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우리말 바로 쓰기] 26. 우리말(한자어) 오용 (2): ‘수여’와 ‘시상’의 불편함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 맘이 불편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학위수여식이었다.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행사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는 졸업식이라고 하는데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꼭 학위수여식이라고 부른다. ‘졸업(卒業)’은 교과 과정(업무/業)을 마치는(卒) 것이고, ‘수여(授與)’는 학위나 상장 등을 주는 것이다. 한자 ‘수(授)’ 자와 ‘여(與)’ 자 둘 다 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졸업의 주인공은 학생들인데, 수여의 주체는 총장이나 학장이다. 대개 4년 과정의 학사나 2-5년 과정의 석사 또는 박사 과정을 어렵게 마치고 학위를 따는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야지, 그들에게 학위를 주는 총장이나 학장이 주체가 되는 것은 못마땅하다. 대학교 우두머리(수장)를 ‘교장’이 아니고 ‘총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대학이 부질없이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것 아닌가.
학위수여식 안내문이나 대학신문의 ‘학위수여자’ 명단에 졸업생들 이름을 올리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다. ‘주는 사람’이란 뜻의 ‘수여자’를 받는 사람들로 바꿔치기하는 셈이다. 지성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어찌 이렇게 무식한 짓이 벌어질까.
학위를 순수한 우리말로 ‘따다’라고 하거나 ‘받다’라고 쓰는 게 촌스럽다면 고상하게 한자어로 ‘취득(取得)하다’라고 쓸 수 있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졸업식’이란 말을 쓰는 게 유치하다면 총장이 학위를 주는 ‘학위수여식’ 대신 학생들이 학위를 받는 ‘학위취득식’이라고 고칠 수 없을까. ‘학위 받는 사람’이라는 우리말 대신 한자어를 써야 권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학위수여자’가 아니라 ‘학위취득자’라고 써야 한다. 대학에 있을 때 이런 점을 지적하며 몇 차례 총장이나 교무처장에게 건의도 해보고 인터넷 게시판에 제안해보기도 했지만, 관행을 고치기 어렵다는 점만 느꼈다.
이 때문에 졸업생들은 학위를 ‘받았다’라거나 ‘취득했다’라고 하지 않고 ‘수여받았다’라는 어색한 표현을 사용하기 쉽다. 누가 무슨 기관이나 단체에서 상장이나 훈장 또는 임명장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 장관들은 임명장을 ‘받았다’라는 쉽고 편하고 적절한 말 대신 굳이 ‘수여받았다’라는 어색하고 부적절한 말을 사용하지 않는가.
시상식도 마찬가지다. ‘시상(施賞)’은 상을 주거나 베푸는 것이다. 상을 받는 것은 ‘수상(受賞)’이다. 무슨 상이든 받는 게 빛나는 일이지 주는 게 중요한 일일까.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을 주체나 주인공으로 삼는 행사가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아마 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광스러운 노벨상을 받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주는 사람은 누군지 잘 몰라도 ‘수상식’이라 부르지 않고 ‘시상식’이라 부른다. ‘수여식’보다 ‘취득식’이란 말이 더 민주적이듯 ‘시상식’보다 ‘수상식’이란 말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수여받다’라는 말과 비슷하게 ‘인계받다’ 또는 ‘인수인계받다’라는 말 역시 어색한 표현이다. ‘인계(引繼)’는 일이나 물품 등을 넘겨주는 것이고, ‘인수(引受)’는 건네받는 것이다. 둘을 묶은 ‘인계인수(引繼引受)’나 ‘인수인계(引受引繼)’는 물려받고 넘겨주는 것을 뜻한다. 넘겨주었으면 ‘인계했다’라고 쓰고 건네받았으면 ‘인수했다’라고 쓰는 게 좋은데, 건네받아 놓고 ‘인계받았다’라고 쓴다. 앞에서 ‘취득했다’라는 말을 ‘수여받았다’라고 쓰는 것처럼 ‘인수했다’라는 말을 ‘인계받았다’라고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인계인수든 인수인계든 뒤에 ‘하다’나 ‘되다’를 붙여 쓰는 건 좋은데 ‘받다’를 붙여 쓰는 건 잘못됐다.
이 글을 준비하며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보니 ‘인계’를 ‘하던 일이나 물품을 넘겨주거나 넘겨받음’으로 정의한다. ‘인계’가 ‘인수’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난감해진다. 그럼 ‘인계인수’나 ‘인수인계’라는 말을 왜 만들어 쓰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인계받다’라는 말을 쓰니 관행으로 굳어져 그걸 표준어로 인정하느라 낱말의 뜻을 확장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품어 본다.
편집: 김미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