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의 침대>
까미노의 연인
方 旻
그녀는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다. 전날 알베르게에서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늘 밝은 표정인데 흔히 보기 드문 미인이다. 누구와 함께 왔을까 살짝 호기심이 일었지만 물어볼 뱃심은 빼어놓은 채 눈에 띄는 매력적 미모를 연신 훔쳐보았다.
저녁을 먹기는 이른 시간 석양이 잘 쪼이는 카스트로헤이스Castrojeriz의 알베르게 양지쪽 의자 둘레로 여럿이 모여 한참 흥이 올랐다. 잉글랜드에서 왔다든가 하는 기타리스트 때문이었다. 영어 노래와 스페인 노래를 주로 불렀지만, 우리를 보더니 ‘등대지기’와 ‘사랑해’를 연주하여 그 자리로 끌어들였다. 거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선창하는 그녀의 통랑한 목소리와 경쾌한 선율은 숙소의 여러 사람을 끌어냈다. 그녀는 그곳의 프리마돈나였다.
스페인 노래를 잘 부르기에 처음엔 현지인인 줄 알았다. 다리 힘이 우리와 비슷한지 여러 번씩이나 숙소에서 조우했고, 그것도 서너 번은 대여섯이 자는 방의 옆이나 위 침대에서 만나기도 했다. 특이한 인연이라 각별한 마음으로 말을 나누었다. 그 때서야 브라질에서 혼자 온 것을 알았다.
한 방에서 마지막으로 동숙했던 곳, 떼라디요스Terradillos 에선 처음엔 그녀인 줄 몰랐다. 웬 남녀가 아래 위 침대에 자릴 잡더니 일인용 침대에 함께 누워 속삭였다. 이곳에선 각자 바쁘고 피곤하여 남이 뭐하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데, 나와 대각선 위치라서 그간 못 보던 짓이 눈썹을 자극했다. 몇 차례 슬쩍 건너보다가 고갤 돌렸는데, 불 끌 때쯤에는 아래 위로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젊은 피가 뜨거우니 그러겠지, 하고 너그러운 아저씨 맘으로 용서하고 잠 길로 들어섰다.
다음날 아침에서야 젊은 남녀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는 마흔 줄 이쪽저쪽으로 보였는데, 남자는 그보다 더 젊게 보여서 어린 사내 잘 잡았네, 솜씨 좋네 하고 냉큼 생각하였다. 길에서 다시 만났을 때 보니 그 사내도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그는 현지인이었다. 키 크고 가슴에 털이 더부룩한 체격이 좋은 사내와 약간 작달막한 브라질 여인은 까미노 연인이 되어 저 멀리로 사라져갔다. 그 뒤로 다시는 보지 못해 더 이상의 사연 전개는 물론 알 수 없다. 결말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목적지 중간의 마을 의자에서 아내와 쉬면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있었다. 남녀 한 쌍이 우리 앞으로 지나기에 ‘부엔까미노Buen Camino’ 하고 인사를 건넸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며 옆에 앉았다. 그리곤 아내 보며 여자 친구냐고 묻는다. 뭔 소리여, 하며 아내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약간 실망한 듯 옆의 여자는 친구라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그에게 처음부터 우리처럼 함께 왔냐고 했더니 길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단다. 그 여자는 현지인이었다.
그 후에 그 쌍과 몇 번 더 만났다. 처음 볼 땐 둘의 몸이 분리 상태였는데, 그날 숙소 근처에선 손을 붙잡고 걷고 있었다. 지나치면서 다시 인사를 건넸다. 여자가 얼핏 시선을 피하는 듯싶었다. 참 빨리도 붙었네, 혼잣소리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한 이틀 쯤 지나 안개비 자욱이 내리는 날에 다소 거친 산길을 걷다가 태극기 달려 있는 간이 휴게소에 들렸다. 따끈한 커피를 마시곤 적당량의 기부를 하는 좀 특이한 곳이었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 쌍이 들어와 앞에 앉았다. 아는 체 하려는 데 눈길도 보내지 않는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지 그 둘의 입술이 붙는 것을 보면서 그곳을 나섰다. 한 쌍의 까미노 연인을 또 본 것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걷다가 쉬는 곳에서 맥주 한 잔 함께 나눈 한국인 처녀한테 들은 이야기다. 왜 혼자 걷느냐고 물었고, 다음엔 좋은 사람하고 동행하길 바란다고 운을 뗐다. 아니면 길에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덕담까지 건넸다. 그러자 정말 그런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그와 함께 걷던 여자 동행이 도중에 남자를 만나게 되어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다는 얘기를 조금은 부러운 듯,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마을 중심에서 외곽으로 멀리 떨어진 숙소에서 묶을 때였다. 나보다 늦게 와서 위 침대에 자리 잡은 여잔데, 그 옆의 남자와 쉴 새 없이 종알대서 뭐라고 주의를 줘야 할까 영어 단어를 뒤적이며 인내심의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였다. 누군가 하고 확인 차 고갤 들어보니 20 대 한국 여자였다. 그 상대는 분명 서양인인데 꽤 나이가 들어보였다. 분명 한국인이 맞는데, 주방에서 나와 마주 치고는 영어식 인사를 마지못해 하더니 날도 밝기 전 일찍 짐을 싸서 가버렸다. 다시 그녀와 사내를 보지 못했으나 그들은 한국계 까미노 연인이었을까?
하루하루 다른 숙소에 머무르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다. 그곳에서 그들의 특이한 행태를 엿볼 기회도 무척 많다. 사업이 아닌 여행이요, 순례이고 휴가로 나선 길이지만 까미노 또한 엄연한 삶의 축소판이라, 남녀의 사랑도 한 자리 끼어야 구색이 맞지 않겠는가.
첫댓글 ㅋㅋㅋ
이번 호에는 핑크빛 무드가....
싼티아고 가는 길에도 그런일이? 해보지 못한일이기에 성스러움까지 느끼고 있었은데...
젊은 남녀라면 까미노길에선 뽕도 따고 임도 볼 수 있어 좋을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녀 공히, 혼자 떠난 여행길은 남 모를 로망이 기다려 줄 것이고요.
준빠님 다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