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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봄은 언제나 올까? - <아버지의 초상>
오경옥
3월인데도 군산에 봄은 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꽃샘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달 내려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군산 시민들의 가슴은 얼어붙었다. 지난해에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까지 폐쇄 결정이 내려지면서 군산경제의 체감온도는 영하에 가깝다. 가는 곳마다 거리에는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반대’에 대한 한국GM 근로자들의 절박한 절규와 협력업체들의 애절한 호소가 플래카드로 걸려 있었다.
더욱이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로 약 오천여 명의 근로자들이 실직한데다가 이번 한국GM공장폐쇄로 약 만 삼천여 명이 실직 위기에 처해 근로자와 협력업체 및 그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약 칠만 여명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년부터 오식도와 외항 및 비응도 일대의 공장과 상가와 원룸들은 문을 닫아 텅텅 비어버렸고, 썰렁하니 휑한 겨울바람만이 감돌았다. 더욱이 롯데몰이 개점을 앞두고 있어서 시내 상가들마저도 임대로 내놓거나 폐업을 하는 가게들이 늘어나서 군산의 경제는 벼랑 끝 낭떠러지에 내몰려 있다. 그나마 그들과 관련이 없는 몇몇 기업들과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받아 경영하는 사업들만이 군산의 온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냉혹한 군산의 경제를 생각해서였는지 얼마 전에 TV에서 본 <아버지의 초상>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회사의 부당한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50대 ‘티에리’가 고용센터를 통해 직업훈련과정을 마치고 어렵게 재취업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과 취직 후 직장에서 겪게 되는 인간적인 고뇌가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가 함께 얹어지면서 도덕적·윤리적 딜레마와 마주한다는 이야기였다.
고용센터에서 직업훈련을 마친 티에리는 재취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그쪽 분야의 경력부족으로 취업을 못하게 되자 담당자와 상담을 한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직업훈련과정만을 권유받거나 이력서 작성에 기본이 안됐음을 지적하고 모의면접 후에도 젊은 훈련생들에게 잘못된 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게 하여 수치심과 모멸감을 준다. 즉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인격적인 대우 같은 배려 차원의 설명도 없이 오직 구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서류상 서식작성법이나 절차, 용모와 태도 및 자세를 교정해야 함을 주먹구구식으로 지적하여 자신감만 상실하게 한다.
전직 동료들은 자신들을 해고한 고용주와 싸우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함께 뜻을 모우자고 설득하지만 2년 가까이 취직을 못해 가족들의 생활비를 당장 벌어야 한 티에리는 그 뜻에 동조하지 못한다. 할 수 없이 뇌성마비인 아들의 상급학교 진학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실직자라서 대출이 안 돼 집을 팔려고 내놓는다. 하지만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마저 천유로나 깎으며 싸게만 사려고 해서 집마저도 팔지도 못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심화되고 가장으로서 심리적인 불안과 압박감에 예민하고 무표정하기만 한다.
얼마 후, 티에리는 간신히 대형마트에 보안요원으로 취직이 되어 고객과 직원 등 모든 이들을 CCTV로 감시하는 일을 하게 된다. 어렵게 취직이 되었기에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에 적발된 대상은 고기를 훔친 노인으로 15유로도 없고 대신 고기값을 지불해줄 가족도 없어 용서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부르게 된다. 두 번째는 할인쿠폰을 빼돌리다 20년간 성실히 근무했던 여직원이 들켰다. 잘못했다며 한번만 봐달라고 점장에게 부탁을 하지만 신뢰를 잃은 사람과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며 해고한다. 얼마 후 그 여직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점장은 그녀의 아들이 마약중독인데다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티에리는 미안한 마음에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다시 회사에 출근하여 근무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객의 적립하지 않는 포인트를 몰래 자기 포인트에 적립하다 한 여직원이 들켰다. ‘이 일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을 거죠’라며 그녀 역시 봐달라고 사정을 한다. 티에리 역시 그동안 취직이 안 돼 얼마나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심리적으로 애태웠는지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가족들을 생각하면 직무이기에 그를 적발해내야 하지만 같이 한솥밥을 먹는 직원을 실업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괴로움에 그는 과감하게 마트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나오고 만다. 즉 자신이 직장에 계속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없어 절도를 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고객이나 같은 직원들까지도 냉정하게 원칙과 규정만을 내세워 적발해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이해나 배려, 감정도 없이 오직 위에서 시키는 대로 기업의 이윤추구와 상품의 효용적 가치를 먼저 내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적자생존, 약육강식, 이것이 곧 시장경제 흐름을 바탕으로 한 현대 자본주의 민낯이며 냉혹한 삶의 현실이고 직장인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직장인들 가운데 가정의 생활비와 자녀들의 교육비를 책임져야 하는 오육십 대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는 더욱 무겁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공무원이나 정규직으로 퇴직을 하는 사람들은 퇴직금과 위로금 및 연금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구조조정을 당한 비정규직 근로자나 계약만료의 계약직들은 실업자로서 생존경쟁의 구직활동을 하거나 대출받아 자영업을 하거나 그럴 형편도 안 되면 건설노동현장의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대체근무 같은 단기근로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영화 <신데렐라 맨>에서 전설적인 복서인 제임스 지미 브래독은 미국의 암흑기인 경제 대공황기 때 헝그리 복서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항만하역 노동자 일에서부터 굶주림과 구걸까지 해야 했고, 영화 <로마의 휴일>을 쓴 할리우드 최고의 천재 작가 달튼 트럼보는 냉전 시대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려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동료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11개의 가명을 쓰며 작품을 발표해야 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기자였다가 소설가로 전향한 김훈도『밥벌이의 지겨움』을 통해 작가이지만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삶의 애환과 고뇌를 그린 바 있고, 영화 <카트>에서도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의 유연화로 비정규직 근로자들(계산원들)이 겪는 인간탄압과 착취와 대량해고로 인한 생존과 실존의 경계에서 리얼리즘의 정점으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참혹한 노동 현실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 바 있다. 즉 회사는 정규직 전환의 법적 압력을 피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을 직접 고용이 아닌 용역업체를 통해 직원을 채용하는 아웃소싱 방법을 채택하여 한솥밥을 먹고 근무했던 동료직원들을 불신과 이간질로 이산 하게 하고 직원들 가족들의 생계는 물론 가정의 위기와 붕괴를 야기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부양가족이 있는 중장년층들은 자녀들의 교육비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가혹하리만치 불평등한 사회경제구조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때론 부당한 대우를 받아가며 고군분투한다. 그런 아버지(어머니)들이 젊고 유능한 후배와 자식 같은 사람들에게 세대 간의 생존경쟁을 하며 하루하루 견디고 버텨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삶의 모습이 너무도 처절하고 안쓰러워 눈물겹기만 하다. 그것이 곧 요즘 우리 군산, 우리나라의 사회현실임을 직시한다.
꽃샘추위 속에서도 거리의 가로수에는 벚꽃을 피우려고 꽃망울이 맺혀있다. 최근 군산은 작년 현대중공업 폐쇄와 GM공장 폐쇄 결정으로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거기에 미투 운동인 고은 시인의 성추문 파문으로 문화예술계에서지원금을 받아 놓고도 그 사업을 실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이른 그야말로 풍전등화 신세가 되었다.
자영업자들이 임대와 폐업으로 내몰려 빈 상가들이 넘쳐나고 실업자들로 사면초가에 빠진 군산의 경제는 언제나 봄이 오려는지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2018. 한국미래문화 제 29 집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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