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스, 앤불린의 몰락 (Bring Up the Bodies) 두번째 - 2016. 2. 16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이 지겨워지고 따뜻한 봄바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개나리야! 어서 어서 피어나렴......
오랜만에 알모에 갔더니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안보이네요. 개인적인 사정이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책읽기 모임에 나오셔서 빈 자리를 꽉꽉 채워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번 주에 모인 분은 파리의 여인, 꼬작, 망고, 꽃부리, 개나리입니다.
이 장에서는 16세기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아요.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학창시절에 배웠던 세계사 과목이 생각나는 군요
이 책의 주인공 헨리8세(1491~1547), 토마스 크롬웰(1485~ 1549)이 살았던 16세기 중세시대 시대적배경은
1475 헨리7세 즉위, 튜더왕조 시작
1509 헨리8세 즉위
1517 마틴 루터의 비텐베르그 의견서, 종교개혁 시작
1534 헨리8세가 스스로 영국교회의 ‘수장’임을 선언
1557 토마스 와이어트 경, 서어리 백작 헨리 하워드, 기타 시인들의 작품이 실린<토탈 문집>출간
1558 튜더 왕조의 마지막 왕 엘리자베스1세 즉위
1564 셰익스피어 출생
1576 연극 공연을 위한 영국 최초의 영구적 건물인 ‘극장’건립
1603 엘리자베스 1세 죽음. 스튜어트 왕조인 제임스1세 즉위
장미 전쟁
잉글랜드 왕권을 놓고 랭커스터가(붉은 장미)와 요크가(흰 장미)의 두 귀족 전쟁.
헨리 7세의 역사적 승리와 튜더왕조의 건설로 1485년 끝이 났다. 장미 전쟁 중에 기존의 낡은 귀족계급이 몰락하여 새로운 권력이 창출되었다. 튜더왕조의 마지막 왕 엘리자베스1세 시대에 영국은 비로소 국제 시대에서 일익을 담당, 유럽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지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문주의(humanism)
1509년 헨리 8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영국은 비로소 문예부흥이 일어나 엘리자베스1세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인문주의라고 알려져 있는 지적인 운동의 최대지도자는 토마스 모어였다. 교육은 고전과 성경에 바탕,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일반교양에 치중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지극히 실용적, 이 시기의 인간관은 중세와는 달리 인간의 왜소함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문학이 옹호되었고 시에선 허구와 알레고리에 의존하지 않고 시인 자신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소네트가 즐겨 사용되었으며 드라마가 변혁기 삶에 대한 철학적 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각광받았다.
종교개혁
중세내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톨릭 세계는 실제로 스스로 내부 모순으로 인해 급속히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귀족세계의 몰락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 승리하기는 하였으나 수많은 원정비용으로 장원제도 자체가 급격히 흔들렸다. 가톨릭 정부의 타락은 경제적 어려움이 저변에 깔려있었으며 그들은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 고리 대금업과 재산을 압류해서 종교개혁을 촉발한 면죄부의 판매까지 온갖 부조리를 저지르게 된다.
종교개혁의 시작이 성서의 번역으로 시작된 것은 가톨릭정부가 아전인수격 성서해석을 통해 타락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세 철학은 민중의 직접적인 성서 접근을 차단하고 단지 성직자들의 일과 의식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을 듣도록 하였던 것이다. 마틴 루터가 단지 성서만이 권위를 갖는다라고 주장하며 성서에의 복귀를 선언한 것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성서의 번역은 보통사람들의 성서접근을 가능케하여 그들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이유로 발단. 왕위 계승 적자가 없는 헨리8세의 이혼요구를 교황청이 거절하자 그는 교황청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스스로 종파를 만들어 수장으로 등극 그것이 지금의 영국 국교회다. 국왕은 그 대가로 국민들에게 상대적인 종교의 자유를 허락함으로써 국민들은 자신의 이상과 취향에 맞는 종교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강요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종교의 취사선택이 가능하게 되었다.
