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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전체 성경”(tota scriptura)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은성아, 내가 고등학교 시작할 때에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기드온협회에서 나눠준 영한대조의 신약성경을 갖게 되자 처음 부분부터 읽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는 **를 낳고, **는 **를 낳고”가 반복되니 어렵기도 하고 재미도 없어서 덮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처음 성경책을 대했던 나는 왜 성경책이 그렇게 재미없을까 궁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에이 꼭 처음부터 읽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무 데나 펴서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펼친 곳이 누가복음 15장이었는데 그때 나는 깜짝 놀랐다. 성경책이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답고 멋진 줄은 모르고 마태복음의 족보만 읽으려고 했다니…… 나는 금방 누가복음을 다 읽어버렸고, 다시 마태복음을 읽으니 그때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고, 성경 전체를 읽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얼마 후에 신약성경을 다 읽었다. 그리고 형님께 부탁했더니 성경전서 한 권을 사서 보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더니 그해가 지나가기 전에 구약성경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은성아,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펼치고 시작하였다가 금방 그만두는 일이 많은 것 같지 않니? 그런데 며칠 전에 이야기를 나눈 여자분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부엌에도, 안방에도, 거실에도 성경책을 놔두고 틈만 나면 읽었다고 하더라. 감사하게도 우리 한국 신자들은 성경을 읽고 싶고, 성경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성경을 배워보려고 열심히 여기저기 찾아다니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떤 분은 이단에 빠지기도 하는 것을 본다. 이런 분들이 교회에 가서 목사님께 성경을 잘 배울 것을 기대하는데 의외로 소수의 교회와 목사님들만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고, 대부분의 교회와 목사님들은 실망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오직 성경’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인데, 그것은 자연스럽게 ‘성경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추구하게 만든다.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빛 아래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일부만 아니라 전체를 읽어야 하고, 일부의 말씀만 아니라 전체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런 측면에서 몇 가지를 나눠 보려고 한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3문)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앙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행위에 있어서도 우리 모두에게 유일한 표준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의 일을 보여주며 인간에게 구원의 방법을 밝히 말해 주고 있다. 이런 구원의 일을 하신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지으신 세계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가르쳐주고 믿게 할 뿐만 아니라 그가 지으신 자연계와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준다. 특히 성경은 지구를 중심으로, 그리고 인간을 중심으로 기록된 책이기에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무엇을 믿으라고 하시는지’와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지’에 주목하면서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목사님들 중에는 믿음을 강조하는 설교만 계속하시는 분들이 있고, 세상의 삶만 강조하는 설교만 계속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성경의 이곳저곳을 고루 살피며 두 측면을 모두 가르치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요,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이라는 1-2문과 함께, 이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과 삶을 모두 강조하는 설교와 개인적인 성경공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나서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대해 새롭게 배운 것과,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약속하시는 것을 근거로 하여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2. 창조, 타락, 구속의 관점
성경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알려 주고 있다. 성경은 세상 역사의 성격을 명시적으로 알려 주고 있고 그 위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피조물이요, 전능자 앞에서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요, 통치자 앞에서 순종해야 하는 종인 것을 우리는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좋았더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 받은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죄와 그 결과인 비참함이 지배하는 처지에 떨어진 것도 가르친다. 우리는 성경을 배울 때나 개인적으로 읽을 때에 우리가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죄인이요, 구원이 필요한 존재란 것을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배운 사람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절박한 심정으로 구주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놀라운 은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책이니 구약성경은 오실 그리스도를, 신약성경은 오신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성경을 통하여 창조와 타락에 대해 배우고 믿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듣고 기쁨과 감사와 찬송을 발견한다. 그분은 약속대로 오신 분이요, 구속을 다 이루신 구주이시니 약속대로 다시 오실 것이 확실하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7)
은성아, 이 세상과 인간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진화의 결과도 아니다. 인간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존재니 연약한 피조물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영광스러운 존재다. 그리고 구속받은 신자는 재창조되었다고 말한다.(고후 5:17) 그러므로 새로운 삶, 즉 구속받은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성경은 이 새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에는 믿기 이전의 옛사람이 아니라 믿은 후의 새사람으로 사는 것에 대하여 잘 배울 필요가 있다.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2문의 세 가지 전체를 기억하며
2문: 이러한 위로(1문의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창조, 타락, 구속의 관점과 비슷하지만 창조를 말하지 않고 타락, 구속, 감사로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을 읽을 때 이 세 가지를 발견하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신자들 중에는 늘 죄와 비참함만 생각하고, 기도할 때도 울먹이고 찬송할 때도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죄에 대하여 아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죄에서 구원받은 것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의 아드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야 했지만, 그렇게 크신 하나님의 피흘려 구속하신 은혜가 용서하지 못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성경은 이 구원을 알리는 책이요(딤후 3:15), 그래서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복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나아가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이 부분에서 “선행”(86문, 91문), “진정한 회개”(88문), “새사람으로 사는 것”(90문)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과 주기도문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얼마나 균형이 있고 조화가 있는 가르침이니? 성경에는 이렇게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바르게 배운 사람들의 삶에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만 강조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기쁨을 잃고, 소극적이며 폐쇄적이 되고 전도의 능력을 상실한다. 구원의 기쁨만 강조하면 잘못된 우월성에 사로잡히고 배타적인 자세를 갖거나, 지나치면 방종주의자가 되기 쉽다. 오늘날은 죄를 무시하고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성경은 인간의 기본적인 처지가 죄와 비참함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버려두시지 않고 자기의 아들을 보내어 구원하셨다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구원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아버지의 아들다운 삶을 살아간다고 가르쳐 준다. 성경을 읽고 배울 때에 이러한 사실들이 더욱 확실해지고, 그래서 죄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지고, 구원에 대한 감사와 헌신이 더 절실해진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나서 자신을 돌아보고 죄에 대해, 구원에 대해 그리고 감사에 대해 무엇을 배웠고, 믿었고, 순종했는지를 점검해 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어야 하리라.
