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도, 해야할일도 없는, 날마다 휴일인 사람이 나 말고도 있을게다. 아닌가. 다들 분주하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만, 더러는 나처럼 그날이 그날이고, 반듯이 열심을 내야할 이유도 없는, 엉거주춤 어정거리며 간신히 하루를 이어가며 사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 모르겠다. 정답은 없다니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한적은 없는것 같다. 깜박 깜박 해선가, 창문이 어두워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오늘이 주말인가 아닌가를 더듭어 보곤 할때가 자주있다. 어차피 주말이나 휴일이나 별 상관이 없다. 평일이라고 해봐야 3쯤에나 나가서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는게 전부니까. 어젯밤에는 9시도 안되어서 잤다. 그리고는 새벽 4시도 안되었던가, 불을 켜고 소설 몇장을 읽었다. 이불속의 온기를 무척 좋아하고, 부드러운 이불속에서 빈둥대는게 내가 누리는 유일한 사치이고 호사다. 그러다가 살포시 잠이 들면 그게 내 행복이기도 하고. 그런데 잠이 안오면 뒤척이고 또 뒤척이는게 괴롭다. 이때 불을 켜는것은 책이 좋아서가 아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다. 책이 좋아서 책을 읽는다면 그도다 좋을수가 없겠지만, 그냥 시간을 채우기위해서 책을 선택한 것이라면, 그 책 때문에 살기를 바랄수는 없잖는가. 유튜브도 그렇다. 좋아서 즐겨본다고 할수만도 없다. 아니, 좋아하는 것도 얼마끔은 사실이긴하다. 그렇다고 죽기를 미룰만끔은 아니다.특별히 손에 놓지못할만끔 소중한 어떤것도 없다. 갖어보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아닌가. 벽에 붙여놓은 사진 한장 한장도 애착하고 있는것 아니고? 그만 때어내서 쓰레기통에 넣는게 더 좋을 것들을 여전히 끓어앉고 있으면서. 그렇다. 낡아빠지고, 나 자신도 더는 펴보지도 않는 책들도 결국엔 쓰레기 봉지에 담기는 날이, 그것도 쉬이 올게다. 아니, 이미 액채가 동이난 사인팬도 못버린다면 병 아닌가. 형광팬도 있다. 볼팬도 있고. 심이 없는 샤프연필은 어디에 쓸려고 안버리는 것일까. 날 먼저 버려야 한다는 고집은 효용가치도 없지 싶다. 그렇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가장 쓸모가 없는것은 나 자신 같아서다. 심없는 샤프연필은 심을 끼워넣으면 된다. 이미 나이먹고 둔해서 몸놀림은 물론이고 생각도 오락가락인 나 보다 더 빨리 버려야 할것이 뭘까. 영상의 날씨가 계속되리라 싶어서 이불을 바꿨더니 간밤에 기온이 내려갔는지 몸이 느껴졌다. 이런대는 참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말 민감해야할 믿음에 관해서는 둔한것인지 모르겠다.아니, 완고하다고 해야 맞으려나. 그것도 아니면 편견? 억지? 믿음이 자기 소견대로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렇다. 45년에 달하는 교회생활속에서 내 믿음은 어느정도에 있는지 어림해보면 참 부끄럽고 민망하다. 성수주일은 켜녕 십일조도 못해보았고, 새벽예배는 그렇더라도 어떤 자원봉사 활동과도 거리가 멀었다. 나는 늘, 과부에 고아에 가난하다고 코프레 해 왔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손을 펴서 누군가를 돕는다거나 살피는 일은 가당치도 않았고, 내가 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식이었다. 꽃동내 창시자나 다름없다는 이춘삼 어른 같은 분이 이해될수도 없었다. 이춘삼 어른은 거지였다. 얻어온 음식을 항상 다른 사람과 나누었단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충분했을까.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려워하거나 내겐 안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진 않았을까. 어떻게 쌓아두려는 욕심을 벗어버릴수 있었을까? 죽었다가 살아나도 나는 아마 이해 못할듯 싶다. 불확실은 내일 때문에 오늘을 낭비해버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나에대해서 정말이지 아는게 없는것 같다. 나름 성실했다 싶은대도 사실은 뭐가 뭔지 알수없다. 인생이 어찌 이렇게 억지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