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5월이 되면 친구 명신이가 생각이 난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이었고, 명신이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64D355B0E254738)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나
명신이네는 우리 옆동네였는데
우리는 학교 오고 갈때
중량교 뻐스종점 까지 30분이상 걸어가서 뻐스를 탔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내려서 또 다른뻐스를 타던지 아니면 또 30분을 더 걸어서
효자동 학교까지 갔었다
명신이는 배화여중을 다녔는데
학교가는 길이 비슷해서
자주 만나게 되었던것 같다.
명신이는 엄마는 안 계시고 학교 선생님이 셨던 아버지와 오빠들과 같이 살았었다.
웹싸이트에서 카피해온 사진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4.19가 터졌다.
그날 거리는 데모 군중으로 넘쳐났고...
총알이 표옹 표옹 날라다니고...
뻐스도 제대로 다니지 않아...
나는 밤 10시가 넘어서 걸어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중량교 에서 밤거리를 혼자 걸어오는데... 무서웠었다.
마침 데모하고 돌아오는 옆집에 사는 고2 남학생을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 이틑날 부터 학교가 휴교였었다.
학교를 안가니까 신나기도 하고...
명신이네 가기도 하고... 또 명신이가 놀러 오기도 하고...
명신이와 매일 만나 수다를 떨며 놀았었다.
그리고 신문과 라디오 방송에서 419때 죽은 학생들 한테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발표가 났었다.
그때 철없던 우리는
"와우~ 큰돈이네"
했는데
명신이가
"나도 데모때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아버지 저 큰 돈 보상금으로 받게..."
했었다
얼마후 다시 학교가 시작되고...
나는 한동안 명신이를 못 만났었다
그런데 어느날 중량교 가는길 어디선가
명신이가 어떤 차에 치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명신이는 아버지한테
419때 죽은 학생들 부모보다
훨씬 많은 돈을 보상금으로 받게 해 드렸다
명신이 아버지가 그때 하염없이 우시며 슬퍼하셨다.
엄마가 늘 말이 씨가 된다고...
방정맞은 소리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셨다.
명신이의 무심히 한말이
씨가 됐을까?
명신이 아버지는 평생 얼마나
가슴아프셨을까?
그러고 보니 친척 매기(미국이름)가 생각난다
동갑이라 그런지 매기와 많이 친했는데
매기는 나한테
"얘 우리는 구굴이와 고골이 보다 더 친하지 않니?"
말하곤 했다
매기는 날씬하고 예쁘고 재주많고 공부잘하고
집이 부자고...
미술대에 다니던 때 국전에 입선도 했었다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돈이 많은 집이니까 자기 엄마 친구들도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부잣집 아주머니들인데
매기를 며느리 감으로 많이 탐 냈었다 한다
그때는 콧대가 높아서 매기 엄마도 매기도
코웃음만 친것 같다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는
별로 남자 만날 기회도 많지 않고
하다가 때를 놓쳐 노처녀가 되니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오래간만에 매기를 만났을때 보니
남편이 있는데도
"얘 나는 뉘 골랐어"
옆에 계시던 매기 친정어머니도
"내 친구 ㅇㅇ가 정말 너를 며느리 삼고 싶어 했는데..."
대 놓고 아쉬움을 말하셨다
다만 매기 친정아버지 께서
사위가 민망하셨는지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어" 핀잔을 주셔서
모녀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고 매기는
"얘 지금은 애들이 있어서 괜챦지만
애들이 장성해서 집 떠나
남편과 단둘이만 살게되면 어쩌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했다
그런데 몇년전 소식을 들으니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그때 매기 남편이 겨우 나이 60세였던것 같은데...
아이들은 대학졸업하고
직장갖고 집 떠나 있어서
남편과 단 둘이 살땐데...
매기는 남편이 세상 떠난후
그렇게 슬퍼하고
남편이 참 잘해줬는데...
하면서 많이 그리워한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된다
정말일까?
우연의 일치겠지...
그래도 좋은 말만 하고 살아야 겠다
첫댓글 평소에 저희 어머님께서도 ‘말이 씨가 된다’ 라는
말을 자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그래서일까 하는 경우도 경험했었고요.
항상 말을 가려서 해야겠구나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말을 해놓고는 후회하는 적이 많곤해요.ㅠ
그때 어린맘에
보상금 액수가 무척 큰것같이 느껴져
명신이가
"와우~ 나도 죽었으면 우리 아버지가 돈 받으셨을텐데..."
했던것 같아요
그말땜에 사고가 난건 아니겠지만
난 두고 두고 평생
명신이는 왜 그때 그런말을 했을까
마음이 안됐습니다
우연의 일치 겠지만
결과가 그러네요.말이 무섭다고
느끼며 삽니다
예전에 무릎팍도사에서 골프선수 신지애가 나와 하는말이 "국가상비군 되고나니,엄마가 너무 좋아서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라고 했다는데, 얼마안되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그때부터 말이 씨가 된다는걸 알아서, 말조심하게 되었다며 눈물을 쏟는걸 보곤...저도 조심하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