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진주라면 / 김영욱
엄마의 방에는 장롱이 있었다. 그 장롱 속엔 옥색치마 같은 열두 폭 바다가 있었다. 비파열매 탐스런 옛집, 포구로 뚫린 창에 노을이 찾아들면, 나는 엄마 없는 엄마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석양빛에 반사된 장롱의 매끈한 옻칠은 윤슬을 되튕기는 저녁바다 같았다. 조막손으로 더듬어보는 자개의 오색빛깔 조개껍데기들은 수면 위에 떠오른 무지개 같았다.
그림책이 귀했던 시절, 출판사를 하는 친척이 주고 간 안데르센 동화책에서 만났던 인어공주는 어린 나를 기쁨보다는 슬픔에 민감하게 만들어주었다. 동생들과 숨바꼭질을 하지 않을 때에도 나는 곧잘 빈방으로 숨어들어 자개장롱의 문을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는 그곳은 깊고 깊은 바다 속이었다. 내가 그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알록달록한 산호초 사이로 헤엄치던 열대어들이 사라지고 포말이 하얗게 부서지던 모래밭도 사라져버린 그곳은 더없이 고요하고 아늑했다.
엄마는 걸음마를 겨우 뗀 내게 헤엄치는 걸 가르쳐줬다. 수국처럼 탐스런 수영 모자를 뒤집어쓰고 물장구를 치던 나는 어린 마음에도 여름날의 태양이 수면 위에 던져놓은 햇볕 그물을 좋아했다. 가끔은 물속에서 두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그물에 걸려든 인어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뜨겁게 내려쬐는 자외선에 등짝이 그슬려 허물이 생겨도 인어인 나는 당연하게 여겼다. 오히려 벗겨내도 이내 다시 생겨나는 것이 내 마음에 쏙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몇 번, 아니 몇 십 번을 읽어도 어째서 인어공주는 마녀의 경고와 언니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어 뭍의 왕자와 결혼하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롱 속에 겹겹이 쌓여 있는 요와 이불들은 짙푸른 파도였다. 나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자맥질하는 상상을 했다.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인어들이 모여 사는 성이 나오고 나를 발견한 인어 언니들이 내 목에도 근사한 진주목걸이를 걸어줄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는 금발머리 출렁이는 아름다운 그녀들 속에서 누가 인어공주인지를 단박에 알아낼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리석인 공주를 만났다는 기쁨에 오래도록 취해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진짜 궁금했던 건 그림책 속에도 등장하지 않는, 인어들이 꼭꼭 숨겨두었을 인어 엄마의 슬픈 사정이었다.
내 엄마는 눈물이 많았다. 소리 내어 울지 못하니까 자주 흐느꼈다.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여름밤에 들려오는 흐느낌은 서러움을 안으로 삭이는 엄마의 신음이었다. 어쩌다 초저녁에 집으로 들어와 네 아이들과 밥상을 마주한 아빠는 느닷없이 비위가 상했는지 밥상을 뒤엎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동생들은 맨발로 뛰쳐나갔지만, 맏딸인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씩씩거렸다. 아빠의 막말이 엄마에게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보고 있는 내게로 향할 즈음에서야 엄마는 방바닥에 쏟아진 반찬과 국건더기를 걸레로 훔쳐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조막손을 꼭 쥔 채로 버티고 있었다. 내 발등 위로 축축한 걸레가 지나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아빠 스스로 집밖으로 뛰쳐나가주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른 집구석에는 한여름 밤에도 살얼음 같은 냉기가 감돌았다. 그런 밤이면 달빛도 야속하게 밝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갈데없이 옆방 방문을 살짝 열고 방안을 살폈다. 엄마는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실이 꿰인 바늘이 매어 있고 방바닥엔 또 그만한 크기의 이불 한 채가 펼쳐져 있었다. 다른 때라면 동생들과 함께 데굴데굴 굴렀을 목화솜 이불이었다. 엄마는 멀쩡한 이불에서 실밥을 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너무나도 처연해 도무지 다가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차곡차곡 펼쳐놓은 솜이불 파도 위로 별빛이 진주를 수놓는 밤, 낮 동안의 숨바꼭질에 지친 조무래기들이 곤한 잠에 든 밤, 달빛도 문고리를 더듬거리면 밤새도록 내 마음까지 달그닥거렸다. 엄마가 저 두꺼운 이불 한 채를 두 채로 가르고 나면 우리의 작별이 골목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난데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좁다란 복도에 서서 울고 있는 딸애의 기척을 모를 리 없는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눈시울이 빨갰다.
