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쓴 책머리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님의 ‘당신이 옳다’ 책 머리말을 옮긴다.
이 책은 나의 서재에 귀중하게 보관되었다.
읽을수록 공감이 가는 책이고 실천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 이영수 님은 저자와 일년 365일 함께 있다. 무엇보다 연인이고 같은 일을 하는 도반이었으며 서로에게 스승이었고 특별하게는 전우였다. 심리적 참전의 현장에서 그녀는 치유자로 그는 심리 기획자로 서로를 보호하는 전우로 함께 했다.
남편이 쓴 책 머리글이 이채롭다.(필자 註)
내 아내의 모든 것
내 아내는 정혜신이다. 그녀와 나는 일년 363일(이틀 뺀 거 맞다) 24시간 함께 있다. 무엇보다 연인이고 같은 일을 하는 도반이었으며 서로에게 스승이었고 특별하게는 전우였다. 심리적 참전의 현장에서 그녀는 치유자로 나는 심리 기획자로 서로를 보호하는 전우로 함께 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리적 참전의 현장은 참혹했다. 국가 폭력이든 가정사든 불행한 사고든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집단적 고통처럼 보이는 일도 한 개인에 이르면 각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개별적 고통이 된다.
지난 십수 년, 정혜신은 고통의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온몸으로 그것을 감당하며 전진해야 하는 최전방 치유자였다. 그녀가 그룹 치유의 형태로 진행한(주로 5~6명 때론 수십 명 단위) 심리적 참전의 현장을 나는 수백 회 참관했다. 단지 참관하는 것만으로 참전한 것뿐인데 그때마다 고통으로 항문이 움찔움찔했다.
신기하게도 그런 치유의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목숨을 건졌고 어떤 이는 몸을 추슬렀으며 또 어떤 이는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우리와 함께 트라우마 현장에서, 고통의 당사자가 치유자 정혜신을 만나고 나온 광경을 목격한 자원봉사자들은 내게 묻곤 했다.
“저 (상담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저분 얼굴빛이 달라졌어요.”
실제로 얼굴빛이 달라진다. 밤새 끔찍한 생각을 하거나 심하게 싸우고 아침에 거울을 보니 얼굴이 악마처럼 변해 있었다는 고백을 많이 들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러니 얼굴빛이 바뀐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누구라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비유적으로, 어떤 이는 들것에 실려 상담실에 들어갔고 어떤 이는 성난 코뿔소처럼 펄펄 뛰며 들어갔다. 그런 이가 비포애프터처럼 으스러진 뼈를 추슬러 걸어 나왔고 사슴 같은 눈으로 순하게 나왔다.
‘어디서 약을 팔아’ 코웃음칠 수도 있고 ‘간증록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의아할 수도 있다. 다 맞다. 약 파는 것도 맞고 간증하는 것도 맞다. 다만 부작용 없는 약이고 사람을 살리는 비종교적 간증이다. 그룹 치유의 현장을 직접 참관한 이도, 얼굴빛을 통해 치유적 공기를 짐작한 이도, 심지어 같은 일을 하는 나조차도 눈앞에서 목격하고 전해 들은 간증록 같은 일들의 원리와 맥락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녀와 고통받는 사람 사이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책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치유자 정혜신의 현장 경험과 내공을 집대성해 놓은, 쉽고 전문적인 책이다. 읽는 책이 아니라 행하는 책이다. 심폐소생술(CPR)은 내용보다 내용을 정확하게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한다. 이 책은 심리적 CPR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그냥 책이라기보다 행동 지침서다.
이해하고 알아야 행동할 수 있으니 읽는다고 표현하지만 궁극은 ‘공감’ 행동 지침서다. 세상에 무수한 사랑이 있어도 누구의 사랑이냐에 따라 전혀 다르듯 그 흔하디 흔한 공감이 무슨 새로운 원리냐고 따져 묻는다면 ‘정혜신의 공감’이라고 토를 달아야겠다.