민족주의
1558년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튜더는 가톨릭 오호자인 메리 튜더의 피의 정치를 겪은 영국 국민에게서 그녀의 중립적인 정치 철학 덕분에 환영을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헨리8세의 정책을 이어 받아 타고난 수완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통일하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교황청은 이에 불만을 품고 여왕을 퇴위시키려 하였지만 이는 오히려 영국 국민들로 하여금 여왕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결집력으로 가톨릭의 수도국인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기도 하였다. 영국은 종교적 신념이 아닌 민족의 이익과 이해를 중심으로 운영, 중세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으며 영국이 스페인과 포루투칼을 누르고 세계적인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 역시 민족적 이해와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책속으로>
읽은 부분 78~115쪽 - 토마스 크롬웰이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나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내무장관까지 오르게 되는 배경과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정치적 전략가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 토마스 크롬웰이 바라는 나라 - p101
하나의 나라, 하나의 화폐, 측량과 계량의 단 한가지 척도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공유하 는 단 하나의 언어이다. 군주와 왕국이 하나로 합치는 것 그는 왕국이 퍼트니의 아버지 월터네 집구석처럼 운영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 토마스 크롬웰은 어떤 사람?
- 어릴 때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p92~p96
-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절제와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 노력주의자다
- 한편으로는 따뜻한 사람이다. p96
- 외롭게 산 사람이다 p105
- 왕 옆에서 계속 지켜주지만 미천한 신분으로 한계가 있어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많은 노 력을 한다. 귀족들은 그를 함부로 대한다.
- 앤을 왕비로 만들 때는 위풍당당하다가 헨리의 흔들림을 보고 자신이 위태로움을 느낀다. p84
- 조지 불린(앤의 남동생)에게는 이용당하면서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p87
- 스티븐 가디너- 추기경의 비서관. 윈체스터 지역의 주교. 크롬웰과는 적대관계p84
- 월터 크롬웰- 크롬웰의 아버지. 대장장이. 폭력과 학대로 어린시절 크롬웰을 괴롭힌다.
* 까마귀-실재로 런던탑아래서 많이 살고 있다.
- 키우던 새가 죽으면 그 왕조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 미래를 예시하는 복선을 깔아 준다.
* 15.16세기 이전에는 신권이 강했기 때문에 왕권의 유적을 수가 없었다. 헨리8세 이후 왕권 강화로 여러 초상화나 물품들을 남길 수가 있었다.
* 크롬웰의 모습은 우리 현대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정치 권력간의 권모술수와 암투, 한 두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목이 달아나는 상황을 보라 어쩌면 우리는 최고 권력을 지근에서 보좌하면서도 현실을 과감히 개혁하고 개인적으로도 입신양명을 이룬 크롬웰 같은 정치가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가 행한 부패세력 척결이나 부의 재분배를 위한 노력은 ‘개혁’을 늘상 외치면서도 개혁하지 못하는 현대 정치의 반면교사가 되는 느낌이다. 나아가 동양의 ‘삼국 지’가 그러하듯 크롬웰 이야기는 처세술의 교본이 될지도 모른다. - 일러두기 인용
첫댓글 여고때 강남풍 깍쟁이 스타일 댄디한 세계사 남선생님께 눈에라도 들려고 열심히 공부한 것들을 다시 소환시키는 앤블린^^ 개나리님의 후기로 암실에 인화지가 약품에 현상돼 상이 올라오듯 또렷해 지네요.
요즘 역사소설엔 가이드북까지 동시 출간되기도 한다던데, 정보들 고맙습니다. 한번에 볼 수 있어 좋아요.
언제 이렇게 방대한 것들을 정리해 쓰셨는지...휴일이 있어 후기는 한참 후 올라오겠다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보게 되니 더 반갑고 감사해요.
담주에 뵈어요.
아!!! 좋다
배경정리해주니 더 좋네요
훌륭한후기 좋아요
우리에겐 사시사철 이쁘게 핀 개나리가 있다아~~
책을 읽는 줄 알았는데. 공부 하고 계시네요....아~공부하기 싫은데....