세월이 흘러 스물넷이 된 나는 공항에서 엄마와 작별하고 있었다. 엄마의 눈시울이 다시 새빨개졌지만, 나는 혀를 꽉 깨물었다.‘엄마의 물항라 저고리가 젖어들어 심해까지 흐느끼면 내가 돌아올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무뚝뚝한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라고는,‘엄마, 괜찮지? 나 없어도 괜찮겠지?’의 반복이었다. 공부 핑계를 댔지만, 정작은 지긋지긋한 집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려 했던 맏딸이 아니었던가? 그런 주제에 엄마의 안부를 미리부터 챙기는 척한들, 엄마는 내 비겁을 눈치 채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들킨다 하더라도 나는 나대로 그럴 듯한 명분이 필요했다. 다행히 내가 한해살이를 할 곳은 외갓집, 정확히 말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샌프란시스코의 외삼촌 집이었다. 그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한 할머니는 당신의 뼛가루를 바다에 뿌려달라고 부탁했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든 외삼촌은 외할머니를 태평양에 묻었다. 그 후, 이 세상 어디에도 엄마 무덤 하나 없다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던 엄마는 당신의 엄마가 돌아가신 바로 그 방을 쓰게 될 내게 하염없이‘엄마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쉰 듯한 목소리에서, 그것이 내 외할머니를 향한 질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엄마의 눈가에서 눈물이 고여 있을 때마다 나는 철가야금소리를 환청으로 듣곤 했다. 혼자 듣는 그 소리는 축축하고 싸늘했다. 장롱 문을 열고 엄마의 바다 속에 발을 담글 때처럼 오싹할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엔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오래된 축음기가 있었다. 하지만 먼 뱃고동소리에 산호초들의 춤사위가 일렁이면 비취나비 덩달아 날아올라 추임새를 나풀거리는 따뜻한 여름이 되고, 혀를 잃어버린 인어가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노래가 포말을 터뜨리며 흥얼거렸다.
열 두 살쯤이었던가, 처음으로 잠수의 재미를 맛본 나는 불편한 안방 문턱을 넘어야만 자맥질을 즐길 수 있는 엄마의 바다 대신 동네 수영장 물밑으로 숨기 시작했다. 수틀리는 즉시 상대를 막론하고 악담을 퍼부어대는 아빠와 한 지붕 밑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사는 일에 호흡곤란을 느끼기 시작한 사춘기 소녀에겐 벤토린 대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법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즈음 이사 간 집 근처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었고 나는 물속의 방 한 칸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내 숨쉬기의 곤란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남편의 무례함을 견디다 못해 협심증에 걸려버린 엄마의 불안에는 비할 바도 못 되었지만.......
물속은 양수처럼 따뜻했다. 그곳에서라면 내가 첫울음을 터뜨렸던 엄마의 자궁 속에서처럼 실컷 울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울다가 시뻘게진 눈시울은 염소표백제 탓이라고 하면 될 터였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차분히 인어공주에게 엄마가 부재한 이유를 따져볼 참이었다. 비록 현실에서는 문짝 달아난 난파선 같은 신세일지라도, 또래의 여학생들처럼 환한 꿈을 꾸려고 해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개펄 같은 악몽만이 되풀이될 지라도, 세례자 요한을 씻긴 성수처럼 깨끗한 물속에서라면 나도 언젠가는 물로서 뭍의 상처를 씻어낼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도 갖게 되었다.
어릴 적 엄마를 기다리다 장롱 속에서 잠이 든 밤, 해조음 보다 짙은 가야금 소리가 꿈속으로 스며들었다. 처음엔 노란빛으로 번지던 음색이 점차 붉은 빛으로 익어가더니, 이내 태풍에 엉클어진 돛대를 잡아 뜯는 소리를 냈다. 이미 땀범벅이 된 채로 그 질퍽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물귀신에게 끌려가기 직전에 두 다리로 수영장 바닥을 박차고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를 때처럼 장롱 문짝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하필이면 그때 전축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엄마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넘어진 엄마의 손에는 엘피판 껍질이 그대로 들려 있고.
‘눈물이 진주라면 모아놓았다가 너희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지만, 흘린 눈물은 자국도 없어지고 남길 것이 없어 가야금에 옮겨놓았으니, 잘 들어보아라.’는 속표지의 이 구절이 내 눈에 들어온 건 해묵은 그 장롱을 처분하기 위해 엄마 없는 안방에 다시 들어간 날이었다.
내 인생의 가을 어느 날, 나비가시고기 떠도는 봄날 같은 장롱의 자개장식들을 찬찬히 만져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게는 바다 같던 엄마의 장롱이 처음으로 엄마의 꽃밭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인어공주>의 말미를 떠올렸다. 왕자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한 인어공주는 결국 포말이 되어버렸지만, 이 세상 아이들이 한 번 웃을 때마다 포말 하나가 물방울 하나로 변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을 안데르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즉시 헛웃음이 나왔다. 살아생전 사랑을 갈구했지만, 정작 외톨이였던 동화작가의 화려한 장례식이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말년에 혼자 지낸 빈 방에서, 또한 쓸쓸히 이국의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바로 그 방을 둘러보던 엄마는 얼마나 회한의 눈물을 흘렸을까? 남편도 딸도 마음 붙일 곳이 아님을 깨달은 엄마는 언젠가부터 외할머니의 유언을 곧이곧대로 따른 외삼촌을 원망했었다. 한줌 뼛가루가 된 당신 어머니의 유골항아리를 껴안고 빈 방에서 또르릉 또르릉 눈물을 흘리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는커녕 진주반지 하나 갖지 못했던 엄마가 남겨놓은 음반 <눈물이 진주라면>을 끌어안고 어릴 적 내게는 당신의 뱃속 같던 자개장롱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양수처럼 따뜻한 솜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인어공주를 상상하던 나날들과도 이제는 안녕이다. 삐걱거리는 나비경첩이 기어이 날갯짓이다. 오래된 기억에선 쇳가루가 떨어지는데, 외할머니가 좋아했다던 철가야금 산조가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가팔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