가게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내 육체의 힘을 끝내는 도구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내가 아직 의지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힘을 새롭게 공급 받고, 그분의 손에서 고침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겸손히 나를 낮추는 일입니다.
이제 제기능을 하고 있는 냉장실 문을 열어보는 기분이 사뭇 다릅니다. 덕분에 청소까지 한 후라 한결 정갈해졌고, 그 안에 담긴 음식 용기들은 밝게 빛나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