4. 성경의 모든 말씀을 무겁게 가르치고 읽고 받아야
모든 목사님들은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고 가르친다. 그런데 어떤 분은 특정한 성경만 가르치시니 교인들은 그 교회에 수십 년을 다녔어도 대부분의 성경을 배운 적이 없다. 어떤 분이 목사님께 요한복음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는 바울서신을 전공해서 요한복음은 안 된다고 하기에, 그러면 로마서를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전공해서 안 된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어떤 분은 몇 년 동안 구약성경만 가르치니 교인들이 신약의 풍성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서 신앙 생활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 어떤 분은 주제 설교만 하니 교인들이 성경을 가르쳐 주기를 바라지만 자기는 그만한 준비가 안 되었다고 거부한다.
나는 팀 켈러 목사님의 『여리고 가는 길』을 읽으면서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7-18)와 야고보서 2:14-17, 그리고 디모데전서 6:17-19 같은 말씀을 무겁게 다루시는 것을 보고 적지않게 놀랐다. 많은 목사님들은 교회의 재정은 목회자의 사례비와 교회당 건물 유지 및 살림에 사용할 것을 말하고, 조금 여유가 있는 교회는 구제와 전도 사역에도 사용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팀 켈러 목사님처럼 자비사역을 근본적으로 성경에 토대를 두어 이야기하지도 않고, 그만큼 많은 부분을 떼어놓지도 않는다. 생각해 보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분들은 성경 전부를 무겁게 전하지 않고 자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말씀을 강조하고, 반복하는 일이 흔한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있는 경우엔 좋지만, 자기의 개인적인 의도가 있거나 전체적인 준비가 부족해서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왜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이야기는 자주 하면서도,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보다도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지지하는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리고 교회 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구약성경의 사례를 살피며 교훈을 받으려고 하면서도 신약 교회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했고, 사도들은 어떻게 했는지, 나아가 종교개혁 당시의 교회와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는지를 살피는 일은 하지 않는지 궁금할 때도 많다. 구약성경을 살피면 추론을 해야 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훨씬 직접적인 교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직 성경만 아니라 전체 성경을 잘 가르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는 것이 큰 복이요, 우리 편에서는 그러한 분들을 만나기를 힘써 찾아야 할 것이다.
은성아, 우리도 성경을 읽는다고 하지만 어떤 부분은 정신 차리고 기쁨으로 읽지만 어떤 부분은 졸면서, 너무나 가볍게 대하면서 읽는 일들이 많지 않니? 성경은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늘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읽도록 해야 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읽고, 내가 잘 이해하는 부분만 반복해서 읽는 자세를 버리고, 생명과 사망의 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부분을 무겁게 여기고, 전체 안에서 부분을 보고, 부분을 자세히 보면서 전체를 바라보아야 하겠다.
은성아,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성경을 보느냐가 개신교 안의 여러 교단들을 구별하고 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며 종교간 대화의 필요를 말하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많은 교단들이 WCC를 이루고 있는가 하면, 성경은 언제나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고 변경시킬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교단과 신자들이 있다. 동일한 성경을 읽고 가르치면서 그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 성경을 열심히 읽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어떤 시각으로 성경을 대하면서 읽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 몇 가지 이야기한 것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진리의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성경을 사랑하고 깨닫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