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17. 외래어 오용: 일본어 잔재 및 악영향 (4)
여섯째, 기타 일상생활에서 내가 자주 들어온 일본어 잔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센’이 있다. 선생(先生)을 뜻하는 일본어 ‘센세이’가 줄어든 모양이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이센’으로 불렸는데, 어머니의 출신 지역을 앞에 붙여 ‘도화 이센’으로 불리기도 했다. 요즘은 ‘선생님’을 친근하게 ‘샘’ 또는 ‘쌤’으로 부르는 걸 자주 듣는다.
일터에서 우리말 ‘막일꾼’은 거의 듣기 어렵고 일본어 ‘노가다’가 대세다. ‘보조일꾼’을 가리키는 ‘시다’나 ‘시다바리’라는 일본어도 꽤 많이 쓰이고 있다. 비전문가 또는 초보자를 가리키는 ‘시로도.시로토’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요즘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 죄로 재판받고 있는데, 지난날엔 ‘우두머리’나 ‘두목’을 가리키는 일본어 ‘오야붕’을 많이 썼다. ‘부하’를 가리키는 ‘꼬붕’이란 말과 함께. ‘뎃빵.댓빵’도 ‘두목’이나 ‘대장’을 가리키는 일본어다. 일본어 ‘가다’는 본래 ‘어깨’를 뜻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선 ‘깡패’나 ‘건달’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들이 어깨에 잔뜩 ‘후까시’(허세.허풍)를 넣기 때문일까.
지난날엔 사람 붐비는 곳에 ‘스리.쓰리’꾼(소매치기)이 많았지만 우리사회에선 거의 사라진 듯하다. 10여년 전 복지사회의 대명사 같은 북유럽에선 길거리에서 ‘쓰리’꾼 서너 명에게 바지 뒷주머니를 털릴 뻔했지만. 아무래도 ‘쪼다’나 ‘호구’ 같은 사람을 상대로 ‘쓰리’를 시도할 텐데, 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어리숙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요즘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여기저기 들어선 가운데 국내 자본가들의 수십억 또는 수백억짜리 대형 커피숍도 세워진다는 얘기를 듣는다. 시골에선 어쩌다 정겨운 ‘다방’ 간판을 보기도 한다. 다방에서 일하던 여자봉사원을 ‘레지’라고 불렀는데, 금전등록기를 뜻하는 영어 register를 일본인들이 앞부분만 따서 ‘레지’로 부른 것이란다.
사람의 성질.행위 등에 관한 일어 잔재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구라’(거짓말.이야기.허풍.과장), ‘곤조’(근성.성깔), ‘뗑깡’(생떼), ‘쿠사리’(꾸중.핀잔), ‘무데뽀’(막무가내), ‘와이로’(뇌물), ‘분빠이.뿜빠이’(분배), ‘유도리’(융통성.여유), ‘단도리’(정리.단속), ‘시마이’(끝내기), ‘반까이’(만회.추격), ‘앗살하다’(산뜻하다.시원하다), ‘야리꾸리하다’(조잡하다.야릇하다), ‘사까닥질’(거꾸러지기), ‘삐까삐까.삐까번쩍’(번쩍번쩍) 등.
이 가운데 ‘구라’는 ‘구라 친다’, ‘구라 깐다’, ‘구라 푼다’ 등으로 쓰이는데, 소설가 황석영과 떼어놓기 어렵다. 그의 별명이 ‘황구라’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엔 ‘구라’의 첫째 의미를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해놓고, 예문으로 황석영의 소설 『어둠의 자식들』 한 구절을 올려놓았다. 셋째 의미를 “거짓이나 가짜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하고, 역시 황석영의 같은 소설 한 구절을 예문으로 들고 있다.
황석영 선생이 2019년 나와 대담하면서 ‘황구라’가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재봉 외, 『통일대담: 역사.문학.예술 전문가에게 듣는 평화와 통일』, 사람과 사회, 2020). 그의 상징과도 같은 대표적 대하소설이 『장길산』인데, 역사자료(실록)에 서너 줄 기록된 조선시대 도적 장길산을 바탕으로 10권 책으로 풀어냈으니 그의 말대로 “뻥튀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프라이를 한 것”이다. 서너 줄의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10년간 거의 매일 신문에 연재했더니 기자들이 ‘황구라’라는 별명을 지어줬단다.
『장길산』은 조선(북한)에서도 출판된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문학”이라고 한다. 황석영이 1989년 평양에 머무를 때 처음 만난 김일성 주석에게 엄숙한 자리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구라’를 풀었으면 김일성이 스무 번이나 더 만나자고 했을까, 그리고 『장길산』을 평양에서도 출판하도록 직접 지시했을까.
내가 사는 익산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지인에게 밥이나 술을 대접받을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나와바리’(구역.지역)다. 내가 사겠다고 하면, 자신이 살거나 영향력.세력을 미치는 ‘나와바리’에서는 자신이 ‘쏘겠다’면서. 일본에서는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 ‘야쿠자’의 언어가 돼버렸다는데.
‘삐라’(전단)와 ‘찌라시’(광고지)도 여전히 자주 듣는 일본어 잔재다. 특히 ‘삐라’는 우리말 ‘전단’보다 훨씬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윤석열 정권 때 주로 탈북자들이 접경지역에서 ‘삐라’를 넣은 풍선을 북녘으로 날려 보내자, 북녘에선 오물을 담은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내며 남북관계가 더 험해지기도 했다.
편집: 김미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