이해가 쉽도록 ‘적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정혜신의 공감’을 얹었다. 이론 정립과 검증에 3년쯤 걸렸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정신과 의사라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자격증이 있어야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게 치유자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정신의학 쪽이나 관련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 진단 등과 관련한 부분 등은 도발적이다 못해 전투적이다.
물론 나는 그녀의 의견을 지지한다. 내 편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그녀의 그런 내공과 태도로 고통받는 사람의 낯빛이 바뀌는 걸 수도 없이 목격했고 그와 관련해 논문을 내도 될 만큼 토론도 했기 때문이다. 심리치유와 관련해 자신을 구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다면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요긴한 책이다.
일말의 과장도 없이 모든 심리치유의 토대가 되는 내용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정혜신의 공감’이 심리치유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심리치유의 베이스 캠프는 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검증도 했다.
상담가, 목사, 학교 선생님, 신부, 수녀, 직장인 멘토 등 심리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이들이 보면 좋겠다. 상처 입은 가까운 사람을 연민하고 보호해 주려는 사람이 보면 좋겠다. 일반인들에겐, 엄마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책 『삐뽀삐뽀 119소아과』처럼 상비 치유 지침서쯤을 예상했다. 몇 번 읽었다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 읽고 되새김질하면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 같은 심리 전문가도 그러고 있고 그때마다 도움을 받는다.
상담 전문가든 관계의 고단함에 지친 사람이든 누구라도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행동 지침이 가득하다. 밑줄 그을 필요도 없다. 몇 번 읽으면 그 다음부턴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잠언서』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현재 내 상황에 맞는 실제 처방이 나온다. 그렇게 설계됐고 그렇게 썼다.
내게만 선언한 거지만 그녀는 7년 전에 절필했다. 그 이후 제법 많이 쓰던 글들을 쓰지 않았다.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게 훨씬 가치 있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였다. 나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열렬하게 지지했다.
치유의 영역에서 그녀는 내 스승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글쓰기 영역에선 내가 그녀의 스승이다. 7년 만에 그녀가 쓴 글을 1차 독자로, 한때의 글쓰기 스승으로 받아본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에 비해 그녀의 글은 훨씬 원시적이고 직접적이었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보다 간절해졌다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문장을 추구하지 않았고 같은 내용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듯했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육성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 했다.
서로의 글에 대해 늘 빨간펜 선생님 입장이었는데 나는 이번에 그 역할을 축소했다. 최소한의 의견만 보탰다. 이건 글을 위한 글이 아니고 ‘정혜신의 공감’을 전달하기 위한 치유자 정혜신의 녹취록이구나.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몇 번은 전율했고 몇 대목에선 목울대가 후끈 육성이 즐비한 사례가 많리 등장한다. 처음에 개념설명만 읽으면 이해 못할 수도 있다. 쉬운 말이지만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이어서다. 그 때는 사례를 보고 읽으면 된다. 그러면 몸에 스민다.
이 책을 읽고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거다. 충조평판을 빼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의문만 풀 수 있어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내가 읽을 때마다, 의견을 보탤 때마다 울컥했던 대목들은 항상 같았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 하는 망치 같은 각성, 상대의 힘든 시간을 알게 되는 부분이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다툼 때문에 선생님에게 혼나고 집에 와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는 장면.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아아. 아이의 그 말. 엄마는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 편이어야지. 내게 물어봐야지.
어린이 집에서 왕따 경험을 한 여섯 살 아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엄마의 세심하고 과감한 지지를 받은 후 홀가분한 표정으로 했다는 말.
“엄마, 고마워. 나는 이제 자유야.”
그게 이 책의 전부다. ‘정혜신의 공감’의 핵심이다.
치유자 정혜신의 모든 치유적 내공과 정성이 집대성된 행동 지침서가 이 책이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말하면 내 아내 정혜신의 모든 것이다. 그 모든 것으로 누군가를 구하고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관계를 편안하게 할 것임을 믿고 기대한다.
2018년 가을 초입에,
이것으로 누군가 구해질 것이라 설레며
이명수
(202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