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24. 한자어 사용 오류: 의미 중복 (6)
앞에서 “한국의 전시작전권(전작권) 환수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됐다”라며, ‘주한미군 주둔’과 ‘주한미군 철군’ 그리고 ‘군대/병력 파병’과 ‘전쟁 휴전/종전’ 등이 뜻이 겹치는 표현이라고 했다. 이에 전작권 ‘환수’와 ‘반환’ 또는 ‘전환’의 차이에 관해 물어보는 독자가 있었다.
뒤에서 ‘민원 신청과 접수’, ‘쓰레기 배출과 수거’, ‘비행기 연발과 연착’ 등 ‘한자어 혼동 사용’을 다룰 텐데 ‘환수’에 관해 먼저 얘기한다. 의미 중복이 아니지만.
‘환수(還收)’는 주거나 빼앗긴 것을 되찾거나 도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반환(返還)’은 빌리거나 차지했던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누가 주체가 되느냐의 차이다. 한국을 주체로 하면 환수고, 미국이 주체라면 반환이다. ‘전환(轉換)은 누가 주체가 되든 상태가 바뀌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적 시민단체 등이 전작권 ’환수’를 주장하는 데 반해 보수적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전작권 ‘반환’이나 ‘전환’이란 말을 쓰는 경향이 큰데, 주인 의식 또는 줏대의 문제가 아닐까.
이와 비슷하게, 1997년 홍콩이 영국령(식민지)에서 중국령(특별행정구)으로 전환됐을 때, 우리나라 거의 모든 언론은 ‘홍콩 반환’이라고 보도했다. 내가 원하던 ‘홍콩 환수’라는 표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1840년대 이른바 아편전쟁을 일으켜 청나라 홍콩을 빼앗은 영국이 약 150년 뒤 ‘돌려준(반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할까, 1949년 새 정부를 세우고 힘을 기른 중국이 1980년대부터 영국을 압박해 ‘되찾은(환수)’ 것으로 인식하는 게 바람직할까.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나라까지 빼앗겼던 우리가 침략국 편에 서는 것 같아 아쉽고 씁쓸했다.
참고로, 1984년 ‘홍콩 문제에 관한 영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공동선언 (Joint Declaration of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the Govern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on the Question of Hong Kong)’ 제1항에서 중국은 한자로 ‘收回香港’, 영어로 ‘recover Hong Kong’이라 썼다. ‘收回(수회)’와 ‘recover(회복)’는 ‘되찾다(환수)’는 말과 같다. 제2항에서 영국은 영어로 ‘restore Hong Kong (to China)’, 한자로 ‘香港交还’이라 썼다. ‘restore(복귀)’와 ‘交还(交還/교환)’은 ‘되돌려주다(반환)’는 말과 비슷하다.
주제에서 좀 벗어나는데, 이는 ‘영국 박물관’을 아직도 ‘대영 박물관’으로 부르는 우리의 전통적 또는 사대주의적 호칭 방법과 비슷하지 않을까.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런던에 있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박물관의 공식 이름은 ‘British Museum (영국 박물관)’이다. ‘대영(大英)’으로 번역할 수 있는 ‘Great Britain’이란 말은 박물관 명칭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제국주의/식민주의 상징 ‘대영제국’의 호칭을 따라 예나 지금이나 ‘영국 박물관’을 ‘대영 박물관’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한자어의 의미 중복 사용으로 되돌아가, 지금까지 내가 모아놓은 사례를 아래와 같이 나열하며 끝낸다.
‘신당을 창당하다’: 신당은 새로 만든 당이고, 창당은 정당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이중으로 뜻이 겹친다.
‘전화로 통화하다’: 통화는 전화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전화로 얘기하다’ 또는 그냥 ‘통화하다’로 쓰면 된다.
‘버스/기차에 승차하다’: 승차는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이다. ‘버스/기차를 타다’ 또는 ‘버스/기차에 오르다’고 하면 좋다.
‘배에 승선하다’: 승선은 배를 타는 것이다. ‘배를 타다’ 또는 ‘배에 오르다’가 적절하다.
‘산행을 가다’: 산행이 산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산행하다’가 바르다.
‘허송세월을 보내다’: 허송이 헛되이 보내는 것이니 ‘허송세월하다’가 좋다.
‘1년을 허송세월하다’: 1년과 세월이 겹치니 ‘1년을 허송하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예방접종을 맞다’: 접종이 주사를 맞는 것이니 ‘예방접종하다’가 좋다.
‘헌금을 바치다/내다’: 헌금이 돈을 바치거나 내는 것이니 ‘헌금하다’고 쓰면 된다.
‘감동을 느끼다’: 감동은 마음이 움직일 만큼 느끼는 것이니 ‘감동하다’고 쓰는 게 바르다.
다음은 굳이 설명을 곁들일 필요가 없는 표현들이다. 관용 표현이 되어 국어대사전에 올라있는 말도 적지 않다는 것을 밝힌다.
자동차를 주차/정차/세차/폐차하다. 성금/기부금을 모금/송금하다. 이름을 개명/호명/거명하다. 올림픽 성화를 점화하다. 전등을 소등하다. 노벨상/특상을 수상하다. 마약을 투약하다. 나무를 식목/벌목하다. 하늘로 승천하다. 집에 귀가하다. 서울로 상경하다. 고향에 귀향하다/낙향하다. 강의를 개강/수강/청강/종강하다. 시험에 응시하다. 점수를 채점하다. 원고를 투고하다. 신간을 출간하다. 노래를 선곡하다. 속도를 감속하다. 국경을 월경하다. 감옥에 투옥되다. 감옥에서 출옥/탈옥하다. 헌법을 개헌하다. 법안을 입법하다. 소송에 승소하다/패소하다. 형량을 감형받다. 입찰이 유찰되다.....
편집: 김미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