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그 눈부심
최유나
30대에 흰 머리가 나는 것은 사실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내가 결혼을 안 한 탓에 이 나이 되도록 철이 없어 그렇지, 우리 엄마는 내 나이였을 때 벌써 초등학생의 학부형이었다. 지금의 나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며느리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아니, 굳이 엄마의 예를 들 것도 없다. 무신경하게 틀어놓은 홈쇼핑 프로그램에서도 여자는 20대 중반부터 늙기 시작한다는 말이 수도꼭지의 물처럼 줄줄 흘러나온다. 쇼핑 호스트들의 호들갑스러운 말이 화장품을 팔기위한 상술이라는 걸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성과 달리 내 눈은 텔레비전 화면을 점점 주시하고 있다. 요즘 부쩍 도드라져 보이는 내 팔자주름을 저이가 알고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노화가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나 지난 것이로군. 앞으로는 미장원에서 “머리 위쪽에 새치가 많이 났네요.” 라는 말을 들어도 난감해하거나 당황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이에 걸맞은 일이니 말이다. 다만 ‘드문드문’이 아니라 ‘많이 난 건’ 이미 새치가 아닐 것이며, 피부 탄력을 좋게 한다는 텔레비전 안의 화장품을 나는 어느새 주문하고 있었다.
내 머리에서 흰 머리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스물여덟 살 때였다. 거울 너머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혹시나 싶어 뽑아 본 그것은 역시나 하얗고 투명한 빛이었다. 나는 중얼거리며 탄식했다.
‘부모님, 당신들의 무남독녀 외동딸에게도 드디어 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어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가사처럼, 머물러 있다고만 생각한 청춘이 서서히 내 곁을 떠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노래의 제목에 왜 ‘서른’이라고 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지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녹아 주르륵 흘러내리는 촛농처럼 나의 젊음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만 같은 다급함. 그래서 내 손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허연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것들을 전부 없애버리면, 내 젊음도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흰머리 찾기를 곧 그만 두고 말았다. 내가 열세 살의 어느 날 했던 다짐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열세 살,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담임선생은 30대 초반의 여자 선생이었다. 어느 아침의 자습시간, 아이들은 칠판에 적힌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었고, 선생은 교실 앞에 앉아 열심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생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그러다 반장이었던 나를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내었다.
“반장! 어서 이리로 나와 봐!”
갑작스레 시킬 심부름이 있는가 하고 나는 서둘러 선생님께로 갔다. 그런데 선생은 영 엉뚱한 말을 했다.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머리를 감다가 흰머리를 봤거든. 뒤쪽에도 있는지 좀 찾아봐.”
어렸던, 그러나 무척 조숙했던 나는 당황했다. 웬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했던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도 심부름이 맞기는 했다. 다만 그 심부름이 너무 뜻밖이며 지나치게 사적인 것이 문제였다. 선생의 말투는 열세 살이었던 내가 보기에도 경박하고 호들갑스러웠다. 흰머리 하나에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자신이 갑자기 백발의 노인이 된 것처럼 수선을 떨고 있었다.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선생의 물기 덜 마른 머리를 열심히 뒤졌다. 그런데 마음이 묘하게 뒤틀렸다. 애써 표현하자면 뭔가 불쾌한 감정이랄까. 게다가 손가락 끝에 닿던 축축한 머리카락의 감촉도 참 별로였다. 그 때 난 다짐했다. 이것 참, 보기 싫은 모습이구나. 나는 훗날 흰 머리가 나타나도 절대 이러지 말자.
그러나 세월은 금방 흘러, 어느새 나도 그 때의 여선생처럼 흰머리가 삐죽하게 돋아났다. 어렸을 때의 내가 놀랍도록 조숙했다면, 이십대의 나는 놀랍도록 기억력이 좋았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 예전의 일이 새삼스레 기억날 것은 뭐란 말인가.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가락을 슬그머니 멈췄다. 그 시절의 선생만큼 호들갑스럽고 경박하게 흰 머리카락을 맞이하고 싶진 않았다. 누구보다 품위 있고 우아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첫 흰 머리카락’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하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길이가 길어졌고, 급기야 번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앞머리와 뒷머리의 경계선에 자리 잡은 하얀 녀석들은 머리터럭을 묶든 풀든, 자신들의 흔적을 보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 내가 흰 머리카락에 마냥 초연했던 것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몇 번 그것들을 뽑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뽑는 내 자신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조숙하고도 확고했던 열세 살의 나를 배신하는 행동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동안 뚜렷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 채, 흰 머리카락 앞에서 매번 난감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일본의 도쿄에서 지내게 되었다. 도쿄는 서울과 비슷한 듯 많은 것이 달랐다. 잊을 만하면 땅덩어리는 신나게 흔들렸고, 시부야에는 요란한 화장을 한 갸르족(ギャル族)들이 넘쳐났다. 지상으로 달리는 전철도 낯선 풍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내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체구 자그마한 일본 할머니들의 은빛 머리카락이었다.
일본의 할머니들은 참 수수했다. 마치 수묵 산수화 같은 느낌이었다. 서울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중년 여성들의 새까만 염색머리와, 한껏 볼륨을 살린 파마머리를 도쿄에서는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일본 할머니들은 그저 반백의 머리를 길러서 곱게 땋기도 하고, 질끈 묶기도 했다. 쪽머리를 한 사람도, 여고생처럼 단발머리를 한 할머니도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은발들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사람의 머리카락이 그토록 하얗게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 같다.
할머니들의 은빛 머리카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고 왜 아름답게 보였는지 설명해보라면 나는 지금도 명확하게 말하기가 힘들다. 그냥 눈부셨다. 흰 머리카락과 주름살 사이로 보이는 삶의 여유가, 그리고 ‘늙음’이라는 ‘자연의 현상’을 ‘작은 자연’이 되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태도가 말이다. 그들을 보면서야 깨달았다. 흰 머리카락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열세 살의 내가 얼마나 진중하고 올바른 판단을 했던가, 그 시절의 내 자신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보면, 그들의 뒷머리에도 흰 머리 한두 개가 이젠 보인다. 함께 10대와 20대를 보냈던 친구들에게서 흰머리카락을 발견하는 것은, 내 것을 발견했을 때와는 또 다른 속상함이 있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얘, 너 흰머리 있어.’라며 그 머리를 뽑아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그저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도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자’라며 중얼거릴 뿐이다.
늙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리고 그 윗대의 어르신들도 모두 이러한 시간을 보내며 젊음을 배웅하고 늙음을 맞이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드러나는 팔자주름에 속상해 할 필요도, 허옇게 보이는 흰 머리카락에 서글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커다란 순리이고, 인간은 그 자연의 일부분이니까.
예순 살 쯤 되었을 때도 나의 이 생각이 변치 않는다면, 그 때의 나는 반백의 머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은빛의 여유에 걸맞은 인격도 갖출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쁘겠다. 그러니 앞으로는 미장원에서 흰 머리카락이 삐죽하게 고개를 쳐들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련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젊음의 자취이며,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모습일 테니.
<수필과 비평 15년1월호>
이곳에 처음으로 제 글을 올려봅니다. ^^
첫댓글 반가워요, 유나샘, 젊음은 오히려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하지요.
차분하게 풀어간 생각들이 진솔합니다,
답글을 하나 올렸어요. ㅎㅎㅎ
'흰머리'라면 우리가 유감이 많지요.^^
좋은 글! 참 기특하게 성장했네요. 글 많이 쓰요.
아이들이 40줄에 들어설 때 좀 서글프더니 이젠 50줄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귀 밑이 제법 희끗희끗합니다. 어쩌겠어요. 자연에 순응 할 밖어요. 유나샘도 어머니를 닮아 긍정적이어서 좋습니다. 나이에 걸맞게 우아하게 사는거죠. 건필을 빕니다.♬
여러 선생님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아직 어려서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만, 이복희 선생님 말씀처럼 젊은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들과 생각을 글로 많이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
글은 나이에 맞게 써야 합니다.
그 나이에 맞는 글이 좋은 글인 것 같아요.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이지만 초연한 척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생각을 피력하여 신선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참 생각이 바르고 당찼네요.
선생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수필을 쓰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바르고 당차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더운 여름 평안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